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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Dec 20. 2022

소설가의 자격

소설가의 자격 


처음 소설을 쓰겠다 결심 했을 때, 아내가 내게 건넨 건 만년필이 아닌 ‘런닝화’였다. 달리기. 유명 작가들은 모두 잘 달린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자고로 글쓰기란 많이 읽고多讀, 쓰고多作 , 생각하는多商量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들었는데, 뜀박질 이라니 이게 뭔 달밤에 홍두깨 두드리는 소리인가. 허나 내가 이래봬도 애처가 아니겠는가. 그대로 내게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그저 행하는 수밖에. 


누구나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5분을 채 달리지 못했다. 훈련에 훈련을, 고통과 오욕의 시간을 견디다 보니, 한 번 품은 주심走心, 한 떨기 민들레 되었는지, 마침내 42.195킬로미터, 7만하고도 325걸음을 땠다. 내 다리는, 심장은, 바람을, 중력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그 모든 저항을 견뎌 냈다. 오직 소설을 향한 열정 하나로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까지 달렸던 그분의 심경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로 태어나야 했다. 나는 현관으로 가 런닝화 끈을 질끈 묶었다. 

그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양재천을 달려 잠실 즈음 다다랐을 때, 이왕 이렇게 된 거 강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아가다 문득 이정표를 보니 양평 시내가 가까워졌다. 배가 고픈 나는 허연 증기를 무럭무럭 뿜어대던 길가의 찐빵을 낚아채 달리면서 먹었다. 길 위에서의 첫 끼니 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동쪽으로 갔기에 노을을 볼 수 없었지만 발밑이 점점 붉게 번져오는 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짐작했다. 홍천의 초입에서 덕장의 말린 황태를 뜯으며 달렸다. 완전한 밤이 되자 피로와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길가에 쓰러졌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길 위의 첫 취침이었다. 이른 아침 잠 에서 깨어 무성히 자란 토란 잎사귀에 고인 이슬로 목을 축였다. 어디선가 백구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씹다 남은 황태를 주었다. 비록 거지꼴을 면치 못한 초라한 백구였지만 초롱초롱 빛나는 그의 눈 속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오 나의 런닝메이트!, 나는 그를 ‘리차드 파커’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달렸다. 인제를 지나 한계령을 넘어 울산바위를 향해 달렸다. 거룩히 빛나는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오징어를 씹으며 달렸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따뜻한 남쪽으로 뛰고 또 뛰었다. 삼척을 지나 동해를 지나 영덕을 지나 대게의 집게 다리를 씹다 피를 흘리면서도 달리고 또 달렸다. 다시 잠이 온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어둠과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며 아무데나 쓰러져 잤다. 그러다 새벽 어시장의 활기찬 웅성임에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울산을, 부산을 지나며 한 손에는 꼬치 어묵, 다른 손엔 자갈치를 번갈아 맛보며 달렸다. 더는 남쪽으로 갈 수 없기에 방향을 틀었다. 거제를 지나 통영을, 남해를, 싱싱한 굴과 멍게를 즐기며 달렸다. 지리산을 마주하자 해가 진다. 우리는 서쪽으로 갔기에 벌건 노을을 온 몸으로 받으며 여전히 달렸다. 목포와 여수를 지나 세발 낙지를 뜯으며 달렸다. 다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선선한 북으로 전진했다. 찬란히 빛나는 서해를 옆에 끼고 피조개를 씹으며 달렸다. 김포에서 한강을 만나 동쪽으로 달렸다. 

그렇게 양재천에 다시 섰을 때 리차드 파커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더 가야한다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그래서 계속 달렸다. 


그러다 우리는 유명해져 버렸다. 오랜 달리기로 거지꼴을 면치 못한 사람과 백구는 ’그들은 왜 달리는가‘ 라는 사진 한 장으로 스타가 되었다. 마침내 유력 언론이 중계차와 헬기를 동원하여 나를 따랐다. 그러자 우리를 알아본 많은 시민들이 마치 위대한 마라토너의 이 세상 마지막 역주라도 마주한 양, 태극기 까지 흔들며 환호 했다. 

그렇게 열두 번째 양재천에 섰을 때, 나는 숨을 헐떡이던 리차드 파커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다 비웠다.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멈춰 섰다. 달리기는 종료되었다. 석 달 하고도 열흘 만 이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선생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정치적인 목적입니까? 남북통일? 뭐 그런 겁니까?”

“제발 한 말씀 좀 해 주세요. 전 국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소명했다.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이래봬도 애처가랍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수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려는 모든 이가 달렸다. 찬호도, 영숙이도, 택시 기사 김씨도, 영철이 엄마 순자도, 양지 부동산 양씨도, 뿌니 찐빵 분희도, 달렸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거리를, 공원을 달리고, 테헤란로를, 여의도를 달리고, 동해 바다를, 김포 평야를 달렸다. 


한편 쓰는 사람도 급격히 늘었다. 평소 달리기 좀 한다는 이들로, 숨겨진 재능을 발견이라도 한 듯 마구 써대기 시작했다. 병호도, 영자도, 은행원 김 대리도, 미정이 아빠 철수도, 역전 다방 최씨도, 지니 만두 진희도, 썼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식당에서, 화장실에서 쓰고, 부엌에서, 회의실에서 쓰고, 침대에서, 꿈속에서 썼다. 

우리 세상엔  쓰고자 하는 이가 이렇게 나 많은 것이다.


그들은 달리고 썼고, 쓰고 달렸으며, 달리면서 쓰고, 쓰면서 달렸다. 


이제 이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할 일은 여전히 분명하다.


소설만 쓰면 된다, 소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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