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일 뿐이라는 핑계는 그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식사를 주문하기로 하고 메뉴를 고민하던 찰나였다. 으레 그렇듯이 배달 음식으로 짜장면만큼 익숙하게 떠오르는 음식은 없다. 습관처럼 짜장면 먹자는 말을 이렇게 내뱉었다.
“짱깨 시킬까?”
“그런 말 쓰지 마. 그냥 중국음식이라고 하면 되잖아. 난 그런 말 쓰는 사람 교양없어 보이더라.”
“아, 그렇네. 미안”
짱깨 : 중국 음식점이나 중국인을 속되게 부르는 말
아내는 곧바로 나의 표현을 정정했다. 대수롭지 않은 실수처럼 넘겼지만, 신혼이라 속으로는 적잖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오랫동안 짜장면 대신 짱깨라고 불러왔던 탓이다. 짱깨가 비속어인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기에 큰 잘못은 아니라고 여겨왔던 것일까.
아내는 중국 하얼빈에서 1년간 유학을 했다. 아내의 유학시절 친구들은 중국인이었고, 자주 가던 식당의 직원도 중국인이었다. 심지어 아내의 오빠는 그의 가족과 중국에서 13년째 살고 있다. 그들의 친구도 중국인이고, 회사 동료도 중국인이다. 중국인을 비하한 게 아니라, ‘음식’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쨌든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는 자체는 그들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될지 한 번도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당시 신혼 초기였던 나는 이 표현을 쓴다는 것으로 인해 아내에게 가벼운 사람으로 비춰질까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과거에 주변 많은 사람들은 중국음식을 짱깨라 불렀다. 대학교 동창들도, 회사 동료들도 그랬다. 오래되긴 했지만,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전화때려! 늬 집 말고 짱깨집에!” 짱깨는 영화나 방송에서도 쉽게 쓰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제지가 있기 전까지 면전에서 무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사례가 없으니, 일상적으로 쓰고 배웠다. 지금의 치킨만큼 90년대, 2000년대 가장 손쉽게 시켜먹을 수 있었던 메뉴가 짜장면이었다. 음식이라는 익숙함 덕분에 혐오는 일상 안에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SNS를 하며, 혹은 커뮤니티 게시물들을 보며 일부 사람들은 중국인을 욕할 때도 짱깨라는 말을 쓴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짱깨라는 표현은 중국어로 가게 종사자를 의미하는 ‘장궤(장꾸이, zhǎngguì)’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을 청나라(만주인)의 노예, 청국노를 챤코로라고 부르던 표현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자극적인 게시물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의미를 혼합해서 쓰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음식을 가리킬 때 더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짱깨라는 표현은 중국에 대한 우리의 혐오가 담긴 비속어다. 침략, 전쟁 등 오랜 역사를 함께 한 나라이기에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정치적 관계도 복잡하다. 동북공정, 싸드, 중국 어선의 영해침범, 불법체류자 등 반감을 일으키는 사건은 늘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존중이 결여된 표현을 무신경하게 쓴다. 누군가가 상처받을 걸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상처받을 걸 뻔히 알게 하기 위해 쓰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 SNS에서는 중국 웨이보에 올라왔던 게시글이 종종 보인다. 중국어로 작성된 게시글이지만, 누군가가 한글로 번역을 해놓은 것이다. 주로 ‘한국 뉴스’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을 담은 콘텐츠다. 이 말은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조차도 그들끼리 적고, 웃고, 비판하는 글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짱깨라는 표현 역시 중국인들에게 번역되고 있음을 의마한다. 혐오는 또다른 혐오를 낳는 셈이다.
과거 우리는 조센징이라는 표현이 일제시대 때부터 조선인을 멸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돼왔음을 알고 있다.(최근에는 ‘춍’이라는 표현으로 한국인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일본에 여행을 가서 일본어를 알아들을 순 없지만 ‘조센징’이나 ‘춍’이라는 단어만 스쳐도 모두가 분노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보자. 대한민국 내 거주 중인 중국인은 무려 110만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이전, 하루 평균 한국에 입국하는 중국인 수만 1만명이었다. 우리는 왜 여전히 짱깨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걸까?
음식을 그렇게 불렀을 뿐 중국인을 비하한 것은 아니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음식을 그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문제다. 중국인들은 이미 ‘짱깨’라는 표현을 알고 있고, 짱깨라는 표현이 들릴 때면 비하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여전히 회사나 혹은 지인들과 있을 때 “짱깨 먹을까?”와 같은 표현이 들리곤 한다. “그 말 쓰지 말자”고 말하는 데까지는 제법 용기가 필요하다. 친하지 않은 사이끼린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고 연습 중이다. “짱깨 먹을래요?” “아, 짜장면 말씀하시는 거죠?” 능청스럽게 되묻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거 같아 열심히 되묻는 중이다.
2011년에 국립국어원은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편하다는 국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까지 인정해줬다. 그러니 그냥 짜장면이라고 하자. 이제 짱깨라는 표현은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