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좋아요
일주일 하고도 이틀을 더 기다렸다.
열흘은 있다 가봐야 아기집이 보일거라는 임신 경력자인 엄마의 조언때문에.
전에 갔던 동네의 작은 산부인과는 산과를 보지 않기 때문에 시내의 큰 산부인과로 가보기로 했다. 물론 그것도 폭풍검색의 결과다. 인터넷 커뮤니티... 그것은 임신 과정의 한줄기 빛...
최종 선발된 산부인과는 여성 의사, 최신식 시설, 호텔식 조리원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조리원의 직원분들이 친절하고 직원 당 맡게되는 아기 수가 다른 곳보다 적다는 점, 원장선생님은 비록 남자이긴 하나 따듯하게 잘 봐준다는 점이 끌렸다.
예약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서둘러 아침에 갔다. 1등으로 간 환자가 되었다.
남편이 동행했는데 막상 산부인과로 들어가니 남편도 긴장을 한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뒤 쇼파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피검사 결과를 알리는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나도 저 전화를 받는 사람이었지.
나는 좀처럼 긍정회로를 잘 돌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늘 최악을 생각하고 미리 방어하는 능력만이 탁월한 자다. 그렇다고 해서 최악의 경우, 딱히 의연하지도 않은 타입이다. 맞다. 나는 그냥 부정적인 자다.
처음 만난 원장선생님은 이제 막 손주를 볼법한 아저씨와 할아버지, 그 중간 어디쯤의 남성이었다. 아기집을 확인해 보러 왔다 하니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아. 남자의사가 하는 질 초음파는 처음인데...
그러나 담담했다. 그저 의료행위라고 생각하니 그닥 수치스럽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상한게 '그 의자'도 없었다. 그냥 침대에 누워 다리를 세우면 초음파를 시작했다.
"근종이 있네요?"
역시나 근종 녀석들은 잘 있구나.
"네, 알아요."
대답하면서 화면을 보니 어두컴컴한 내 자궁 속 보이는 작은 점 하나.
"아기집이 보이네요. 그런데 모양이 예쁘진 않아요. 근종 때문에 아마 눌려서 인 것 같아요."
하...tnlqkf... 근종 새끼들 죽일까.
"그리고 아기집을 둘러싼 하얀 테두리가 명확하지 않아요. 아직 초기인 것 같아요. 한 4주..5일?"
기다렸던 '아기집이 있다'는 의사의 선언을 들었음에도 부정적인 말들이 더 크게 들렸다.
모양이 예쁘지 않고, 테두리가 명확하지 않고...않고.. 않고...
의사가 말했다.
"안 좋아요.."
아, 좋지 않게 임신이 됐구나.
"네.."
우울하게 대답했다.
"안 좋아요.."
"네네..."
자꾸 안좋다는 의사의 말에 계속 안좋게 화답하고 있는데 초음파를 끝내며 의사가 소리를 높였다.
"아니, 안좋아요??"
나에게 임신을 해서 안좋은거냐고 계속 물어봤던 것이었다.
의문문을 평서문처럼 말하는 의사 탓도 있겠지만 '않고, 않고'에 집중하느라 기뻐해야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직 초기이고, 근종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체는 자궁에 착상했고 미약하나마 집을 지었다.
그런데도 남편까지 데려온 마당에 내가 임신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 눈치인것 같자, 의사는 계속 물어봤고.. 나는 계속 우울하게 대답하고...ㅎㅎ
초음파실을 나오며 나는 그제서야 깔깔 웃었다.
"선생님이 물어보는 말인줄 몰랐어요. ㅜㅜㅋㅋ"
산모수첩에 첫 초음파 사진을 붙인 뒤 의사가 외쳤다.
"임신을 축하합니다. 자, 박수!"
옆에 서있던 간호사선생님과 남편, 그리고 나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임신을 확인한 날, 12월 2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