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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승욱 May 21. 2020

태몽은 안 꾸었는데

건강하게만 커다오


태몽은  꾸었는데라고 아내가 말했다. 임신 4주차 때였다.

아마 우리 엄마가 꾸었을 수도 있어. 이따 전화하면 ‘엄마가  꿈이 태몽이었나보다.’ 라고 하실 수도 있어.” 라고 내가 대답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엄마는,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들의 태몽을 잘 꾸곤 하셨다. 엄마가 태몽을 꾸고 나면, 주변 어디선가 꼭 임신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에도 내 예상대로 였다.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 한 후,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다. 아빠한테는 아빠~ 나도 아빠가   같아.” 라고 말했는데, 엄청 좋아하시며 아내에게 아이고~ 고맙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기인데 아빠가 고맙다고 하는 것이 퍽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옛날 분이시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엄마에게는 따로 전화를 걸어 엄마~ 우리 식구가 하나  늘었어.” 라고 말했다. 엄마는 “!” 이라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태어나서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았다. 엄마는 “축하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꾼 꿈이 너희 태몽이었나보다 라며 얘기를 해주셨다.


옛날에 우리  있잖아,  논에 엄마가 갔는데 이상하게 거기 예쁜 꽃이 피어있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속으로 ‘이상하다, 여기  이렇게 이쁜 꽃이 있지. 저거 꺾어다가 지영이 줘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옆에 보니까 이미 지영이가 있었어.”


엄마의 태몽 이야기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꽃 태몽은 처음 들어봐서 내옹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엄마가 그 꽃을 보고 지영이를 생각했다는 것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그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고 아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시는  보면 엄청 기다리셨을텐데, 아기 얘기  마디도  하시고... 어머니 진짜 대단하신거야.”


내가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여자 중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두 명있다.

한 명은 하나 뿐인 아들임에도 우리 부부의 삶에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멀찌기 지켜보시고 응원해 주시는 우리 엄마(본인은 시집살이를 모질게도 겪으셨다). 또 한 명은 그런 시어머니의 노력을 나 보다 먼저 눈치 채고 고마워하는 아내.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참 감사한 일이다.


엄마는 태몽을 얘기하고 아마 딸 같다고 하셨다. 나도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잠깐 바랐지만, 그것도 내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뱃속에서 아이가 커가는 얘기를 조금 들어보았는데, 그저 건강하게 집 잘 짓고, 잘 크고, 잘 태어나는 것만해도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드림아 건강하게만 잘 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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