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에 누군가가 웃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좋은 일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봅니다. 휴식을 주셨네요.”
최고 시청률 45.1%에 달했던 인기 드라마 <황금빛 내인생> 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이다. 위암을 직감한 천호진이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내뱉었고,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이 있었던 탓이다. 다른 드라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왜그래 풍상씨>에서도 유준상은 간암임을 알게 되자 “나 언제 죽나?”부터 묻는다. 의사인 최성재가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줘도, “얼마나? 몇 달이나?”라며 되묻는다.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암에 걸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암시하곤 했다. 드라마는 금세 비극으로 이어지고,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농담이나 웃음은 사라진다. 암은 무서운 병. 오랜기간 우린 미디어를 통해 그렇게 배워왔다.
물론 드라마에서만의 허구는 아니다. 현실에서도 암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다. 그렇지만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병도 아니다. 치료되는 경우도 있다. 암은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디가쯤에 있는 질병이다.
발암이다 : 일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를 비유해서 쓰는 말
아이러니한 건 일상에서 암이란 단어는 공포심을 지운 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암 걸린다”는 표현이 그렇다. 사람들은 답답한 상황을 비유해 저렇게 말한다.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경기가 잘 안 풀린다거나, 게임을 하다가 지게 되는 순간에 ‘발암상황’ 혹은 ‘암걸릴 것 같다’고 표현해왔다. 심지어 상황이 잘 풀리면 ‘걸렸던 암이 나았습니다’라고 반대로 말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대게 “농담이었다”라고 치부해버린다. 실제로 SNS에도 이런 표현은 가득하고, 일상에서 거의 대부분이 쓸 정도의 유행어가 된지 오래다. 이미 모두가 ‘농담’이라 규정해놓은 걸 정색하며 따지는 것이 더 이상해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 환자가 이런 표현들을 본다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암 치료 방법 중에 항암 치료는 특히 힘들다고 알려져있다. 항암 치료는 빨리 자라는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라 ‘빨리 자라는 세포’를 모두 죽인다. 머리카락, 손발톱, 위점막세포 등이 대표적이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소화를 못 시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면역세포도 죽이기 때문에 암 환자는 흔한 감기마저 조심해야 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겪어낸 사람이나, 그 과정을 지켜본 가족에 입장에서는 ‘암걸린다’는 표현이 달갑지 않다. 아니 불편하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다. 그저 농담인데 왜 그리 정색하냐는 눈치를 받을까 두렵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현재 187만명이 암에 걸렸거나, 완치된 상태다. 이는 국민의 약 3.5%에 달한다. 친척 중 한명쯤은, 반 친구들 중 한명쯤은, 혹은 그 가족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암 진단을 받은 먼 친적이 있다. 다행히 암은 치료가 됐지만, 몇 년때 약을 복용하고 있고, 일정 기간마다 재발하지는 않았는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가족들에게는 혹시나 다시 암이라는 불행이 찾아올까 늘 걱정스럽기만 하다. 암이란 단어는 친적에게도, 그 가족들에게도 불편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발암이다’ ‘암걸리겠다’는 표현을 입에 담지 않는 건 이런 이유다.
암을 겪어본 사람들은 ‘발암이다’와 같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 ‘암걸린다’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은 암의 무서움을 모른다. 겪어본 적도, 주변인이 암에 걸린 적도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상대의 상처도 모른다. 고통스러운 치료의 기억이 ‘암걸린다’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섬뜩섬뜩 떠오른다는 건, ‘암 드립’은 때론 누군가를 아프게 찌르는 비수가 된다는 걸 의미함에도 말이다.
“요즘 의료기술 발전해서 초기라면 다 치료할 수 있대.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우리가 미디어로 배운 대처는 겨우 이런 수준이다. 아무리 치료가 가능한들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질병이 암이고, 아무리 농담이라도 가볍게 담을 수 없는 단어가 암이다.
주변에서 ‘발암’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가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표정이 어두어지거나, 갑자기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는지를 가늠해본다. 농담에 진지해지는 것만큼 분위기를 못 맞추는 건 없다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다.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보다는 차라리 살짝 재미없는 분위기가 더 낫다고 믿는다. 농담을 했는데 누군가 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