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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Aug 07. 2016

그녀의 '덫' #34

나의 우주가 흔들리고 있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무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깊은 눈매와 긴 속눈썹, 그의 코와 입술. 그리고 부드러운 갈색머리.

그를 만지고 싶었지만, 숙면을 취하고 있는 데 깨울까 봐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죠? 뭘 해야 하나요?"


승주는 한동안의 침묵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는데,


"아마 무경이가 깨어나면 집에 가겠다고 할 거예요. 그럼 난 말릴 거고요. 그건 내가 할 수 있어요. 아무리 병원이 싫어도 지금은 옆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하니까....

예랑씨가 무경이의 치료에 동참해주면 좋겠어요. 필요하다면 예랑씨한테 최면요법도 써 보려 해요. 혹시 두 사람에게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무의식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는 거죠."

"그게 도움이 될까요? 그래도 소용이 없으면요. 무경씨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녀가 빤히 날 쳐다보았다.


"해 봐야죠.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 외 의학의 힘으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니까...."


그녀의 진지한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난, 천천히 얼굴을 들어 그녀의 시선과 맞닿았다.

그리고, 물었다.


"좋아요.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죠?"







한동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의 맑고 깊은 눈,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잠시 후, 목이 잠긴 목소리로


"안녕?"

"좀 괜찮아?"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 좀 줄까? 아니면 승주씨 불러올까? 자기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어."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나 좀 일으켜줄래? 움직이지를 못하겠어.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괜찮겠어?"


그의 재촉에 그의 어깨를 끌어안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잠시 그가 휘청거리더니


"어지러워, 얼마나 누워있었던 거야?"

"한 이틀 정도 됐어. 약기운 때문에 그럴 수 있어."

"자기는,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나 때문에?"


난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고, 그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더니


"이리와, 나 좀 안아줘."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고 가슴으로 끌어당기는 무경.


"나 힘없다니까, 자꾸 힘쓰게 할 거야?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그에게 안겨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그가 내 어깨를 꼭 감싸 안는다.


"긴 꿈을 꾼 것 같아. 아니, 그게 마치 실제인 것처럼 생생해."

"무슨 꿈을 꾸었는데?"

"말해도 돼?"

"뭔데?"

"자기랑 같이 자는 꿈."

"뭐?"


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서 그를 째려보았는데, 그가 키득거리며 웃고 있다.


"아니, 그냥 옆에서 같이 손 잡고 잠들어있었다고.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응큼하긴."


난 그 말에 얼굴이 빨개져서,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어, 나와."

"나 갈래."


그가 내 팔을 잡으며


"가지 마. 나 아프잖아. 봐. 환자라고."

"그런데 왜 자꾸 장난을 쳐?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숨이 막혀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사람을 왜 그렇게 놀래키고 그래? 잘못될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데!"


내가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그런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무경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미안해서."

"뭐? 뭐가 미안해?"

"우리 같이 바다 가기로 했는데, 그렇게 못해줘서..... 그래서....."


난 잠시 할 말을 잃었고,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속삭였다.


"자기랑 정말 같이 가고 싶었는데, "

"다음에 또 가면 되지. 그게 뭐가 중요해?"

"그 날이 우리 사귄 지 100일이었다고. 또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도 있고."

"100일? 정말?"

"몰랐어? 바보. 어떻게 우리 100일도 모르냐?"

"그런 걸 해봤어야지. 그리고 나 일일이 그런 거 챙기는 거 별로야."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나 기절했다 방금 깨어났는데, 또 쓰러질 것 같아. 누군 해봐서 알아? 서로 사랑하면 기념일 챙기는 거 당연한 거잖아."

"몰라, 아무튼 그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하니까 신경 쓰지 마."

"나 또 상처받았어."

"난 몸에 사리가 백개는 생겼거든? 상태가 이런데 철 없이 무슨 백일 타령이야!"

"나한테 철없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서예랑, 너 밖에 없을 거야."

"사람들이 자길 모르나 보지."

"읔!! 자기가 화내니까 나 갑자기 더 아픈 것 같아."

"뭐? 어디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그가 웃으며 내 손을 잡는다.


"키스해줘."

"아프다는 거 뻥이지? 나 진짜 화낸다?"


그가 내 몸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난 빠져나오려 바둥대다가 결국,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따뜻한 입술. 달콤하면서 깊은 향이 나는 그와의 키스.







그와의 스킨십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을 때 즈음, 문이 벌컥 열리며


"어라? 지금 이게 병원에서 뭐하는 짓이지?"


시창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무경에게서 떨어졌는데, 시창이 무경을 손으로 가리키며 깔깔댄다.

다시 그를 보니, 내 립스틱 자욱이 무경의 얼굴에 도배가 되어있었다.


"무슨 여기가 호텔인 줄 알아? 병원비 내줬더니 호텔에서 하는 걸 여기서 하고 있어? 이제 보니, 괜히 엄살 부린 거 아냐? 승주 누나한테 이를 거야. 너 꾀병이라고."


무경이 정색을 하며


"넌 왜 왔어?"

"사람이 어쩜 이래. 형 기절했을 때 업고 뛴 것도 나고, 밤새 옆에 있었던 것도 나고, 혹시라도 정신 차렸을까 죽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영화 촬영 중에 잠깐 짬 내서 달려온 것도 이 몸이신데, 뭐? 왜 왔어?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시창이 손에 들고 있던 죽이 들은 비닐봉지를 흔들거리며 무경을 째려보았다.

그 모습에 무경이 뒤돌아 눕더니 눈을 감는다.


"나 피곤해. 가."

"지금까지 예랑씨랑 불타올랐으면서, 난 피곤해? 완전 치사해."


시창이 무경에게 다가가 손으로 등을 꾹꾹 찌르자, 무경이 발로 시창을 찼다. 티격태격하는 그 모습난 문을 쳐다보며,


"혼자 왔어요?"


바닥에 앉아 무경의 발을 잡고 깨물고 있는 시창.


"아뇨, 하나 누나도 같이 왔어요.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해서."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다시 병실 문이 열리며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경씨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돼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경에게 사과를 했고, 무경이 그 모습에 몸을 일으키려다 어지러운지 다시 '털썩' 침대에 기대었다.


"아니에요. 이건 하나씨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무경의 말에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미안해요. 정말."


그녀의 반복되는 사과에 병실안이 숙연해졌다.








"예랑아, 나 당분간 집에 내려가 있으려고 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가 버스 안에서 말을 꺼내었다. 난 그 말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더 이상 사람들 볼 면목도 없고, 원장님한테도 너무 미안하고, 너한테도...... 그리고 엄마가 아프시데. 식당에 사람이 없어서 혼자 계속했는데, 관절염이 심해져서 가서 도와드리려고."

"하나야....."

"나 며칠 동안 신중하게 결정한 거니까 아무 말하지 말아줘. 나 괜찮아. 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나 좀 이해해줘. 넌 유일한 내 친구잖아."


하나의 확고한 말에 난 묵묵히 듣고 있었다.

'잊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게 지금 최선이겠지.'









집에 돌아와 저녁 밥상을 차렸다. 기운 없이 쳐져있는 하나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쌀을 씻어 밥을 짓고, 그녀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함께 마주 보고 앉아 저녁을 먹었고, 하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웃음을 짓다가 결국 밥숟가락을 든 채 펑펑 울어버렸다.

그 모습에 난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어, 그녀의 곁에 다가가 안아주었다.


뭔가가 변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것을 미리 예측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이 불안함을 조금은 감추고 싶은데.......

나의 우주가 무너져내려 날 덮치는 이 압박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그게 참 어렵다.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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