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길의 침묵

김명인, 침묵

by 김조안

긴 골목길이 어스름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녁을 지켜본다

그 착란 속으로 오랫동안 배를 저어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강물은

금세 흐름을 바꾸어 스스로의 길을 지우고

어느덧 나는 내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다

그러고 보니, 낮에는 언덕 위 아카시아숲을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어둠 속이지만

아직도 나무가 제 우듬지를 세우려고 애쓰는지

침묵의 시간을 거스르는

이 물음이 지금의 풍경 안에서 생겨나듯

상상도 창 하나의 배경으로 떠오르는 것

창의 부분 속으로 한 사람이

어둡게 걸어왔다가 풍경 밖으로 사라지고

한동안 그쪽으로는

아무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 침묵은 필경 그런 것이다

나는 창 하나의 넓이만큼만 저 캄캄함을 본다

그 속에서도 바람은

안에서 불고 밖에서도 분다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길은 이미 지워졌지만

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229 길의 침묵


창밖의 풍경만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행복과 절망, 고통과 번뇌, 불안과 해소를 오가는 복잡한 심정을 그 누가 모두 이해할까. 평온 뒤의 그늘. 웃음 뒤의 그림자. 그것을 이해하는 지난한 과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나. 그러나 제 안에서 들끊는 길의 침묵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침묵을 온전히 듣는 건 어떤 심정일까. 그 침묵은 길들일 수 있는 걸까. 알 길이 없다. 시는 이렇게 도통 알 길이 없고, 내 삶도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들끊는 길의 침묵이란 단어가 괜히 계속 눈에 밟힌다. 내 안의 소용돌이 같은 침묵을 잘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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