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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Aug 02. 2016

그녀의 '덫' #33

기억의 열쇠

다음 날, 무경을 보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시창이 알려준 데로, 그가 있는 병실을 찾아 천천히 문을 열었다.


통창이 블라인드로 반쯤 가리어진 어두운 병실 안, 창가 침대에 무경이 누워있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하루 만에 수척해진 그의 얼굴.

 

승주가 말했었다. 얼마 전부터 무경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그런데 왜 그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의 곁에 항상 있었는데, 왜 난 몰랐을까.


침대 옆에 놓인 심장박동기를 쳐다보았다.

일정한 리듬의 그래프로 그가 숨을 쉬고 있음을 알려주는 기계 화면을 보며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하얗고 커다란 그의 손. 항상 내 손을 잡아주던 그의 손이 힘을 잃어 축 늘어져 있다.

작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무경씨. 나 왔어."


대답이 없는 무경.


"자기야......."


그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렸지만,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병실 문이 열리며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승주가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날 보던 그녀가 무경의 곁으로 다가와 능숙하게 수액을 교체하며 그의 상태를 체크한다.

그리고는, 이불을 가지런히 무경에게 덮어주며 날 쳐다보았다.


"나랑 얘기 좀 할래요?"






진료상담실에서 승주와 마주 보고 앉았다.

언젠가 그녀를 다시 볼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이 곳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어제 일은......"


그녀가 말을 꺼내자 난 고개를 숙였고, 승주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문제는 강변호사님이 그쪽과 합의를 보고 해결할 거예요. 전에 시창이 때문에 이런 일들이 잦아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에요. 맞은 사람이 중상은 아니어서, 건물 하나 정도에서 정리가 되겠죠. 예랑씨한테 하고 싶은 말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예요."


그녀의 심각한 말투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트를 들여다보던 승주가 묻는다.


"무경이 아픈 거 알고 있었나요?"

"전에 얘기해준 적이 있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증상이 정확히 어떤 지 예랑씨는 알고 있어요?"

"가끔 악몽을 꾼다고 들었어요. 전에 무경씨가 아플 때 같이 있었는데, 한 번씩 잠을 못 자고 가위가 눌린다고 했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던가요?"

"자세히는 아니지만, 어릴 때 사고 이후로 그랬다고 들었어요.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얘기를 듣던 그녀가 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눈을 찡긋거리며


"그냥 편하게 얘기할게요."


난 그녀의 말에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무경이는 나에게 환자 이상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죠?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고, 빨리 그가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증세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그 이유가 어릴 때 납치로 인한 정신적인 트라우마이고, 그 후유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치료를 받아왔구요."


그녀는 표정으로 모든 것을 미리 말해주고 있었는데, 그녀의 진지한 눈빛에 난 '덜컥' 겁이 났다.


"약물치료 중에 항정신성 약품을 처방하게 되는데, 장기 복용하게 되면  몇 가지 부작용이 생겨요. 감정조절장애와 수면장애.


그녀가 잠시 말을 끊고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서 평소에 감정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해요. 스트레스 관리도 해야 하고, 지금까지 무경이가 잘 해왔는데, 최근에 달라졌어요. 지켜보았는데, 전과 다르게 감정 컨트롤이 안되고 당신을 만나고 나면 항상 예민해져 있고, 흥분상태였어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아픈데, 그게 나 때문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최근에 무경이를 체크하다가 얼마 전에 최면치료를 시도했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그가 아픈 이유가 그 납치 사건 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전의 어떤 기억. 최면 도중에 무경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멈추긴 했는데, 내 소견으로는 그래요. 최면치료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원인을 유추하기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환자의 정신적인 소모와 고통이 상당하기 때문에 쉽지 않죠."


그녀가 잠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말에 두서가 없죠? 미안해요. 사실 나도 지금 상황이 전부 이해가 되는 건 아니어서, 정리가 필요해요."


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무경씨가 아픈 게 내 영향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 질문에 잠시 승주가 머뭇거리며


"백 프로 확신할 순 없지만, 내 소견은 그래요. 어제 일도 있고, 당신의 무언가가 무경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맞는지, 맞다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만약 저대로 둔다면 더 이상의 치료도 무의미하고, 심해지면 졸도나 발작, 수면 마비 등의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거의 힘들어진다고 봐야 하겠죠. 그래서 예랑씨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그의 기억의 퍼즐을 맞추기 위한 열쇠는 당신인 것 같아요. 서예랑씨."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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