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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Aug 25. 2021

삶은 선물일까

영화 소울의 마지막 대사처럼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들떠있다고 느껴지면, 늘 기분을 다운시켰다. 너무 들떠있지 말자. 곧 가라앉을테니까. 어떤 일을 하든 늘 최악을 상상하고, 그렇게 한발자국 앞서서 모든 기분을 잡쳐야만, 인생이 쓰디쓴 진물같아도, 그것을 불평없이 삼킬 수 있을테니까. 인생은 원래 고통이니까. 이게 내 삶의 기본값이야. 들뜨지말자. 섣불리 행복하다고 믿지말자. 좋은 순간이 와도 곧 사라질 것을 미리 생각해놓자. 아무것도, 아무말도 기대하지 말자.

그렇게 나는 행복의 절대값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좋았다. 아주 조그만 기쁜 일이 있어도 나는 수만배는 더 기뻐했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아주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늘 의심했던 것은 찰나의 행복이 삶 전체를 뒤흔들지 않길 바랐다. 행복에 익숙해지면 안된다고 늘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삶은 단 한순간에도 뒤바뀔 수 있는 얼굴이었고, 이곳에서 한발짝만 내딛어도 너무 쉽게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탓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뺨을 얻어맞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늘 울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삶은 선물일까. 만일 삶이 선물이라면, 그것은 시한폭탄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떠넘기는 선물일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만 무사히 넘어가면 괜찮은 게임. 이번 판은 살아남았지만 다음 판에도 무사할거라 장담할 수 없는 게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을 예고없이 떠안고 자폭해야하는 게임. 늘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지금,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서른하고도 숱한 해를 지나고 이제 마흔에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늘 나의 오늘뿐이다. 오늘, 나의 오늘은 어땠지. 오전에는 정신없이 일을 했고, 짜증이 났고, 조급했고, 화가 났고, 계획했던 일을 모두 처리해서 아주 잠깐 홀가분했다. 해야할 일이 남았지만, 일요일에 출근하기로 마음먹고 세시에 퇴근했다. 퇴근하고 사고 싶었던 것을 샀고,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와 와인을 샀고, 그리고 소울을 봤다.

​이 영화의 찌릿한 삶의 예찬에 동의하기도, 동의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 내 인생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영원히 못 이룰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성취하지 못하는 지금의 삶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지는 않을 것이다. 성취를 이룬 다음에도 이 지겹고도 무거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어쩌면 성취한다는 것은 여행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아올 수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 성취하지 않는 삶의 일상을 견뎌내는 법을 나는 배우고 있다. 아마도 이 배움은 끝이 없을 것이다.

나쁜 삶, 좋은 삶, 그런것은 없다. 나쁜 순간, 좋은 순간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게 지금 여기의 삶이니까. 조금 행복하다고 미리 울 준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다고 뺨을 맞는 게 익숙해지거나 덜 아프지가 않더라고. 그저 행복하고 불행하고 다시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삶을 받아들이려 한다. 딱 그만큼만 행복으로 행복해하고 불행으로 불행해하길. 나는 여전히 이 삶을 잘 모르겠고, 이것이 진짜 삶이 맞는가 싶고,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겠지. 카프카가 말했던 것처럼 이 삶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태어남에 대한 망설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열심히 사는 것뿐일테니까.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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