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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Nov 03. 2022

무례한 이에게 무례하게 대처하는 법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처하는 법


그러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했거늘.


아름다운 밤 이었다. 잊혀진 계절 10월의 마지막 날 나의 아들은 세상에 나왔다. 간절히 기도했고 온 마음으로 기다렸던 그가 우렁찬 소리와 함께 탯줄을 끊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알을 깨고 나온 대천사와도 같았다. 물론 이 소설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이런날 아니면 언제 먹겠는가 티본스테이크. 우리는 자주 가던 호숫가 레스토랑을 찾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번 3악장이 흐르고 몰랑 몰랑한 조명에 레어로 조리하여 싱싱함이 뚝뚝 흐르는 고깃덩이와 이탈리안 국수. 창밖으로 오늘도 평화로운 호수엔 오리배의 패달을 힘껏 밟는 연인들도 행복해 보인다. 어쨌든 특별한 날이다.


“움 하하! 이렇게 우리 함께이니 실로 아름다운 밤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옆 테이블에 오십대로 보이는 남자 셋, 여자 한 분, 네 명이 홍합이 잔뜩 담긴 뚝배기 달랑 한 그릇을 두고 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움 하하하! 나 요번에 바이오 하나 터졌지 않은가. 이런 게 선경지명 아닌가. 마침 첫째 딸 하와이 간다기에 용돈 두둑히 줬지 않은가. 참으로 훌륭한 아빠가 아닐 수 없지 않는가. 다음 번엔 미리 귓띔 하겠지 않은가. 우움 하하!”

맞는 말이다. 암, 그래야지. 나는 딸을 위한 배려에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의 계좌도 챙기는 따뜻한 마음에 감탄했다. 


“움 하하하하! 둘째 딸이 통지표 받고 막 울지 않은가. 전교 10등안에 들었으면 되었지. 욕심이 지나치지 않은가. 그저 바르게 무럭무럭 자라 새 나라 새 일꾼이 되어 주길 바라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남자친구? 따라 다니는 남학생들이 있던데, 걔가 날 닮아 인물이 좋으니 어쩔수 없지 않은가. 자기 복이지 않은가. 우움 하하하!”

맞는 말이다. 암, 그 정도면 되었지. 건강하면 되었지. 


“움 하하하하하! 어제 필드 갔지. 그런데 감기 기운인지 이상하게 몸이 무겁지 않은가. 그래 그냥 설렁설렁 쳤지 않은가. 드라이버 한 290미터 나갔나? 캐디 언니가 놀라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어머 사장님 대단하세요. 타이거 우즈도 300이에요’  그냥 타고난 장사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우움 하하하하!”

맞는 말이다. 암, 다 타고 나는 거지. 생긴대로 살아야지.


우리 쪽도 덕담이 오고간다.

우리 아들! 요즘 뭐가 제일 관심있어? 선물을 뭐 가지고 싶어? 아빠의 물음에,

바이오! 요즘 제일 좋잖아, 대천사가 대답하니,

아니야 앞으론 이차전지가 좋을꺼야.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운동화 안 필요해?, 아빠는 종목을 추천했다.

나 오늘 수행평가 봤는데 완전 망했어, 대천사가 슬퍼하니,

시험 좀 못 봐도 되,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자, 아 아니 그게 아니고! 290? 아빠도 한창때는 그정도 역기를 막 들고 막 그랬어. 남자는 힘!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힘센 헌 일꾼이 격려했다.

도데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우리의 대화는 평소 같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새 그들의 대화를 엿 듣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매너가 아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냥 막 들리는 걸 어쩝니까. 그 홀에 있던 모두가 들었을 정도로 여기가 무슨 콘서트홀인 양 막 질러대는데 누군들 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로, 나는 아까부터 거북 했던 속이 점점 거북이 등 껍질처럼 굳어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주범은 한 명, 단 한 놈이 문제였다. 그는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할때와 같은 발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두성頭聲, 윤상갑상근(CT, cricothyroid)의 수축으로 갑상연골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성대의 길이가 늘어나면 긴장도(tension)가 높아지고 진동 부위의 접촉 면적이 얇아져 성대의 상연만 접촉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목소리는 두성으로 말미암아 크게 더 크게, 멀리 더 멀리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에 대해 더 설명하자면, 이대팔로 곱게 넘긴 머리는 번들번들 큼직하여 훌륭한 확성기로, 말 할때마다 허공을 휘젓는 손짓은 빠르고 거창한 마에스트로의 그것으로, 웃을 때마다 영롱하게 빛나는 금니는 주식고수의 부유함으로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배다. 나도 한 배 하는 지라 이런 말 좀 그렇지만, 건강이 의심될 정도로 크고 높은 배가 자리하여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우퍼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웃을 때마다 풍랑을 만난 오리배처럼 출렁출렁 했고.

그를 이렇게 상세히 묘사할 수 있는 건, 내가 날때부터 탁월한 눈썰미를 가진 탓 만은 아니다. 사실 그의 움화화화, 웃음 소리가 들릴 때면 그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눈치 좀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 모르겠다, 세상 이렇게 매너 없는 사람이 있나 싶다. 거 너무 예민한거 아니오? 그건 당신이 날때부터 탁월한 귓썰미에  이명까지 달고 있어 그런거 아니냔 말이오! 라고 반문하시겠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그 밖에 다른 테이블도 모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 물론 기분탓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우리 가정의 평화와 식당의 안녕을 위해 손가락을 튕겨 지배인을 부르고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말끔히 차려 입은 매니저는,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사람 부르려 했습니다, 하며 가까운 해병 전우회 사무실로 전화를 돌렸다. 나는, 역시 오성 식당은 다르군요. 별이 다섯개! 하며 손가락을 쫙 펼쳐 보였다. 하여, 출동한 전우회는 그에게 고성방가, 영업방해, 풍기문란 죄로 주의를 주고 훈방조치 하였다. 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마찬가지로 평화와 안녕을 위해 조치 할 수 없었다.


“움움 하하하하! 월드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도 소싯적에 유명했지 않은가. 과천 펠레 라나 뭐라나, 주변에서 실업팀 가라고 그렇게들 떠 밀었지 않은가. 군에서도, 그 때가 이등병때였지, 부대 원톱 스트라이커로 이름 날렸지. 육군 펠레 라나 뭐라나. 그렇게 전투 축구 선봉에 섰지 않은가.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우리 부대 탱크 부대 와, 유격 훈련 나가면 탱크 안에서 비상 식량 먹으면서 잠 안자고 몇일을 버티고…”


맞는 말이다. 아니 맞는 말 이겠지. 주식 투자계의 현인이고 전교 수재의 미남 아버지이며 드라이버를 290  날리는 괴력의 사나이이자 두성을 능란히 구사하는 배태랑 소리꾼, 그가 하는 말이니 맞는 말이라 치자.   

그런데 말입니다. 축구 얘기, 군대 얘기, 합쳐서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니, 거 이건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오. 평화고 안녕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테이블 위 나이프를 꽉 쥐고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자신의 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내 것두 썰어주려고? 운동이라면 평생 주전자나 날랐던 만년 깍두기, 당신이 참아요” 

나는 이런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잠시 다녀 오리다 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박력있게 옆 테이블로 걸어 갔다.

“아름다운 밤에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여기 신사 분께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만”

나는 셔츠 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두 손으로 그 놈에게 건넸다.

“극단 ‘굴화’의 단장, 최굴화라고 합니다. 이번에 햄릿을 준비하면서 주연 배우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선생님 목소리에 단 번에 매료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귀인성이 좋다 랄까요. 그 어떤 분위기라도 천둥 같이 찢어 버리는 이런 성량과 달콤함, 정말 별이 여섯개 이 시대 최고의 육성가 이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조용한 곳으로 모셔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우움 화화! 제가 그런 말 종종 듣습니다 움화화!”


그렇게 그를 조용한 곳으로 모셨다. 사실 나는 이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했기에 건물의 구조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3층 건물, 1층은 주방 및 독립된 룸, 2층과 3층은 홀(hall)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구성으로 화장실은 2층과 3층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리고 이건 대외비인데,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도 화장실이 있다. 그곳은 동선상 시야가 잘 닿지 않아 한적히 외진 곳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했다. 우리는 그 화장실에 들었다.

“가까이서 뵈니 더욱 미남이십니다. 정말 리어왕 같으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이것을 좀 읽어 보시겠습니까?”

나는 준비한 희곡 뭉치를 뒷 주머니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지 않은가! 움하하!”

나는 특정 부분을 집어 읽어 달라 말했다.

“가슴은 미어 터져도 입은 다물어야 한다? 움하하!”

나는, 아시겠습니까?! 복창하세요! 뭐라고요!? 하고 외쳤다.

“아무리 가슴이 미어져도! 입은 다물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백 번 더 복창하시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가슴이!! 미어 터졌지 않은가! 하지만!! 입은!! 다물었어야 했지!! 그렇지 않은가! 움하하하!’

그는 술기운인지 얼굴이 상기된 상태였고, 목소리는 자존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가 그 말을 가슴에 새기는 소리를 들으며 그곳을 홀로 조용히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화장실 철문은 철컥 닫혔고, 나는 잠금 장치를 밖에서 걸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베토벤 소나타 5번 1악장이 흐르고 몽롱한 조명에 무화과 파이 아이스크림을 즐긴다. 레스토랑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일 때 행복하다. 또한 맛있는 것도 그러하다더라. 이 가을, 둘 다 취하였으니 이 어찌 아름다운 밤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우우우우우움움움움움하하하하화화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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