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적인 불빛 너머에서 찾은 사소하고 따뜻한 밤들
나는 네온사인을 좋아한다.
불빛을 좋아한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보면 없던 흥도 생기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 요상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로 모두가 고립되었던 시기, 나의 취향을 잘 아는 한 친구는 우리 집으로 디스코 볼을 선물해 주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화려하게 돌아가는 불빛을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내곤 했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클라키의 라이브 밴드 공연을 즐기거나, 고층 빌딩이 즐비한 CBD 지역을 걷는 것도 좋아하는 일명 시티걸이다. 세련된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내가 이곳의 일원인 것 같은 착각을 주며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네온사인만으로 마음의 허기가 다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한 번 열면 모든 것을 보여주고야 마는 내 성격 때문이었을까. 온실 속 정원처럼 다정한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세상이 늘 따뜻한 햇볕만 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한창 잘못된 인연들에 휘둘려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다. 나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그늘진 날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료조차 "작년엔 정말 어두워 보였는데 요즘은 참 밝아졌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의 그늘이 완전히 숨겨지진 않았나 보다.
그 시기에 내 곁을 지켜준 것은 지금 회사의 동료들이자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한 친구는 자신의 가장 아픈 속내까지 꺼내 보이며 나를 다독였다. 내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친구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어느 주말, 우리는 예쁜 카페에 가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고, 친구 동네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라며 데려간 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밤에는 유명한 카통 락사를 먹기로 했다. 몇 년을 살고서야 처음 먹어본 싱가포르의 대표 음식이었다. 친구는 익숙하게 주문했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포장한 락사를 들고 우리는 이스트 코스트 파크로 향했다. 고요한 밤바다 앞에 앉아 처음 먹어보는 카통 락사의 맛도 강렬했지만, 그보다 오래 남은 것은 같이 바다를 바라보며 나눈 이야기와 그 시간의 온기였다.
회사 친구들과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으로 채워졌다.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고,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교환하며 치즈 플래터를 나눴다. 새해가 밝던 어느 날에는 누군가의 집에 모여 불꽃놀이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지만, 나에게는 특별했던 날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어느 날은 저녁을 먹고 무작정 이스트 코스트 파크에서 자전거를 탔다. 언제 마지막으로 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서툰 솜씨라 꺅꺅 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대로 페달을 계속 밟아! 앞을 봐, 멀리 보고 가! 넘어지지 않아, 괜찮아!” 친구들은 응원을 보냈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웃었다. 친구들은 짜증 한 번 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타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물론 나의 비명을 영상으로 남기는 것도 잊지 않은 채 말이다.
결국 생초보인 나를 기다려주느라 자전거 타기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땀에 흠뻑 젖어 바지가 다 젖은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웃다가, 맥도날드에서 야식을 먹고 귀가하던 그 새벽은 어둡지만 내 기억 속에 가장 빛나는 한순간으로 남아 있다.
높은 빌딩의 인공적인 네온사인만으로는 채울 수 없었던 내 마음의 허기는, 결국 이렇게 사람들과 나누는 사소하고 따뜻한 밤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싱가포르의 밤을 꽤 좋아한다.
다만, 이 밤들이 영원히 같은 온도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아직 장담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