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반대한다
꼭 모든 일이 전화위복이어야 할까
나는 가끔 언니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이야기한다. 이 정도면 우리 자수성가한 거 아니야? 대단한 기업가나 유명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유년 시절 우리를 상처 입혔던 시간들을 상기시키면, 그래도 이정도 사람 구실을 하고 사는 게 정말 대단한 거라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의 과거를 상상하지 못한다. 가끔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과거는 없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몰랐다.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 이르러서는 나름의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 때부터 고통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믿었다. 그렇게라도 해석해야, 그 시간들을 더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동시에 그런 모습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했어야 됐나.
나는 이제 사실, 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느냐는 영원히 알 수 없고, 사실은 이유도 없다. 일은 일어날 뿐이고 우리는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사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 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 모두가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고된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고, 해석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은 그 자체로 공포가 되니까.
수전 손택은 일찍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예술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서 경험해야 한다”라고 했다. 나도 삶을 그저 삶 자체로 경험하려 한다.어떤 의도가 있어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 그저 일어난 사건과 견뎌내야 하는 내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결국에는 좋은 일이었어. 불행이 지나간 후 나는 이 말을 자주 되뇌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미 지나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