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베르사유, 참으로 보기 힘들구먼!
파리에서 2일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베르사유 궁전을 가기로 한 날이다.
대학교 때 배낭여행을 왔을 때도, 남편이랑 여행을 왔을 때도, 출장으로 파리를 왔을 때도,
베르사유는 멀다는 이유로 매번 제외됐었다.
이번엔 도착, 출발을 포함하여 5일을 머무르는 격이니 베르사유를 1번 목적지로 넣었다.
오늘의 아침은 영국에서 조금 아껴두었던 한식.
햇반과 깻잎김치다. 엄마의 표정이 유럽에서 온 중 제일 밝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가족 카톡방에 보냈더니, 엄마의 아들 (= 남동생)이 비웃는다.
어제저녁을 그렇게 망치고 먹는 한식이니 엄마에겐 깻잎김치 하나로도 기쁠 법하다.
그렇게 든든한 아침을 먹고, 베르사유로 출발했다.
밥을 먹으며 City mapper를 검색해 보니, 약 1시간이 걸리고, 6호선, C라인으로 갈아타고 가란다.
베르사유는 조금만 늦으면 줄이 엄청 길다는 얘기를 들어 최대한 빨리 가보자며 8시 조금 넘어 숙소에서 나왔다.
6호선을 타기 위해 Kleber역까지 좀 걸었고, Bir-hakeim에서 Cline으로 갈아탔다.
약 30분 간격으로 열차가 출발하는데 플랫폼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딱 봐도 다 베르사유 가는 사람들. '저들을 쫓아가면 되겠군'
놀이공원에 있을 법한, 베르사유 궁전 내부 디자인으로 꾸민, 촌스러운 2층 열차를 탔다.
(너무 후져서 사진도 없다.)
사람들이 엄청 올라탄다. 그 와중에 잽싸게 2층으로 가서 앉았다.
한참, 베르사유를 향해 달리는데 엄마 왈, "어머! 2층 지하철도 있다 얘~"
(응...;;;?????!!!)"엄마, 우리가 그 2층에 타고 있어.."
"어머! 하하하하"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며 드디어 도착.
영국과는 달리 화창한 날씨가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쪽으로 내려가니,
베르사유로 향하는 도로가 단정하게 뻗어있었다.
저 길을 따라가니 어마 무시한 게 넓은 입구에 사람들의 줄이 그득하다.
그 줄은 꺾이고 꺾여서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
9시 입장이라고 들었는데, 9시가 이미 넘은 시간인데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겨우 줄의 끝을 찾았을 무렵, 맑고 푸르던 날씨는 오간데 없이 영국에서 맞던 칼바람이 분다.
다행히 솜 잠바를 입고 갔긴 했지만, 얼굴은 시렸다. 주변에 가려줄게 없는 넓은 공터여서 더더욱 추웠던 듯.
얌시럽께 끼어드는 새치기 족 방어하랴... 입장을 기다리랴.... 한 시간은 족히 서있으니 다리도 아파왔다.
지쳐갈 무렵, 사람들이 입장을 하기 시작한다. 약 10시쯤 됐을까? 조금씩 조금씩 줄이 줄어들더니 우리 차례도 왔고 10시 반 정도 돼서 우리도 입장했다.
입장을 하고도 꽤나 넓은 공터를 지나 티켓을 사러 가야 한다.
중세의 도로처럼, 네모 네모난 돌들이 퐁퐁 박힌 바닥이라 그런지 약간 굽이 있는 슈퍼스타를 신은 발이 아프다.
매표소의 줄도 한참 길다.
어느 블로그에서 안쪽에 들어가면 티켓 판매기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이나 들어갔더니, 역시나 사람들 없는 횡한 판매기가 있다. 잽싸게 영어로 바꾸어 티켓을 2개를 재빠르게 겟!
내가 그곳 직원이라면, 안쪽에 티켓 자판기가 있다고 말해줄 텐데, 말해주는 이 한 명 없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당시 한창 노동자 데모 시즌이었고, 그날도 다소 늦게 오픈한 이유가 데모가 이유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였다면 공공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데모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고 느꼈다. 직원이 티켓 자판기를 안 알려준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아무튼 매표를 했지만, 입장도 한~참을 걸려서 들어간다.
보안 검사도 하고, 오디오 가이드도 한국어가 지원된다고 하여 하나씩 Get!
이제 드디어 구경!!
바깥에서 덜덜 떨다 오니, 몸이 나른 나른 노곤 노곤한 것 같지만 힘을 내 본다.
정말 태양왕 루이 14세의 힘과 권력이 느껴지는, 그 간 어느 궁전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화려함이 있는 공간이었다. 엄마는 힘든 와중에도 하나하나 다 담고 싶으셨는지 오디오 가이드를 열심히 들으셨다.
(나는 중간중간 험블 해 보이는 방은 그냥 안 듣고도 지나가고 싶은데 엄마가 다 들으셨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그 웅대함과 아름다움에 다른 나라 궁전 정원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데,
3월 중순의 초겨울 날씨에 꽃도 단 한 개도 피어있지 않았을뿐더러, 너무 추워서 나가기도 싫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원은 멀리서 지켜만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한참 그 넓은 궁전을 구경하다 보니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고,
어디서 먹어야 할지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지하철 역 앞에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맥도널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맛이 참 일관적이다.
C라인을 타고 가다 보면, 노트르담 성당도 금세 갈 수 있었다.
City Mapper의 도움으로, 느긋하게 노트르담 성당으로 간다.
다행스럽게도 햇살은 밝고 하늘은 푸르다. 좀 더 따뜻한 계절에 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후회는 계속 든다. 지금도..
대학교 시절 서양미술사 수업을 듣다가 drop out 한 적이 있다. (시험 암기가 두려워서..)
그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노트르담 성당의 장미의 창.
그 아름다움과 섬세함은 정말 볼 때마다 놀랍고, 그것만 기억나서 그런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천주교 신자인 나를 쿡쿡 찔러, 엄마가 자꾸 초를 봉헌하라고 한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방문한 성당과 봉헌한 초만으로도 여행 중 미사 불참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베르사유에서 시달리다 보니, 기운이 빠진다.
어느 덫 늦은 오후, 차 한잔 하자며 근처 노천카페에서 숨을 고른다.
그렇게 숨을 고른 모녀는, 몽쥬 약국을 가보겠다며 나섰다.
걸을 수도 있는 거리로 나왔지만, 이 지역은 당최 잘 모를뿐더러 다리 힘도 없었다.
역시나 City mapper의 도움으로 버스를 잡아타고 몇 정거장 가니 바로 몽쥬 약국이 있는 동네이다.
몽쥬 역 주변이 모두 향수, 화장품 파는 사거리.
들어가니 한국어가 가득하다. 얼마 만에 느끼는 한국어의 왁자지껄 함이냐..!
Tworld에서 받은 할인권, 그리고 면세 등등의 혜택에 기대어 이것저것 샀다.
엄마 영양크림, 시어머니 영양크림, 올케 줄 피지오겔, 르네휘테르 샴푸, 피지오겔, 꼬딸리 스킨, 지인 선물용 립&핸드크림 세트...
정말 자중해서 산다고 샀는데...(금액은 별로 하진 않았지만..) 한 짐이다.
아... 난 아직 한약이 많이 남았는데 ㅠ-ㅠ
아비뇽 기차 타는 게 정말, 걱정이 되면서도 지금 아니면 언제 사냐는 마음으로 카드를 긁는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끝이 났다. 이른 아침부터 역시나 강행군..(내 여행 스케줄이 잘못된 걸까?)
잠시 숙소에서 쉬며 저녁 먹을 곳을 고른다.
엄마는 가격대도 비싼데, 맛도 없는 곳이라며 프랑스 음식 별로라고 난리다.
나 때문에 햇반과 컵라면을 덜 들고 왔다고 난리시다. 에어비앤비에 컵라면 끓여먹기도 좋은데,
왜 빼놓고 오랬냐며...;;;;
어떻게든 국물이 있는 요리를 대접해야 욕을 덜 먹을 것 같다.
문득 전날 퍼블리시스 스토어 근처에서 물을 사면서 대충 본, 한글 간판이 생각났다.
정체를 도저히 몰라, 네이버에 또 "개선문 근처 한국식당"이라고 검색을 해보았더니
역시나.. 뭐가 없다. 일단 가보자며 엄마를 채근해 나갔다.
가보니 식당 같으면서도 클럽 같기도 하고 bar같기도 하고...
그런데 다행히 레스토랑이다. 검색해 보니 유명 디자이너가 아시안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아시안 퓨전 바 겸 레스토랑이란다. 자세히 보니 곳곳에 쓰여 있는 한글도 당최 의미 따위가 맞지를 않는다.
예약했냐고 묻길래, 안 했다고 식사하고 싶다고 하니,
표정이 '무슨 예약도 안 하고 오니'이런 표정. 테라스에 구석진 곳 밖에 자리가 없다고 해서 괜찮다고 하고 앉았다. (일단 배가 고프니까!! ) 그런데 꽤나 어두웠고,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에 옆에 자리가 났다.
서빙하는 사람에게 '자리 저기로 옮겨도 되니'라고 물으니 매니저에게 물어봐야 한단다.
잠시 뒤, 옮겨준다고 해서 옮겼는데 매니저가 온다. 그러더니 '원래는 안되는데 바꿔준 거다. 너 괜찮다고 했으면서 왜 바꿔달라고 했니'라고 하는 거다. 어이가 없어서. 그럼 안된다고 하던가.
서비스 따위가 개차반이라서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주문도 했기 때문에 그냥 먹고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롤 2개, 미소시루, Mrs Hong이라는 목테일이라는 것을 시켰다.
미소시루는 전문성을 요하지 않으므로 그냥 미소시루 맛, 롤은 편의점 롤 같은 맛이었다. 그냥 '재료 맛에 먹는다.'하고 먹을 정도. 목테일은 내가 cucumber mocktail을 고를 때부터 미친 짓이었다. 너무 오이맛이었다.
이렇게 먹고 44유로 나왔다.
곳곳에 쓰여있는 한글이 반가워 들어갔지만, 서비스에 실망했고, 특별하지 않은 맛에 더더욱 마이너스.
그렇지만 유니크한 분위기, 그리고 파리 핫플레이스를 가고 싶다면 한 번쯤 칵테일 마시러 가볼만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서비스는 정말 재수 없음.
이렇게 저녁을, 어쨌든 한식 비슷한 걸 먹은 우리는 내일 또 이른 기상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