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골집
그날도 단골집에 들었다. 그곳엔 술맛 당기는 제철 안주와, 그 안주에 어울리는 술이 있고, 세파에 찌들어 딱딱해진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그 집의 주인장이 있다.
그날은 삼십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했다. 중년 남자들의 대화가 뭐 별거 있겠는가. 주식, 부동산, 달러, 비트코인. 이어서 골프, 여행, 골프여행, 자동차, 스포츠카, 골프백이 들어가는 스포츠카, 입춘, 자연, 푸른 잔디를 거니는 골퍼. 그렇게 뻔한 안줏거리가 몇 바퀴 돌고, 우리는 더이상 할 얘기도, 비울 술도, 씹을 먹태도 없었기에 빈 술잔만 빙빙 돌렸다.
그러다 동시에 입을 벙긋 거렸다. 아는 노래가 나왔기 때문이다. ‘녹색지대-준비없는 이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말하듯 따라 불렀고, 그러다 목소리는 점점 커져 급기야 클라이맥스에서는 화음까지 맞춰 버렸다. 고성방가. 거 아무리 단골이라도 너무한 거 아닌가 말이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우리는 주인장에게 신청곡! 이라 외치며 ‘사랑을 할 거야’마저 소환했다. 물론 화음은 더 완벽해 졌고.
그렇게 우리만 즐거운 시간이 흐르고, 나는 뻔뻔한 얼굴로 계산을 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마찬가지로 뻔뻔하게, 멀쩡한 척 집에 들어와 옷을 벗는데, 어? 전화기가 없네?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나는 자전거 패달을 밟아 바람처럼 단골집으로 갔다. 주인장은 손님들이 빠져나간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주인장과 나는 가게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허나 그것은 없었다. 나는 쓸쓸히 집으로 자전거를 돌리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애들 사진이 들어있어서... 이건 정말 안 될 일인데...’ 주인장은 심히 공감한 듯, 연신 ‘아이고 아이고’ 하며 나를 배웅했다.
그렇게 다시 집에 돌아온 나를 웬일인지 아내가 반갑게 맞았다.
‘찾았어!’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친구는 대리를 불러 나의 집 앞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차에서 내린 내가 ‘우리 집에서 한 잔 더 해! 돌아와!’ 라고 외치며, 도망가듯 떠나는 친구의 차를 쫓아갔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내가 자전거를 돌려 쓸쓸히 집으로 다시 돌아오던 그 시간에, 우리의 주인장은 단골손님을 위해 쉴 새 없이 내 번호를 눌렀던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한 주민이 어두운 주차장 한 귀퉁이에서 외롭게 울려대는 전화기를 발견했다.
주인장은, 전화기를 애타게 찾고 있으니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두라, 애들 사진이 있다, 외쳤다. 그리고 그의 부탁은 통했다.
그 소동의 과보로, 나는 벌써 일주일째 자발적 금주조치 중이다. 언젠가 그 날이 오면, 고통과 오욕의 시간을 견뎌내고, 금주를 해제하는 날이 오면, 이 동네의 참 시민이고, 시대의 참 어른이자, 육백만 자영업자의 참 모델이 지키는 나의 단골집의 문을 두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