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은 안 꾸었는데” 라고 아내가 말했다. 임신 4주차 때였다.
“아마 우리 엄마가 꾸었을 수도 있어. 이따 전화하면 ‘엄마가 꾼 꿈이 태몽이었나보다.’ 라고 하실 수도 있어.” 라고 내가 대답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엄마는,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태몽을 잘 꾸곤 하셨다. 엄마가 태몽을 꾸고 나면, 주변 어디선가 꼭 임신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에도 내 예상대로 였다.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 한 후,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다. 아빠한테는 “아빠~ 나도 아빠가 된 것 같아.” 라고 말했는데, 엄청 좋아하시며 아내에게 “아이고~ 고맙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기인데 아빠가 고맙다고 하는 것이 퍽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옛날 분이시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엄마에게는 따로 전화를 걸어 “엄마~ 우리 식구가 하나 더 늘었어.” 라고 말했다. 엄마는 “꺅!” 이라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태어나서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았다. 엄마는 “축하해”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꾼 꿈이 너희 태몽이었나보다 라며 얘기를 해주셨다.
“옛날에 우리 논 있잖아, 그 논에 엄마가 갔는데 이상하게 거기 예쁜 꽃이 피어있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속으로 ‘이상하다, 여기 왜 이렇게 이쁜 꽃이 있지. 저거 꺾어다가 지영이 줘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옆에 보니까 이미 지영이가 있었어.”
엄마의 태몽 이야기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꽃 태몽은 처음 들어봐서 내옹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엄마가 그 꽃을 보고 지영이를 생각했다는 것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그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고 아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시는 거 보면 엄청 기다리셨을텐데, 아기 얘기 한 마디도 안 하시고... 어머니 진짜 대단하신거야.”
내가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여자 중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두 명있다.
한 명은 하나 뿐인 아들임에도 우리 부부의 삶에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멀찌기 지켜보시고 응원해 주시는 우리 엄마(본인은 시집살이를 모질게도 겪으셨다). 또 한 명은 그런 시어머니의 노력을 나 보다 먼저 눈치 채고 고마워하는 아내.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참 감사한 일이다.
엄마는 태몽을 얘기하고 아마 딸 같다고 하셨다. 나도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잠깐 바랐지만, 그것도 내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뱃속에서 아이가 커가는 얘기를 조금 들어보았는데, 그저 건강하게 집 잘 짓고, 잘 크고, 잘 태어나는 것만해도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드림아 건강하게만 잘 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