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llflower Aug 14. 2021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애들은 좋겠다




 입추가 지나니 새벽과 저녁의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매미 소리는 작아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커지는 요즘. 유난히 고생스러웠던 근 한 달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평생 살면서 여름을 탄 적이 없었는데 살아간 지도 서른 해가 넘어가니 삶의 궤적도 바뀌어 가는 것일까?


 지난한 여름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이사를 온 새 집에서는 여름의 시작과 동시에 벌레라는 신호탄이 터졌다. 다행히 처치가 어려운 커다란 벌레들은 아니었지만, 먼지만큼 작은 벌레들이 나타나는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과 밤마다 온 집안을 걸레질했다. 침대 근처에서 너무 많이 나온 날에는 소파에 쭈그리고 누워서 잤다. 그래도 벌레가 줄어들지 않는 밤에는 눈물이 났다. 기어다니며 걸레질 하느라 무릎은 멍투성이가 되고...


 침대 쪽이 마무리되는 것 같자 이번엔 부엌이었다. 부엌에는 쌀도 없는데 쌀벌레들이 잊을만 하면 바닥에 죽어있는 채로 발견이 되고...나는 쓰레기통을 채 채우지도 못한 채 매일 바깥에 내다버리고 닦고 또 닦고를 반복했다.


 벌레만이었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겠지. 분명 이사오고 난 후 두세달 간 아무일이 없었던 위, 아랫집이 동시에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기막힌 우연에 경비실에 전화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아서 경비실에 한동안 전화도 못했다. 아랫집은 텔레비전을 너무 크게 틀어놔 점심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할 것 없이 우리집이 무슨 앰프를 켜놓은 것처럼 둥둥 울렸다. 한 번은 직접 찾아갔는데 현관문 바깥까지 영화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직접 읍소도 하고, 경비실에 부탁도 했다. 그리고 한번 들린 그 소리는 가끔씩 들릴 때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던지...


 윗 집은 공사를 하나, 싶어서 한 달 넘게 참았는데 정말 말발굽소리랑 똑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서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는 소리. 


 이쯤 되니 퇴근하고 집에 오는 게 너무 싫었다. 집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테이블도 마련해놓고 책장도 마련해놨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소음이 들리기 전에 씻고 눈 질끈 감고 머리 바로 옆에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들었다.


 그 와중에 회사 일은 미친듯이 바빠졌다. 하필 내가 맡은 부서에 큰 일이 터졌고, 후배를 시키기엔 너무 중요하고 선배가 하기엔 너무 사소한 일이라 그 중간인 내 등이 많이 터졌다.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 해서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했다. 출근하기 전 벌레 약을 뿌리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서 걸레질을 하고, 소음을 들으며 저녁을 먹고, 다시 소음이 들리기 전에 빠르게 잠들고.


 그 가운데에서도 또 일이 생겼으니, 회사 일과 관련해서 잠깐 일이 생겨서 변호사를 만나러 다녀야 했다. 큰 일은 아니었지만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들에 거의 일주일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스트레스에 뭐라도 제대로 챙겨먹으면 다음 날 너무 심하게 체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거의 내내 누룽지만 끓여먹었다.


 스트레스가 찰랑찰랑거리다 못해 숨 쉬는 게 힘들어질 무렵 나는 대상포진 판정을 받았다. 허벅지부터 정강이까지 생긴 흔적을 보며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보통 내 인생 주기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들이 생기면 그 다음 해는 죽을 쓴다. 이른바 '밭을 가는 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지난해 몇 개 좋은 일이 생겨서 올해를 시작하며 나름 각오를 단단히 하긴 했지만, 아무리 '밭 가는 해'라고 해도 너무한 것 아니야?  


 의사선생님은 대상포진 재발 주기는 10년인데 5년만에 재발했다며 최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대체 이 많은 일들 중 무슨 일부터 말해야 할까? 나는 그냥 최근 이사를 해서 그런 것 같다고 둘러댔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어느 날, 여의도 한복판에서 처방받은 약을 들고 나오면서 왜 그리 우울하던지. 밖은 이렇게 밝고 찬란한데 희한하게 내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기분이랄까? 여튼, 올해 내 여름의 전부는 이랬다.



  

 이런 얘길 주위에 하면 무엇 하나. 다들 대체 (벌레가) 왜 그러냐, 힘내라, 구축 아파트니 니가 참아라, 이런 말들만 한다. 내가 주변에 내 얘기를 자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데 모든 사람들은 다 내 일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 쉬운 말만 내뱉는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겠지?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할 필요도 없지. 그냥 나도 입을 다물면 서로 편하니까.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어른이니까, 당연히 혼자 해야 하는 건데. 누가 도와주는 게 이상한 건데. 그걸 아는 데도 걸레질을 할 때마다, 소음 때문에 경비실에 전화할 때마다, 대상포진 약을 바를 때마다, 어슴푸레한 새벽을 헤치고 출근할 때마다 너무 너무 힘들고 서러웠다. 60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가는 2층 버스. 이 시간에 함께 탄 모든 사람들이 나 못지 않게 치열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러웠다. 마스크를 쓴 채로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울 때마다 누가 알아채줬으면, 하고 생각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우리 집에 온다던 엄마가 갑자기 못 온다고 한 말에 그렇게 화가 난 이유가. (갑자기?)


 한 달 전부터 온다고 해놓고, 방금 전 전화에서도 온다고 해놓고, 1분만에 다시 전화해서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못 오겠다고 했다. 이해한다. 지금 하루에 2천명씩 나오고, 엄마는 나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이고. 대중교통 타고 먼 길을 오셔야 하고. 오시는 게 지금 방역상황상 옳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안다니까. 그치만 때로는 수십개의 논리적인 이유보다 단 하나의 감성적인 이유가 앞세워질 때가 있는 것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철없는 생각이지만, 나도 진저리날 만큼 극성으로 구는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프다고 하면 두 말하지 않고 달려와주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간섭하고, 잠시도 나를 혼자 두지 않는 그런. 전화 너머로 괜찮다고 말하면 그런 줄 아는 것 말고. 전화기 너머로 내가 전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그런. 알아서 잘 한다고 답하는 나를 전혀 믿지 않는 그런.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결핍을 읽어주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그랬고,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봐도 너무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 나이가 되어서 저런 걸 바라는 사람이 더 이상하지. 근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라고 해서 늘 혼자 꼿꼿하게 잘 서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하물며 몇 백년된 소나무도 고작 갓 태어난 태풍 한 번에 쓰러지는 세상인데.


 새삼스럽게 예전에 들었던 사주팔자 해석이 떠올랐다. 서양과 동양의 것들이 어색하게 조합돼 있던 작은 방에서 사주 아저씨는 내 종이에 폐구(閉口)라는 글자를 썼다. 나한테 입이 닫혀 있다면서 '말해봤자 별 소용 없겠지' 싶어서 말을 하지 않는 사주라고 했다. (그래서 공무원을 추천 직업으로 해줌. 입이 무겁다며..)  폐구가 아니라 개구(開口)가 되면 좀 더 나을까? 근데 정말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해결은 결국 내가 하는 건데. 이 의문이 풀리지 않으니 늘 도돌이표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핍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고 여전히 어렵다.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될수록 어려운 것 같다. 아기들은 적어도 결핍에 솔직하고, 마음껏 감정을 쏟아내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붙잡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면서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말을 하기가 싫은 이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싶어 수소문을 해봤더니, 대부분이 글을 쓴다는 조언을 받았다. 그래서 이 야심한 시각에 브런치에다 대고 개구(開口)인 척을 해 본다. 마치 여기가 대나무숲이 된 것 마냥.

 


매거진의 이전글 갑분벌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