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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Feb 13. 2022

토종 제주사람 판별법

에이, 거기는 애월 아니지

제주에 '돌아와' 살게 된지 2년. 나는 여전히 '제주태생 외지인'으로 지낸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나 반인반수, 뭐 그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열아홉까지 지냈던 고향이지만 낯선 것들이 아직 많다. 회, 갈치조림, 고등어구이, 고사리해장국 등 유명한 제주 맛집도 잘 모른다. (보통의 제주인들은 그냥 집에서 백반을 먹는다) 사투리는 리스닝은 되지만 스피킹은 되지 않는다. (알아듣는 게 어디야) 엄마의 사투리는 정겹지만 나는 어느새 엄마의 질문에 '서울말'로 대답하는 딸이 되었다. 사투리를 쓰면 긁을 수 없는 어딘가가 가렵다. 반인반수라 그런가.


그런데 말입니다.

아, 나는 토종 제주사람이구나!'를 느낄 때가 있다.


'서귀포 카페'를 검색하면 대정, 중문, 안덕, 보목, 토평, 위미, 표선 같은 곳의 카페들이 등장하는 게 이상했다. 안돼. 그건 아니지. 서귀포는 진짜 많이 양보해서 '서귀포 신시가지'까지가 서귀포라고. 법환은 법환, 중문은 중문, 안덕, 표선, 위미, 보목도 다 마찬가지. 그런 곳은 서귀포가 아니라 '남제주군'이라고. 그런면에선 제주시도 똑같다.


안다. 내가 없던 시절에 그 모든 위성 도시(아니고 읍면리)는 서귀포로 흡수되었고, 행정구역상 그 모든 동네가 '서귀포'라는 사실을. 하지만 토종들에겐 다르다. 나 서귀포에 살아요. 하면 토종들은 '무조건반사'적인 느낌으로 서귀포 시내만을 생각한다. 중문이나 안덕 표선 위미 성산에 살면 '정확하게 나 00에 살아요'가 토종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제주시라고 다르지 않다. 애월은 애월이고 조천은 조천이다. 토종들에게 제주시는 보통 구제주/신제주를 말한다. 동쪽으로는 화북을 떠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는 노형을 지나는 지점에서 제주시는 끝나는 거다. 그래서 외지인들(제주에 정착한 외지인이든, 관광객이든 모두)과의 대화에서 종종 지역적 개념의 오해가 생긴다.


언젠가는 '애월'에 사는 지인의 집으로 '토종 제주인' 형부가 차로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분을 늘 '애월 국장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주소를 내비에 찍고 그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형부가 말했다. "에이, 애월 아니네." 그래, 정확하게는 '광령'이었다. 하지만 외지인들은 모두 '애월'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선 국장님의 이름이 '광령 국장님'으로 바뀌었다. 그건 토종 제주인들에게 도통 타협할 수 없는 문제니까.


상하이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은 몇 년 전에 제주에 정착했다. 어디 사냐고 물었더니 '서귀포에 산다'고 했다. 서귀포는 내 고향이라 꽉 잡고 있는데 어디시냐. 묻고 알고 보니 '안덕'이었다. '에이, 서귀포 아니네.' 본능적으로, 무조건반사적으로, 내 마음이 말했다. 안덕은 안덕이지 서귀포는 아닌데. 하며 생각했다. 역시 나는 토종이었어.


그러다 토종의 끝판왕을 만났다. 엄마였다. 신제주 노형에 있는 병원에 동행할 일이 있었다. "병원은 어디니?" 신제주야. 말하고는 함께 가는데 노형에 도착하자 엄마가 말했다.

"에이, 신제주 아니네"

"어? 여기가 왜 신제주가 아니야?"

"여기는 신제주에서 더 서쪽이지. 신제주는 연동까지고."

"아니 엄마, 신제주가 더 넓어져서 노형까지 신제주가 된 게 언젠데! 여기가 더 넓고 깨끗한 신제주야."

라고 말했지만, 엄마의 마음속엔 본능적으로, 무조건반사적으로, 그곳은 그저 신제주의 더 서쪽지역일 뿐이었다.


토종들은 대부분 제주의 '정확한 지명' 이야기한다. 과거 아주 오랫동안, 제주는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으로 나뉘었다. 북제주군에는 유일한 '시'인 제주시가, 남제주군에는 서귀포'시'가 있었고, 그 이외는 모두 북제주군/남제주군 00읍 00리. 였다. 그 오랜 구분은 토종들의 뼈에 새겨져 쉽게 바뀌지를 않는 거다.


아무리 외지인들이 '이제는 행정구역상으로 더 정확한' 지명을 말해도 토종들은 여전히 그 말을 뱉는다. "에이, 거기는 거기가 아니지. 다르지."


제주에 이주해 7년째 살고 있는 '광령 국장님'은 이제 안덕 성산 표선 위미 등을 퉁쳐서 서귀포라고 말하지 않는다. 토종들과 어우러져 지내며, 그들에게 익숙한 '정확한 지명'을 말하면서 그녀는 제주에 점점 더 젖어들고 있다.


내가 아무리 반인반수 같은 '반외지 반제주인'일지라도 토종의 DNA는 변하지 않았다는 걸, 지명을 이야기할 때마다 느낀다. 인간에게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나는 제주보다 서울에 더 오래 살았지만, '어린시절을 보낸 10년'은 그 어떤 세월보다 길고 진하게 몸 속에 각인됐다. 생각보다 더 변종이네. 사투리 스피킹도 안 되는 토종이라니.


그래도 제주를 하나씩 새롭게 알아가는 요즘의 시간은 꽤 즐겁다. 제주의 다양한 토종 문화들은 아직 적응 중이지만, 반인반수 토종은 그렇게 더 진화하고 있다.


이곳은 '정확하게' 서귀포 신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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