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변했다고요? 아시다시피, 이 세계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답니다. 거, 왜 헤라클레스가 그랬잖아요. 우주는 한 순간도 고정되지 않는다고. 헤라클레이토스 라구요?
이런 변화, 당신 보시기엔 아마 부정적인 쪽이겠죠? 그럼 긍정적이냐고요? 에헤, 이것 보세요, 앞에서 입 아프게 설명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긍정? 부정? 질문이 틀렸잖아요 질문이. 그러니 저는 답을 낼 수 없고 당신도 머리 위로 꼽표만 계속 쳐대고 있는 거예요. 저는요, 제 변화는요. 그냥 원래부터 내 속에 존재하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발현되어 묻어 나오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부자연스럽게 그렇게 삐딱하게 앉아 빼딱하게 보면 빼뚜름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자, 소크라테스가 뭐라 했어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데아idea 라는 게 있어요. 그럼 인간도 이데아가 있겠죠? 플라톤 이라구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그런데 그 와중에 또 우리가 각자 고유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데아를 각자의 식대로, 개별적 존재로, 생겨 먹은 대로, 발현하잖아요. 이걸 쉬운 말로 분유分有 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요즘 제가 조금 달라지고 변했다면, 그건 나라는 존재가 진정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스스로 알아가는 중이란 말이에요.
저는요.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생각해요. 그대 보시기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나름대로 꽤 나이스 하거든요. 내 보스도 그랬어요. 늘 품행이방정하고 타의 모범이 된다고. 예의요? 말해 뭐해요. 늘 인사 잘하고, 식사 때 입 밖으로 밥알 튀어나간 적 없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빼먹지 않는 다구요. 못 믿겠으면 내 친구 정팔이 있죠? 걔한테 물어보면 딱 나와요 답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하는지 모르실거에요. 눈뜨면 씻어야죠, 먹어야죠, 나가야죠, 본업 하죠. 시험 봐야죠 잠도 자야죠. 게다가 집안 대소사다 뭐다, 잡무는 또 왜이리 많은지. 그것뿐이겠어요 육체도 막 수시로 변하니까 팔, 다리, 여기 저기 뼈 마디가 쑤시고, 가끔은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 막 깨고 그래요. 인간관계는 또 어떤가요. 살아보니까, 참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게 세상이고, 더 모르겠는 게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삽니다 이렇게. 그러니 어찌 스트레스가 없을 수 있겠어요.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풀고 가야죠? 뭐 그래서 틈나면 게임 좀 하고, 여유 있으면 모바일 게임하고, 심심할 때 콘솔 게임 좀 하는 건데. 아니 그게 그렇게 잘못입니까? 무슨 악행이라도 저질렀냐는 말입니다.
왜 플라톤이 이런 말도 했잖아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라구요? 거 참, 그게 뭐 중하다고 자꾸. 아무튼 너 자신을 알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걸 뭐 꼭 설명을 드려야 되나요. 그냥 직관적으로 느껴보세요.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 보세요. ‘너 자신을 알라’
그럼에도 모르실 것 같아 불손하지만 한 마디 올려야겠네요. 자, 우리 자신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퇴근하고 들어오면, 그냥 널브러져서, 시답잖은 일일드라마에, 이기지도 못하는 야구 경기만 멍하게 보다가, 초저녁부터 쿨쿨 잠이 드시지요. 술은 또 어때요? 머리 아프다고 먹고, 스트레스 받았다 마시고, 기분이 좋아 한 잔, 누구 생일이라 또 한 잔, 안주가 좋아서, 심심하니까 또 드시죠. 게다가 요즘은 소설인가 뭔가 쓴다고 노트북 들고 이 방, 저 방, 심지어 도서관 같은데도 나다니던데. 아니 소설 쓰고 앉아 있으면 밥이 나오나요 떡이 나오나요. 그러니까, 눕지 말고 나가서 달리기라도 좀 하든가, 소파에 뻥튀기 가루만 흘리지 말고 비질이라도 좀 하든가, 닳고 닳은 슬램덩크 좀 그만 읽고 자격증 공부라도 하든가, 아셨죠? 제발 좀 생산적인 활동을 하세요. 정말이지 무용한 시간들이 정처 없이 흘러갑니다 흘러가.
자 이 대목에서, 그동안 제게 해주신 주옥같은 말씀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그것을 떠 올려봅니다. 그때, 제가 제 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갔다 하셨잖아요. 그게 사실 마침 바람이 불어오는 통에 그리된 건데, 당신은 그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이러셨죠. ‘야! 인마! 네가 중2 라는 것도, 사춘기인 것도 세상이 다 알아, 몸도 마음도 힘들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아빠는 다 이해해.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제발 좀 겸손해라 겸손!’ 외치시고는 방문을 꽝!! 닫고 나가셨죠.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제야 말이지만 저 그때 좀 황당했어요. 겸손? 겸손이라. 그럼 내가 그것에 반反하여, 교만하고, 가식적이고, 나아가 무지無知한 인간이라는 말인가. 이래저래 짱구를 굴려 봐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아요. 당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 마디 더 올릴게요. 아빠! 아빠도 중2 아들은 처음이잖아요. 처음은 다 그런 거잖아요. 아빠도 슈퍼맨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한 번 가슴에 새겨보시겠어요? 정팔이 말로는요, 믿음과 소망과 겸손 중에 그 중에 제일은 겸손이라 그러던데요.
이런 제 고백에 많이 놀라셨나요? 자 손 좀 이리 줘 보세요. 괜찮아요. 얼른이요. 자, 우리는 실패를 켜켜이 쌓아 그 위에 한 떨기 국화꽃을 피우는 존재잖아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교만과 가식 그리고 무지를 떨쳐내고 부자지의父子之義를 실천하며 우순도순 살아가 볼까요? 우리 자신을 믿어보자고요. 이래봬도 우리가 경주 최씨 충렬공파 아닙니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