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가파도
4월이 되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땅을 깨우고, 작고 푸른 것들이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섬 가파도에는
제법 키가 자란 청보리들이 바람결 따라 푸른 물결을 만들며 춤을 추면, '아.. 4월이구나' 합니다.
4월 한 달, 푸른 청보리밭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작은 섬 가파도를 찾습니다.
우리도 제주에 내려온 후로 매년 가파도를 찾고 있습니다.
두 시간 남짓이면 섬 구석구석을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자그마한 섬이지만,
찾을 때마다 새롭게 또다시 좋은 시간들입니다.
이번 봄에도 다시 가파도를 찾았습니다. 작년에는 청보리가 모두 익어버린 5월에 찾아가, 푸릇한 청보리를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웠기에 올해는 조금 서둘렀습니다.
청보리 축제 기간이라 요새 가파도를 찾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조금은 차분하고 느리게, 천천히 섬을 둘러보고 싶어 가파도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배를 탔습니다.
낮에 들어갔다 나오는 배편을 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표를 사야 하지만,
마지막 배를 타고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여유 있게 출발해도 괜찮았습니다.
가파도로 들어가는 커다란 여객선에는 선원을 제외하고 우리 두 사람을 포함해 다섯 사람이었습니다.
꽤 여러 번 배를 타봤지만, 이렇게 한가한 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치, 배를 전세 내고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가파도에 도착하니, 마지막 배를 타고 나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꽤 길게 서있습니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각자의 길로 걸어가니. 곧 조그마한 섬에 우리 두 사람만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가파도 상동 마을 초입에서 아주 자그맣고 사랑스러운 초록지붕의 집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입고 간 초록의 옷과 모자와 색이 같아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가파도 선착장에서 가파도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길을 조금만 따라 걷다 보면 드넓게 펼쳐진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 4월이지만, 청보리가 꽤 많이 익어가고 있네요. :)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처음 가파도를 찾아 청보리밭을 만났을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생전 처음 만나보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지요. 자그마한 섬 전체가 청보리로 온통 뒤덮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만난 가파도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네요.
물론 가파도에도 변화의 바람은 꽤 불어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당장에 선착장에 대합실도 새로 짓고 있고, 여기저기 공사차량도 꽤 보입니다. 새로 지은 신축 건물들도 곳곳에 보이더군요. 시골길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사차량들을 보면 가끔 심장이 쿵쿵 내려앉습니다.
가파도 보리밭은 가파마을 사람들이 생업으로 하는 농사 터입니다. 가파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멋진 사진을 찍는 배경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늘 조심하고, 보리밭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길이 나있지 않은 곳으로 보리밭을 망가뜨리면서 들어가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
가파도 하동 마을 길가에는 작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할망 바당'이라는 주제로 유용예 사진작가가 담은 해녀 할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가파마을의 낮은 집들의 벽에 걸린 사진들이 참 멋있고 아름다웠습니다. 깊은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해녀 할망들의 모습이 어찌나 애달프고 아름답던지요.
가파도는 꽤 많이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청보리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가파도 하동의 한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친절한 사장님 내외가 계시는 깨끗하고 정다운 곳이었어요. 우리가 묵었던 방 창밖으로 자그마한 포구가 보입니다.
4월의 가파도에 가면 꼭 하룻밤을 지내보기를 권합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활기찬 낮의 청보리밭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볕이 좀 더 보드라워지는 시간의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어요.
드넓게 펼쳐진 청보리밭 사이로 아무도 없이 느긋해지는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언젠가 4월의 봄날에 훌쩍 편도로 표를 끊고 들어와 혼자서 며칠이고 이 자그마한 섬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도록 늦잠을 자고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면 민박집을 나서 청보리밭을 거니는 거지요. 그러다 사람 없는 청보리밭 길목에 철퍼덕 앉아 좋아하는 시집을 꺼내 읽고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여행이네요.
제주 모슬포 낮고, 자그마한 옛집.
활엽수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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