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좋겠다
입추가 지나니 새벽과 저녁의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매미 소리는 작아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커지는 요즘. 유난히 고생스러웠던 근 한 달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평생 살면서 여름을 탄 적이 없었는데 살아간 지도 서른 해가 넘어가니 삶의 궤적도 바뀌어 가는 것일까?
지난한 여름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이사를 온 새 집에서는 여름의 시작과 동시에 벌레라는 신호탄이 터졌다. 다행히 처치가 어려운 커다란 벌레들은 아니었지만, 먼지만큼 작은 벌레들이 나타나는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과 밤마다 온 집안을 걸레질했다. 침대 근처에서 너무 많이 나온 날에는 소파에 쭈그리고 누워서 잤다. 그래도 벌레가 줄어들지 않는 밤에는 눈물이 났다. 기어다니며 걸레질 하느라 무릎은 멍투성이가 되고...
침대 쪽이 마무리되는 것 같자 이번엔 부엌이었다. 부엌에는 쌀도 없는데 쌀벌레들이 잊을만 하면 바닥에 죽어있는 채로 발견이 되고...나는 쓰레기통을 채 채우지도 못한 채 매일 바깥에 내다버리고 닦고 또 닦고를 반복했다.
벌레만이었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겠지. 분명 이사오고 난 후 두세달 간 아무일이 없었던 위, 아랫집이 동시에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기막힌 우연에 경비실에 전화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아서 경비실에 한동안 전화도 못했다. 아랫집은 텔레비전을 너무 크게 틀어놔 점심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할 것 없이 우리집이 무슨 앰프를 켜놓은 것처럼 둥둥 울렸다. 한 번은 직접 찾아갔는데 현관문 바깥까지 영화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직접 읍소도 하고, 경비실에 부탁도 했다. 그리고 한번 들린 그 소리는 가끔씩 들릴 때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던지...
윗 집은 공사를 하나, 싶어서 한 달 넘게 참았는데 정말 말발굽소리랑 똑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서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는 소리.
이쯤 되니 퇴근하고 집에 오는 게 너무 싫었다. 집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테이블도 마련해놓고 책장도 마련해놨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소음이 들리기 전에 씻고 눈 질끈 감고 머리 바로 옆에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들었다.
그 와중에 회사 일은 미친듯이 바빠졌다. 하필 내가 맡은 부서에 큰 일이 터졌고, 후배를 시키기엔 너무 중요하고 선배가 하기엔 너무 사소한 일이라 그 중간인 내 등이 많이 터졌다.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 해서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했다. 출근하기 전 벌레 약을 뿌리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서 걸레질을 하고, 소음을 들으며 저녁을 먹고, 다시 소음이 들리기 전에 빠르게 잠들고.
그 가운데에서도 또 일이 생겼으니, 회사 일과 관련해서 잠깐 일이 생겨서 변호사를 만나러 다녀야 했다. 큰 일은 아니었지만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들에 거의 일주일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스트레스에 뭐라도 제대로 챙겨먹으면 다음 날 너무 심하게 체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거의 내내 누룽지만 끓여먹었다.
스트레스가 찰랑찰랑거리다 못해 숨 쉬는 게 힘들어질 무렵 나는 대상포진 판정을 받았다. 허벅지부터 정강이까지 생긴 흔적을 보며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보통 내 인생 주기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들이 생기면 그 다음 해는 죽을 쓴다. 이른바 '밭을 가는 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지난해 몇 개 좋은 일이 생겨서 올해를 시작하며 나름 각오를 단단히 하긴 했지만, 아무리 '밭 가는 해'라고 해도 너무한 것 아니야?
의사선생님은 대상포진 재발 주기는 10년인데 5년만에 재발했다며 최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대체 이 많은 일들 중 무슨 일부터 말해야 할까? 나는 그냥 최근 이사를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둘러댔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어느 날, 여의도 한복판에서 처방받은 약을 들고 나오면서 왜 그리 우울하던지. 밖은 이렇게 밝고 찬란한데 희한하게 내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기분이랄까? 여튼, 올해 내 여름의 전부는 이랬다.
이런 얘길 주위에 하면 무엇 하나. 다들 대체 (벌레가) 왜 그러냐, 힘내라, 구축 아파트니 니가 참아라, 이런 말들만 한다. 내가 주변에 내 얘기를 자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데 모든 사람들은 다 내 일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 쉬운 말만 내뱉는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겠지?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지. 그냥 나도 입을 다물면 서로 편하니까.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어른이니까, 당연히 혼자 해야 하는 건데. 누가 도와주는 게 이상한 건데. 그걸 아는 데도 걸레질을 할 때마다, 소음 때문에 경비실에 전화할 때마다, 대상포진 약을 바를 때마다, 어슴푸레한 새벽을 헤치고 출근할 때마다 너무 너무 힘들고 서러웠다. 60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가는 2층 버스. 이 시간에 함께 탄 모든 사람들이 나 못지 않게 치열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러웠다. 마스크를 쓴 채로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울 때마다 누가 알아채줬으면, 하고 생각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온다던 엄마가 갑자기 못 온다고 한 말에 그렇게 화가 난 이유가. (갑자기?)
한 달 전부터 온다고 해놓고, 방금 전 전화에서도 온다고 해놓고, 1분만에 다시 전화해서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못 오겠다고 했다. 이해한다. 지금 하루에 2천명씩 나오고, 엄마는 나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이고. 대중교통 타고 먼 길을 오셔야 하고. 오시는 게 지금 방역상황상 옳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안다니까. 그치만 때로는 수십개의 논리적인 이유보다 단 하나의 감성적인 이유가 앞세워질 때가 있는 것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철없는 생각이지만, 나도 진저리날 만큼 극성으로 구는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프다고 하면 두 말하지 않고 달려와주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간섭하고, 잠시도 나를 혼자 두지 않는 그런. 전화 너머로 괜찮다고 말하면 그런 줄 아는 것 말고. 전화기 너머로 내가 전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그런. 알아서 잘 한다고 답하는 나를 전혀 믿지 않는 그런.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결핍을 읽어주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그랬고,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봐도 너무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 나이가 되어서 저런 걸 바라는 사람이 더 이상하지. 근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라고 해서 늘 혼자 꼿꼿하게 잘 서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하물며 몇 백년된 소나무도 고작 갓 태어난 태풍 한 번에 쓰러지는 세상인데.
새삼스럽게 예전에 들었던 사주팔자 해석이 떠올랐다. 서양과 동양의 것들이 어색하게 조합돼 있던 작은 방에서 사주 아저씨는 내 종이에 폐구(閉口)라는 글자를 썼다. 나한테 입이 닫혀 있다면서 '말해봤자 별 소용 없겠지' 싶어서 말을 하지 않는 사주라고 했다. (그래서 공무원을 추천 직업으로 해줌. 입이 무겁다며..) 폐구가 아니라 개구(開口)가 되면 좀 더 나을까? 근데 정말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해결은 결국 내가 하는 건데. 이 의문이 풀리지 않으니 늘 도돌이표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핍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고 여전히 어렵다.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될수록 어려운 것 같다. 아기들은 적어도 결핍에 솔직하고, 마음껏 감정을 쏟아내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붙잡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면서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말을 하기가 싫은 이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싶어 수소문을 해봤더니, 대부분이 글을 쓴다는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이 야심한 시각에 브런치에다 대고 개구(開口)인 척을 해 본다. 마치 여기가 대나무숲이 된 것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