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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Sep 18. 2016

그녀의 '덫' 에필로그

떠나보내며

1층 카페에 내려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여름의 강렬한 아침햇살이 카페 안 테라스를 환하게 비추이고 있다.


요새 들어, 두통이 심해져 잠을 계속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이 바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한국에 돌아와서 3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음 달에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작가와 매일 회의를 하고 있지만, 전혀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반복되는 상황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하아......'


살짝 눈을 찌푸리고, 시계를 보았는데 오전 7시 30분이 막 지나가고 있다.

삼십 분 후에 미팅인데, 데리러 오기로 한 비서에게서 길이 막힌다며 조금 늦을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초조한 마음에 테라스 밖을 쳐다보는데, 한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새까맣고 짧은 단발머리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

이십 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그녀는 계단 끝까지 내려오더니 허리를 활짝 펴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맙소사, 지독한 음치이군......'


언뜻 보면, 키가 작아 어리게 보였으나, 자세히 바라보니 탄탄한 몸매와 유연함이 꽤나 여성스러웠다.

스트레칭을 마쳤는지, 허리를 숙여 풀린 신발끈을 묶는 그녀.

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까맣고 깊은 그녀의 눈빛에 꼼짝할 수 없었던 난, 가까스로 그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신발끈을 묶고 '툭툭' 일어나 조깅을 시작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떨리는 손을 내려보았는데,


'왜 이러지.'


마치 그 짧은 시간에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떨고 있었다.

손을 올려 가슴에 갖다 대었는데, 약간의 통증과 함께 심장이 크게 뛰고 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몇 년만에 처음으로 그 악몽이 시작되었다.

괴한에게 쫓겨다니는 꿈. 어둡고 차가운 상자 안에 갇혀 겁에 질린 나의 모습.

창고 안에서 들리는 희미한 신음소리.

'헉!!!'

잠에서 깨어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고, 난 머리를 흔들어 꿈속의 기억을 지우려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아이를 보았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자아이였는데........


아무래도 승주한테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일의 압박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

몇 달 전 상담을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그렇게 오늘도 뜬 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카페가 오픈하기를 기다렸다가 문 여는 소리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뜨거운 커피가 간절하다.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긴장이 풀렸는지 잠깐 잠이 들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갑자기 '우당탕!' '꺄아!' 소리에 놀라 눈을 떴는데, 계단 아래로 여자가 굴러 떨어졌다.

여자는 바닥에 엎어져 잠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꿈틀대더니 마치 좀비처럼 천천히 몸을 세우고 있다. 샅샅이 주변을 살피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난 다시 얼음처럼 몸이 굳어버렸고, 이내 날 쳐다보는 그녀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마치 나에게 '봤어? 내가 넘어지는 거 봤냐고'라고 묻고 있었다.


그녀가 민망해할까 봐 모른 척 고개를 숙여 커피를 '호로록' 마셨는데, 슬쩍 그녀를 다시 쳐다보니, 매서운 눈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모른 척해줬는데.'

그리고는 바지를 걷어올려 상처를 확인하는 그녀를 따라, 무릎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하, 아프겠다.'


가서 도와줘야 하나, 보아하니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내가 고민하는 것도 잠시, 그녀가 바지를 내리더니 씩씩하게 일어나 절뚝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강인함에 꽤나 인상이 깊었다.

'재미있는 여자. 궁금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얼마 만에 웃어보는 순간인지......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미러의 각도를 맞추며 거울을 보았는데,


'그럼 시작해볼까? 오늘의 하루를.'


내 차는 그녀와 반대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 들었다.


 다시 볼 거라는 강한 예감.










작년 12월 연말에, 같은 영화일을 하는 친구와 편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네 사람의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 성격은 이렇고,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어떤 트라우마가 갖추어진 그런 캐릭터에 대해 농담처럼 꺼낸 그 대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스토리와 함께 인물을 다듬는 중에 디테일한 부분들이 바뀌었지만, <연애 극장>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절망은 스스로의 강한 의지로 극복할 수 있지만, 시련은  서로 믿음으로 견뎌내는 것.'


'그녀의 덫'은 자아를 찾아가는 이십 대 여자의 늦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투명한 미래와 확신이 없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결국엔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들. 그리고 찾야 하는 의 길.

누군가와 손을 잡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 그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믿음.

 역시 함께 겪어내는 것.


<연애 극장>의 다음 이야기를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때가 되면 조금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묵묵히 갈 수밖에 없는 그 길을 오면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첫 번째 구독자가 되어주신 희*님~ 저에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어요.

그리고, 좋은 말씀 아끼지 않으셨던 고마운 분들.

겠습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됩니다.

두렵지만 새롭게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보내려 합니다.


긴 연휴가 지나고,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 이 것 한 가지만은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와 따뜻함을 놓지 않는 것.>




감사합니다.


장유 ZANGYU 드림. 201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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