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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Feb 02. 2022

제주를 사랑한다면

푸른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혼저옵서예"

어서오세요, 빨리오세요 라는 뜻이다. 그 사투리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유명한 가요도 있었고. 하지만 제주는 이제 '어서 오라' 손짓하지 않아도 되는 곳. 명절 연휴나 여행시즌이 되면 하루에 수십만씩, 인구 60만의 섬에 그만한 수의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 사람들 덕분에 제주는 발전했다.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그 사람들 때문에 제주는 병들어간다. 늘 사람들이 고프고, 사람들로 아픈, 제주의 딜레마다.


서귀포에 살던 어린 시절엔 물을 사 먹는 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주의 물은 특유의 시원한 단맛이 있었다. 서울에 살며 '생수'라는 것을 처음 먹었다. 물에 '물맛'이 전혀 없이 맹맹했다. 실험실에서 만든 물 같았다. 25년 만에 돌아온 제주에선 물을 사서 먹는다. 제주의 자연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물맛도, 공기맛도, 하늘 색깔의 맛도 다 변해있었다. 그 세월, 제주에 좋은 것도 많이 생겼났으니 한탄만 하지는 않겠다.


고향에 돌아와 잠시 살고 있지만, 나 역시 제주의 여행자나 다를 바 없다. 제주에 머물며 이곳을 여한 없이 즐기다 갈 계획을 세웠으니까. 제주에 짧은 여행을 오거나 한 달, 반년, 일년살이를 하러 오는 사람도 나와 같을 거다. 우리는 제주를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이다. 이곳에 내 여정의 흔적들을 만들고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구적으로 보면 인간은 생태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그저 우주의 시간 속에서 잠시 지구를 스쳐간 생명체일 뿐이지 않은가. 제주에 사는 사람들, 제주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우리는 지구를, 제주를 조금도 훼손할 권리가 없다.



"누가 손모가지를 창밖으로 내었는가"


제주-서귀포를 잇는 '평화로'는 도민과 제주 여행객이 자주 이용하는,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데 평화로를 달리다 종종 '어떤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검게 선팅된 창문이 슥- 내려간다. 일회용 커피 컵을 든 손이 빼꼼히 나온다. 그리고 투둑- 일회용 컵이 도로 위를 나뒹굴다 갓길에 정착한다. 차는 이미 시속 60킬로로 내빼고 떠나고 없다. 황망한 종이컵만이 덩그러니 고꾸라져있다. 그런데 버려진 종이컵은 혼자가 아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그 길에 모여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주인인 차는 대부분 'ㅎ'으로 시작된 넘버, 렌터카다. 적어도 도민들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제주도 전체를 우리 터전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만 운전습관이 이상한 도민들은 많아 보인다. (그것도 문제긴 합니다)

해변이라고 뭐 다른가. 여름, 바닷가에 한바탕 광란의 밤이 지나가면 아침해가 양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동네 어르신과, 버리고 간 양심을 묵묵히 주워담는 봉사자들의 몫이 된다. 제주에 놀러 와 이런 흔적을 남기는 이들과, 흔적을 없애는 이들은 제주에 대해 서로 다른 마음을 가졌는가. 아니, 모두 제주를 사랑해서 이곳에 온 이들이다. 그런데 왜 그 사랑의 결과는 서로 이토록 다를까.

밤 사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뒤덮인 이호테우 해변_@jejubyshin 트위터 캡처


'해변 쓰레기 1위는 담배꽁초라고?'


그렇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제주줍깅' 캠페인을 실시했고, 연인원 115명이 참여해 총 498kg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이중 가장 많은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도민과 관광객 흡연인 모두의 합작품.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빗물에 쓸려 해안으로 내려온 경우, 바닷가에 서서 똥폼 잡고 담배 피운 경우, 둘 다다.


중요한 건 담배꽁초 안의 필터다. 90% 이상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담배 필터는 바다로 유입될 경우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된다. 이후 바다 생태계의 재앙은 언급하지 않겠다. 담배 필터 말고도 일회용 플라스틱류, 비닐류 등 크고 작은 플라스틱은 사람이 일일이 줍지 않는 한 모두 바다로 흘러간다. '제주도 푸른섬'은 쓰레기를 버리고 간 사람들의 아들과 딸이 제주도에 오는 날까지 계속 푸른섬일 수 있을까.


그래도 제주는 인복이 있다. '제주를 살리기 위해 여행오는' 사람들이 있단다. 올레길 플로깅을 하고, 혼자 여행을 와서 '비치 클린'을 하며, '쓰레기 줍는 자전거여행' 하는 사람들이다. 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 '적게 버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요즘엔 쓰래기를 줍고, 덜 만들고 그런 게 오히려 '트렌디'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다. SNS에 보여주려고 좋은 일을 한다 해도, 단 한 개의 쓰레기만 줍는다 해도 결국 방향은 같으니까. 그러니 더 자랑하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성인'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칭찬을 받고, 뭐든 생색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팔로워들에게 칭찬을 받자. 모로 가도 청정섬으로만 갈 수 있다면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푸르름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나는 요즘 텀블러를 매일 가지고 다닌다. 이름을 각인한 스테인리스 빨대까지 세트다. 해초로 만들었다는 수세미도 선물로 받았는데, 거품이 너무 안 나고 거칠어서 그건 버렸다.(미안) 할 수 있는 정도만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으니까. 언젠가 차를 사도 전기차를 살 거다. 때때로 미세먼지가 낀 제주 하늘은 여전히 낯설고 가슴 아프다. 내 고향 제주가 어린 시절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푸르게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만 더 오래 보고싶다. 기한은 만년 정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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