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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Mar 12. 2022

이사만 일곱 뻔

내집마련 스토리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즈음, 나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 짐을 넣을 상자를 구해오느라 동네 슈퍼마켓 앞에 쌓여있는 누런종이박스를 몇 개 주워왔다. 이사라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었다. 박스의 한 면을 야무지게 봉하고 짐을 차곡차곡 넣는다. 짐이라기보다 '내 물건, 내 소중한 것들'을 보관하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었다.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좋아하는 친구와 만든 추억의 물건들, 교과서와 학용품, 매일 적어내려간 일기장 그리고 없어져도 모를 부스러기 같은 것들... 


새로 이사간 집은 빌라 반지하였다. 오래된 빌라는 아니었지만 - 밀레니엄이 시작하던 즈음이니 그 때 당시에는 오래된 집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으나 반지하로 지어졌다는 것 자체가 오래된 집이려나 - 반지하는 반지하였다. 재작년 영화 기생충을 보며 기택 가족의 집이 낯설지 않았는데 내가 살던 집이 그것과 흡사했다. 화장실이 부엌보다 두 계단 쯤은 올라가야 존재했고 천정은 낮았다. 큰 방과 작은 방이 있었는데 작은 방에는 보물인지 짐덩어리인지 모를 업라이트 피아노와 작은 TV를 놓으니 공간이 가득 찼고, 큰 방에는 두 짝 정도 되는 장농과 두 살 터울의 오빠와 함께 사용하는 책상, 그리고 CD플레이어와 라디오가 겸용으로 나오는 전축을 두었따. 


그 때 당시 시세로 3,000만원짜리 반지하 전세였다고 하는데 그 상황에서 피아노 전공을 시키려 했다니 이제와서 생각해도 아이러니도 이러한 아이러니가 없다. 여하튼 그렇게 이사를 하고 중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삼 년을 그 집에서 살았다. 




아주 어린시절을 제외하고 내가 기억하는, 내가 이사했던 기억만 일곱 번이다. 그야말로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한 부모님의 신혼시절부터 오빠와 내가 태어난 후에는 거실을 공유하고 단칸방 형태의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집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는데 - 그도 그럴 것이 만 5세 이전의 기억이기 때문인다 - 빨간 고무대야에서 목욕하고 그랬던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었으리라. 이 집은 반지하도 아니고 정말 완벽한 '지하'였다. 그 후에는 아주 가파른 곳 꼭대기 즈음 있는 빌라에서 살았었다. 그래도 그 집은 위치가 애매해서 그렇지 나름 산세권이었고 집 내부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방 두 개에 작은 방에는 작은 발코니도 달려 있었고 나 어릴 때 한참 유행하던 전화기로 하는 TV게임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집 바로 뒷 쪽에 있는 뒷산에도 놀러가고 그 때 찍은 사진도 있다. 이 때는 취학 전이었는데 그 때 동네에 있던 피아노학원을 다니고 싶어해서 없는 살림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피아노는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서울의 빌라 두어 군데를 전전하다가 가장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그 반지하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었다.  


내가 살았던 집들은 이제 와서 그 터를 찾아가보면 모두 재건축이 되어 신축아파트가 되어 있다. 부모님 얘기를 들어보면 '재건축 해야 하니 나가라'고 했던 집도 있었다는데 내 집 하나 없이 전세집을 전전하며 사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군소리 없이 또다른 집을 찾아야 했을테다. 어릴 때는 이사하는 것이 그저 '빈 종이박스를 찾아서 나의 소중한 것들을 담아 옮기는 일' 정도로 생각되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사 한 번 할 때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그리고 내 집 마련에 대한 꿈도 얼마나 컸을까 싶다.


그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아빠가 엄마도 모르게 신청한 일산의 주택조합아파트가 약 5년 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준공이 완료되어 나는 드디어 아파트라는 곳에 살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여섯 번(아니 그 이상)의 이사 후 드디어 '집주인'의 신분으로 낯선 도시의 아파트로 일곱번 째 이사를 했다. 그 집에 들어가기까지 추가분담금 문제로 아빠가 많이 고생하셨고 이사하기 전 집주인이 전세금을 빼주지 않아서 애먹었다는 사실은 나이가 먹고 결혼한 이후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돈을 벌고 있으며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가 되었다. 이 나라에서 부동산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깨닫고 있으며 단순히 '집'이라는 것이 거주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더이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내가 가진 자산을 조금씩 늘려나가며 부모님, 오빠 집도 하나하나 마련하는 데 일조할 수 있었다. 빚 내면 큰일나는 줄 알고 살았던 시절부터 빌라, 오피스텔, 아파트 등 등기치고 공부하는 오늘날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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