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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Aug 09. 2021

잃어버린 몸을 찾아서

2020도쿄올림픽이 내게 알려준 것

티비에서 운동하는 개그우먼 김민경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 부럽다.

옆에서 그걸 듣던 연인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저 몸이 부럽다고?

-응. 부러운데.



그 짧은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여성에게 허락된 몸은,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몸은, 쇼윈도에 박제된 마네킹처럼 아무런 의지없이, 생명력없이, 감정없이 전시되어야 하는 몸이라는 것을.



여성의 몸처럼 수많은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는 조형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인류의 생존번식을 위한 철저한 도구로써, 늘 유려한 곡선과 풍만함이 전시되어야 하고, 그러나 그 아름다운 몸으로 자유롭게 섹스하거나 싸우거나 나대서는 안되고, 잘 먹어야 하지만 뚱뚱하면 안된다. (하나만 해라 하나만. 새끼들아) 인간의 몸은 박제된 조형이 아닌 자연스레 변하고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여성이 되어야 하는 몸은 늘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대상화되며 억압되어 온 것이다.



​존재를 지배하려면 먼저 몸을 지배해야 한다. 많은 경우 정신을 지배하면 행동을 억압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인간은 놀랍도록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고하는 존재이고, 신체의 감각이나 생활 방식이 그대로 인식의 전반을 구성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낙태 합법화 금지부터 시작해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게 '이기적'이라는 사회의 낙인을 찍는 한편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각선미를 끊임없이 찬양하며 대상화하고, 그런 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성형과 다이어트를 여성에게 팔아먹는 지금의 사회는 여성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 사유(혹은 소유)하고 있는가.



​여성들이 힘을 가져야한다는 말은 권력으로 해석되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물리적인 힘을 뜻하기도 한다. 여성이 권력을 가지려면 스스로 몸의 컨디션을 조율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한다.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동안 우리가 끊임없이 강요받았던 '아름다운 몸'으로는, 마르고 근육없고 매가리없는 신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몸은 보기 좋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증명을 이번 올림픽에서 나는 수없이 보았다. 다양한 몸과 연령대의 여성들이 경기장 한가운데서 소리를 지르고 땀을 흘리고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몸의 생명력을. 지금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보내는 여성들의 뜨거운 응원은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랜시간 전시의 대상이던 몸이 완전히 기능으로 전환되는 생경하고 짜릿한 경험. 투지와 열정으로 소중한 경험을 선물한 대한민국 여성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우리에게 허락된 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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