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그것들을 지혜롭게 보내줄 수 있을까.
"특별히 목을 사용해야 하는 직업은 아니죠?”
“네?”
“가수나 성악가를 지망하는 건 아니시냐고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회사원이에요.”
의사는 이렇게 확인한 후에 제 증상에 대해 진단을 내렸습니다. 왼쪽 성대가 마비되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받은 수술은 부풀어 오른 심장 대동맥을 잘라내고 그 혈관을 인공혈관으로 치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심장 대동맥을 감싸고 있는 신경이 손상되었대요. 왼쪽 성대를 움직이는 데 관여하는 신경이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결국 양쪽 성대가 잘 작동해서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소리를 내는 것인데, 제 경우에는 왼쪽 성대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서로 맞붙질 못해서 유성음을 내지 못하고 쉰 소리와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물을 마시거나 할 때 사레가 들리는 일도 잦고요.
“방법이 없을까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을 계속했지요. 마비된 왼쪽 성대에 필러 주사를 놓아서 그걸 두툼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른쪽 성대가 거기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00% 예전 소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요, 한 80% 정도는 나니까 일상 생활하시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 거예요. 한번 맞고 다시 맞지 않아도 계속 지내실 수 있는 분이 있고요, 몇 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분도 있어요.”
이런 설명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노래를 못하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물었습니다. 제 꿈 중 하나가 김광석 씨 노래 전곡을 기타 연주와 함께 연습해서 가족과 친한 지인들 앞에서 작은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전문적인 가수는 아니지만 저는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경우도 꽤 많던데, 저는 제 목소리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힘들 것 같았지요. 의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습니다.
“가수 하실 것 아니라면서요? 그럼 노래도 할 수 있다고 봐야죠. 다만 음정을 정확하게 조절하긴 힘들 거예요. 박자도 마찬가지고요.”
다들 그 정도 회복된 목소리로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는데 웬 유난이냐고 힐난하는 듯한 사무적인 설명을 들으며 아득해졌습니다. 물론 대동맥류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으면 저는 언제고 급사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무사히 제때 수술을 받았으니 천만 다행히도 목숨을 건진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그랬으면 그것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잖아요? 상실감이라 해야 하나, 서글픔이라 해야 하나, 그런 것이 훅 밀려왔습니다. 진료실에서 저를 위로하려는 듯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는 아내 앞에서 태연하려 애썼습니다. 근데 속마음은 달랐어요. 마지막으로 매달리듯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6개월이 지나서도 기적적으로 마비가 풀리는 경우는 없나요?”
의사는 있긴 있지만 드물다는 여전히 아주 형식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했습니다. 사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인터넷을 검색해 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수술을 해 준 의사 선생님이 6개월 정도 있으면 목소리가 돌아올 수 있고 안되면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거든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으면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술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막연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못하게 된다니, 목소리가 예전에 비해 80%밖에 안 돌아온다니요. 희망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어떻게든 찾고 싶었습니다.
검색하다가 가수 엄정화 씨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저와 똑같이 왼쪽 성대마비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녀가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설명한 시술 내용과 의사가 제게 설명해 준 시술 내용은 동일했습니다. 엄정화 씨는 8개월을 기다렸지만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시술을 받고 현재는 일상적인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합니다. 연기도 무난히 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노래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들어보니 역시 전성기 때처럼 완벽하게 음을 컨트롤하지는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다행스러운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이었습니다. 그녀처럼 보컬 트레이닝을 전문적으로 받지 못할 것이니 제가 정상에 가깝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지장이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울했습니다. 회사에서나 집에서, 친구를 만날 때에도 밝게 지냈지만 마음 안쪽으로는 우울한 마음이 뭉게 솟아올랐다. 내게 소중한 것을 이렇게 잃게 되는 거구나. 노안이 왔을 때에도 비슷한 우울감이 있었는데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요. 그러자 신경 쓰이는 일들이 툭툭 떠올랐습니다.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어둡게 보이는 것이 신경 쓰였습니다. 연말 휴가 때 진찰을 빨리 진찰을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물이 휘어서 보입니다. 난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병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어요. 가끔 음식을 씹을 때 이가 흔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휴가 때 안과와 함께 치과도 들러 진단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있던 것이 없어지고, 그동안 잘 되던 것이 안되게 되는 일이 한꺼번에 오는 것 같았습니다. 상실감의 폭풍처럼 증폭된 것이지요.
그렇게 축 처져 있을 때 문득 노래 구절 한가락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음악앱으로 가사를 검색했지요. 거친 음색과 맑은 음색, 나이 든 어른과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휘감겨 귀를 울렸습니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잘 가라 나를 지켜주던 것들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
그렇게 믿고 다치더라도
나는 또 누굴 믿게 되겠지
그렇게 아픈 사랑이 끝나도
나는 또 누굴 사랑하겠지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야겠지 무섭고 또 아파도
매일이 이별의 연습이지만
여전히 난 익숙해지지 않아…
- 최백호&정승환, <나를 떠나가는 것들> 중에서
상실은 어느 곳에나, 누구에게나 있는 것임을 문득 깨닫습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지, 이렇게 생각하자 제가 스스로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나 싶기도 했지요. 청력을 잃거나 시력을 빼앗긴 이들에 비할 바 아닌 것인데, 공연히 우울감에 빠졌나…
그러나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바늘에 찔리거나 종이에 베더라도 상처는 모두 나름 아픈 법이지요. 다리나 팔이 마비되는 것이나 성대 한쪽이 마비되는 것이나 신체 일부분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니 그것에 우열이 있을 수 없지 않을까요.
동시에 늘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큰 상실이 언제 어떻게 닥쳐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인생이니까요. 그동안 이미 젊음을 떠나보냈고 순수를 잃었습니다. 삶의 모험을 위한 방황은 스스로 내버렸는지도 모르겠고요. 어느새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젊음, 순수, 열정, 사랑 같은 것이 사그라드는 쪽이 더 큰 상실일 텐데 그런 것들은 떠나보내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부처가 인생을 ‘고해’라 비유해 설파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매일이 이별의 연습인 것도 맞고 여전히 그것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맞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철봉을 많이 한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처럼, 그래서 더 이상 철봉을 쥐고 움직이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것처럼, 무감해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쓸쓸해집니다. 절대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감상에 젖지 않겠다 다짐합니다만, 몸이 조금씩 상하면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지곤 하네요.
해답은 나타나지 않고 삶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 지나가겠거니, 그러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겠거니 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허적허적, 허위허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