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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병자리 Oct 31. 2023

만화를 진심 사랑하는 낀세대  어른들을 위한 아지트

마케터가 바라본 경험공간 이야기 '이태원 그래픽'

만화방 하면 으레 연상되는 기억들이 있다. 오래된 책냄새, 시간당 2천 원, 낡은 소파, 쾨쾨한 담배 냄새 그리고 라면까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만화방은 모든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간이자 편안한 힐링공간이었다.


하지만 웹툰이 종이 만화책을 대신하듯, MZ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개념 만화카페가 이제는 그 자리를 대신하고, 그나마 살아남은 동네 만화방들은 시대적 사명에 따라 하나둘씩 역 근처나 후미진 상가 지하로 밀려나며 홀아비 냄새나는 중장년층들만의 쉼터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만화를 좋아하지만 만화카페에 가기에는 눈치 보이고 그렇다고 낡은 만화방은 선뜻 내키지 않는 이도저도 아닌 이 시대 낀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복합 만화 공간 "그래픽"이 그래서인지 너무 반갑고 고맙다.

(물론 이곳의 주 방문고객은 MZ세대고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용산 경리단 후미진 골목길 끝에 자리한 "그래픽"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드는 생각은 이곳이 만화방이 맞나? 미술관이나 도서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스케일과 세련됨에 주저하게 된다. 일반적인 서점이나 만화방은 최대한 많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출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곳은 적극적인 노출을 지양하고 오히려 숨어있는 보물찾기 하듯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입구인듯 아닌듯 하는 길을 따라 쭈욱 들어가면 아주 작은 '그래픽' 간판 하나만 보고 "여기가 맞나?"하며 한발 한발 발을 뗀다.


그렇게 건물부터 입구까지 보물찾기 하듯 들어가면 4단 케이크를 반 잘라놓은 듯한 건축에서 연상하듯 공간은 층별로 구성된다


미지의 나라로...


만화방이나 서점의 기본규범은 가로형 넓은 공간이다. 층별 공간은 단절과 이동의 불편함 때문에 대개 취하지 않는 형태지만 이곳은 그 규범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서울 한복판 이태원의 부동산가격을 고려하면 당연한 이치지만 층별마다 편안한 의자를 놓고 자투리 공간까지 활용하는 구조적인 배치를 통해 고객들이 가장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입장하는 1층은 잡지, 마블 코믹스,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장르 서적과 18세 이상이라는 경고에서 볼 수 있듯 아주 야한(?) 성인만화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만화방에서 빠질 수 없는 흡연 구역(테라스) 있다.  

조금은 여유롭게 선반을 비워놓았는데 그 점이 더 맘에 든다.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만화들이 주제에 따라 힐링, 성장, 로맨스, 모험, 시대극, 스포츠 등의 장르 서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일반적인 책장을 걷어내고 이동동선에 따라 성인의 어깨 높이에 맞춰 벽에 선반을 만들고 책을 전시하는 섬세한 배려다.

 

만화방을 열기 위해 만화책을 구입하거나 중고를 수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만화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대개의 만화카페가 획일화된 구성으로 일부의 일본코믹스, 인기웹툰 단행본과 자극적인 성인만화만을 전시해 놓는데 비해 이곳의 큐레이션은 상당히 밀도가 높다.


히로카네 켄시의 "데츠카 오사무", 무즈 도시유키의 '닥터 노구찌', 후루야 미노루의 '낮비', 허영만의 초기작품들, 최규석의 "송곳", 윤태호 그리고 마블까지  대중성부터 작품성까지 모두 고려한 일반적인 만화방이나 카페에서 쉽게 찾지 못하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아무리 만화방이 멋지고 편안한 소파가 있더라도 만화방의 본질인 만화 그 자체, 즉 콘텐츠의 중요성은 여기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화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을 고려한 브로드컬리의 "3년 이하 시리즈"


천장라인을 따라 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고 시간대에 따라 다른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하루종일 만화를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이 빛이 저녁이 됐구나?를 넌지시 알려준다. 천장을 따라 가로로 길게 난 슬릿창은 미술관 내부의 전체적인 조명 역할을 한다.


만화책을 몇 권 골라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테이블에 붙어 있는 "주류 주문" QR코드르 통해 주류를 주문할 수 있다는 건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다. 생맥주뿐만 아니라 와인, 위스키 심지어는 하이볼도 가능하다.


"요즘 누가 얼굴 보고 말로 주문하나?
Shy 한 아저씨들 마음을 이렇게 잘 헤아릴 수가"



"만화에 낮술"이라니.. 이런 천상궁합이 또 있을까?


술 외에도 3층에는 음료 라운지가 별도로 세팅되어 있어 원하는 원하는 음료와 커피는 무제한 마실 수 있다. 네스프레소 머신용 캡슐 역시 많은 사람들의 taste를 고려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층마다 다 마신 음료를 수거해 가는 쟁반을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고 빠르게 수거해 가면서 쓰레기통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는 센스 또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No Laptops에서 볼 수 있듯이 온전히 만화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누구의 말처럼 이곳은 참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다. 검색 해보면 "술 마시는 만화방", "만화북까페", "19금 책방", "감성만화방" 등 참 다양한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만큼 다양한 색채가 녹아있는 공간이라는 반증이다.


올해가 가기전에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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