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들은 말로 며칠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분명 그만의 방식으로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려 꺼낸 얘기일 거다. 이해해 보려 애썼지만 마음 어딘가에 작은 가시가 박힌 듯 불편했다.
나는 상대의 불편한 말을 듣고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밥 먹었니? 같은 평범한 말을 들은 것처럼 그냥 넘기고 싶었다. 나는 늘 그랬다. 내 불편한 감정을 잘 말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내가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어도 내가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건 견딜 수가 없어서. 늘 생각하지만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뒷감당을 먼저 생각하느라 건네지 못하는 말이, 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 불편한 마음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상대가 밉고 결국 내가 미워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 그림책을 좋아하는 분이 있다. 그분은 도서관이 어지러울 때 우렁각시처럼 나타나 책을 정리하고, 좋은 그림책을 찾아 도서관을 탐험하기도 한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요정처럼 그림책 한 권을 건넸다. 조원희 작가의 《미움》.
미움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신경 쓰여도 만지지 마. 그래야 낫는다."
정말 그랬다. 다른 일에 집중하며 가만히 기다렸고, 어느새 아무 미움도 생각나지 않았다. 도서관 요정님의 처방전이 아주 잘 맞았나 보다.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싫은 사람도, 답이 없는 고민도 자꾸 떠올리며 괴로워하지 말고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멀리 보내버리기로 했다. 안녕. 나의 미움. 가을처럼 나도 다 비워버려야겠다. 안녕. 나의 가을. 다가올 계절에 미움을 만난다면, 그땐 자꾸 만지지 말아야지. 떠올리지 말아야지. 그럼 덧나지도 않겠지. 겨울은 미움 대신 반가움만 만나지길. 오늘, 바람에 눈이 날렸다. 반가워. 나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