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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 lang Jun 07. 2021

그러나 우리는 정작 쉬지못하고

어떤 휴일을 만들것인가

  "휴일엔 두 가지가 있어."

   산을 오르며 남편이 말했다. 

  "어떻게 두 가지야?"

  고르지 못한 길에서 어디를 디뎌야 할지 고민하며 내가 대답했다.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하는 휴일과 뿌듯하게 여러가지 일을 한 휴일이야."

  

그렇다면 산을 오르고 있는 휴일인 오늘은 후자가 되겠다, 고 생각하며 '두 가지 휴일'중 무엇이 될지 몰랐을 때의 오늘 아침을 떠올렸다. 정신없이 준비하고 집을 나서는 내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자던 남편은 열시나 되서야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침대에서 뭉그적 거리며 폰을 하다가 손오공 머리를 한채로 몸을 일으켜 온라인 예배를 틀어놨겠지. (예배를 드렸는지는 미지수) 예배가 끝날 즈음에야 문득 허기지다는것을 깨달은 남편은 꼬꼬면과 용가리 5개와 만두2개를 구워먹었다고 했다. 


높은 확률로 남편은 바로 설거지를 하기보다는 먹고 남은 잔해들을 방관한 채로 유튜브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어제도 이런식으로 휴일을 온통 보내버렸다고 느낀 순간, 남편은 결심의 기로에 선다. 오늘을 어제처럼'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하는 휴일'(이햐 무아휴)을 만들것인가 '뿌듯하게 여러가지 일을 한 휴일'(이하 뿌여휴)로 만들것인가!


기특하게도 남편은 오늘을 '뿌여휴'로 만들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그릇들을 들고 부엌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무아휴'가 되기에 오늘은 아까운 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슬쩍 먹은 것만 씻어서 얹어놓을 수 있었으나 그는 그릇 건조대를 정리했다. 건조된 그릇을 그릇장에 차곡차곡 넣고 설거지를 한뒤 싱크대, 하이라이트 위, 그리고 그 언저리 등을 닦고 더러워진 행주는 버리고 새로운 스카치 행주를 꺼내 놓았다. 


다음으로는 세탁물을 해치울 차례였다. 세탁물로 꽉찬 세탁기에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고 표준세탁을 눌렀다. 빨래 하느라 부인의 전화도 받지 못한채로. 이 세탁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은은한 향기를 선사했던 곰돌이 섬유유연제는 은퇴하게되었다. 새로운 섬유유연제 주문이 '뿌여휴'의 투두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온 그의 눈에 형편없게 흐트러진 침대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퀘스트였을 것이다. 배게와 이불과 인형(...)을 제자리에 놓고 이불을 펄럭~ 펼치며 가지런히 정리했다. 이불에 수놓아진 꽃 패턴의 규칙성이 가지런함을 +1 시킴으로 오늘은 당당히 '뿌여휴'로 자리매김하였다. 


뿌듯한 마음으로 남편은 부인의 퇴근을 기다리며 등산코스를 계획했다. 그리고 대망의 등산! 피곤하지만 오랜만의 등산에 설레버린 부인과 함께 '뿌여휴'의 피날레인 등산길에 올랐다. 습한 사우나같은 산 속을 마스크를 낀채 오르니 얼굴이 터질듯 뜨거워지고 땀이 폭발했다. 그러나 등산에서 느끼는 건강한 고통이야말로 '뿌여휴르가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힘들면 힘들 수록 우리의 뿌듯함은 배가 될테니!

  

  "그래도 무기력하게 아것도 안하는 휴일에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돼"

   가장 평평해 보이는 부분을 딛고 올라서며 내 말했다. 

  "맞아. 그게 중요한 거 같아. 쉬는 건 어쨌든 중요한 거야"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우리는 '무아휴'의 가치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쩐지 모순적이지만. '뿌여휴'만큼이나 '무아휴'가 주는 이로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일이라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건 아닐테니까"


남편의 말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했다. 요가 시퀀스의 마지막 순서인 '사바아사나'가 생각났다. 몸에 잔뜩 주고 있던 힘을 스르르 빼버리고 생각하는 근육조차 쉬어야 하는 수련.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단계이자 힘써 몸에 힘을 빼는(?) 요상한 수련. 그래서 어쩐지 가장 어려운 수련.

  

'뿌여휴' 만큼이나 '무아휴'가 중요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쉰다'는 것을 정확히 행하지 못하며 산다. 살아가는 한 대부분의 휴일에 그럴 것이다. '무아휴'를 보낼 자격이 있는지 늘 자신을 의심하면서. '뿌여휴'가 그래도 낫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두가지 휴일 중, 어떤 휴일을 보낸다 하더라도 적어도 서로에게는 언제든 기꺼이 말해주기로 한다. '너는 쉴 자격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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