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애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집개구리 Jun 13. 2016

그녀의 '덫' #28

주변을 돌아보아야 할 때

무경은 한동안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날 지켜보다가 집에 데려주겠다며 집을 나섰다.
무경의 차에 탄 나 역시 아쉬움과 함께 그와의 스킨십이 자꾸 떠올라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무경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괜찮아?"


그와 마주 보니 얼굴이 또 화끈거렸고, 그렇게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하다가 창 밖을 내다보았는데,


"자기야."

"응?"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래, 어색하고 떨려. 그러니까 혼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언제부터였을까. 무경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게 된 것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태인지 그를 통해 알게 되면서 난 조금씩 더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 오늘은 못 잊을 것 같아."

"왜?"


살짝 볼이 발그레지는 무경.


"너무 좋아서. 자기랑 키스. 정말 황홀했거든."

"그만 해. 나 진짜로 어색하단 말이야."

"자기야."

"왜?"

"이런 말은 자주 해주는 게 좋데. 그래야 서로 뭘 좋아하는지 파악할 수 있잖아. 그리고 언젠가는......"

".........?"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덧, 그의 차가 하나의 집 앞에 도착하였고, 차에서 먼저 내린 그가 잡은 내 손을 내려보더니 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보내기 싫다 진짜. 그냥 나랑 같이 살면 안 돼? 이렇게 떨어져 있는 거 점점 못 참겠어. 난 가끔 자기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을 때가 있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볼 수 있게."

"그건 좀 비현실적이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잖아."

"응? 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댄 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전송 버튼을 눌렀는데, 잠시 후 '띠링' 메시지 수신음과 함께 그가 핸드폰을 살피더니 전송받은 사진을 보며 해맑게 웃는다.


"자기 진짜로 사진발 안 받네. 이거 봐 엄청 무섭게 나왔어. 그치?"


키득거리던 그가 나의 매서운 눈초리에 다시 말을 바꾸며


"자기는 실물이 훨씬 예쁘니까."

"뭐라고? 무서워? 사진빨?"

"화내는 것 봐 애들처럼. 귀여워."

"말 돌리지 말고 다시 말해 봐. 내가 어떻다고?"


그가 웃으며 손으로 내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눈꺼풀과 코, 그리고 입술에 차례대로 키스를 한다.


"사랑해."






그의 달달한 고백에 또 한번 정신줄을 놓은 난, 그에게 손을 흔들며 집 안으로 들어왔고, 불을 켜고 거울을 쳐다보며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래도 선크림은 꼭 발라주는데. 이 주근깨는 왜 안 없어지고 더 생기냐."


얼굴을 손으로 하나하나 만져보던 난 입술에 닿았던 그의 손길을 느끼며 잠시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거울 너머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고 '획' 고개를 돌렸는데,


방 한 구석에 이불을 뒤집어쓴 하나가 보였다.

놀란 마음에 그녀에게 달려간 난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냈는데, 그 안에 하나가 눈이 퉁퉁 부은 채 울고 있었다.


"하나야.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몸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잠시 후 나에게 기대었다.


"왜 그래? 말해 봐."

"헤어지재. 나보고."

"뭐?"

"동진씨가 그만 만나재."


동진이는 사귄 지 3개월 정도 된 하나의 애인이다.


"왜? 왜 그만 만나?'


훌쩍거리며 이불에 코를 푸는 하나.


"나보고, 집착이 심하데. 맨날 자기 감시하는 것 같다고. 왜 나한테 상황 보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기 못 믿냐고."

"네가 무슨 집착을 해? 남도 아니고 당연히 사귀는 사이인데 그 정도 관심도 없으면 남하고 다를 게 뭐가 있어."

"나도 그렇게 말했는데 자긴 다른 남자랑 다르데. 자유롭고 싶고, 간섭받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 사람을 왜 만나? 혼자 솔로로 자유롭게 살지 뭐하러 만나? 넌 그런 소리 듣고 가만히 있었어?"


고개를 젓는 하나.


"사실, 얼마 전부터 내 연락도 잘 안 받고, 연락도 안 하고 그래서 무슨 일 있나 해서 신경 쓰였거든. 그러다가..... 동진씨 핸드폰을 보게 됐는데....."


다시 훌쩍이는 하나를 보며 궁금한 마음에 재촉하고 싶었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른 여자가 있더라."

"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고."

"뭐야 그럼, 그동안 양다리였어?"

"게다가 그 여자 와이프더라."

"뭔 소리야 그게?

"그 여자가 동진씨 와이프라고."

"하...... 기가 막힌다 진짜. 그럼 유부남이 처음부터 널 속이고 만났던 거야?"

"처음에 나한테 그랬거든. 자기가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서 밤에는 연락 안 되고. 메시지 보내도 바로 답장 못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집안이 엄격해서 외박은 안된데. 새벽에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대신에 같이 있을 때는 정말 잘하겠다고."

"......... 뭐라고 할 말이 없네."


하나가 얼굴을 이불에 묻으며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다 이해한다고, 알겠다고, 항상 기다리고, 연락 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그러다 문자 하나 오면 너무 행복했는데, 그런 내가 정말 병신같이 느껴져."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 사람도 네가 이러는 거 알아?"

"응. 와이프 메시지 보고 바로 물어봤어. 누구냐고."

"그런데 뭐래?"

"처음엔 아니라고 하더라. 친군데 장난으로 그렇게 이름 저장한 거라고. 그래서 메시지 뒤졌는데, -집에 언제 들어오냐, 내일 친정아빠 생신인데 언제 갈 거냐, 시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었다. -그러고 나니까 나보고 어차피 내가 집착이 심해서 안 만나려고 했었데. 처음부터 그랬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상처 줄까 봐 말 안 하고 있었다고."

"뭐? 이런 미친 XX가!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자기가 가정이 있는 거 알았더라도 내가 자길 만났을 거래. 그래서 하나도 미안하지 않데. 내가 원해서 만나준 거니까."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주방으로 다가가 수납장을 열었다.

가위와 호두나무로 만든 도마, 도깨비방망이 등을 꺼내다가


"아니지, 이렇게 죽이면 너무 쉽고 뻔하잖아. 내일 쥐약이라도 사야겠어."


흥분한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하나가 침대로 기어가더니 눕는다.


"예랑아."

"나 말리지 마. 지금 바빠."

"지금 좀 힘든데 그만하고 자자. 그리고 죽여도 내가 죽여. 네가 아니고."


힘없이 속삭이는 그녀를 쳐다보다가 침대 위에 걸터앉아 하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너 혼자 힘들게 안 해. 나 그런 거 못 봐. 아무튼 오늘은 푹 자고 내일 같이 생각해보자. 그런 자식은 가만 두면 안돼. 초범이 아닐 수도 있고, 또 그런다고 다른 사람한테. 꼭 같이 혼내 주자."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앞에서 하나가 잠이 들 때까지 지켜보다가 혼자 얼마나 분하고 힘들었을까 하는 걱정에 울컥 치밀어올랐다.


하나는 나에게 가족 같은 존재이다. 형제 없이 외롭게 자란 날 학교에서 처음 봤을 때에도 먼저 웃으며 손을 내밀어주었고, 내성적인 성격에 항상 손해를 보게 되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날 챙겨주던 친구였다.

마치 친언니처럼 내가 힘들 때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녀가 얼마나 고마운지...

속이 깊어 항상 밝고 웃는 모습으로 날 대했던 그녀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오열을 터뜨렸다.

'사랑했구나. 그를 정말 사랑했어. 가엽게도.'


하나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웠다.


오늘은 잠이 오지 않는 길고도 까마득히 어두운 그런 밤이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의 '덫' #2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