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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Jul 14. 2019

시대가 선택하고 시대에 외면받은 위대한 예술가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

외롭고 고독했던 수험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오페라였다. 때는 2006년, 엄마가 어느날 사다 준 <불멸의 오페라>라는 책을 통해 평생의 취미가 될 '오페라'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다. 왜 오페라 하면 TV에서 연예인들이 이상한 가발이랑 과장된 드레스같은걸 입고 나와 우스꽝스럽게 오버를 떨며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만 떠올렸는데, 세상에 이런 재미있는 장르였다니! 학교 다녀와서 그 두꺼운 책을 뒤져보며 오페라의 스토리와 캐릭터들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밤 시간에 컴퓨터를 켜 유튜브를 통해 각종 아리아를 하나둘씩 섭렵해 나갔다.

오페라계에 취미를 들이게 되면 당연히 마리아 칼라스를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또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였는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놀라움 뿐이었다. 지겹고, 구식이고, 시대에 뒤쳐진 장르로 치부되었던 오페라가 그의 연기와 눈빛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생명력이 가해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진 벨 칸토 시대의 작품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정결한 여신을 섬기는 사제인 '노르마'는 굉장히 도전적인 음들을 많이 구사하는데 노르마로서의 칼라스는 정말이지 격동적인 면모를 보인다.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였던 그의 일대기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토록 빛나는 커리어를 쌓고도 결국 사랑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삶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오페라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위대한 예술가에게, 언론과 여론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환대와 찬사를 받고도 작은 실수 하나로도 하룻밤만에 냉혹하게 돌아서는 여론, 그야말로 스토킹에 가까운 '황색신문'들의 집요한 취재까지.

당시에는 언론의식같은 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대중의 비판의식도 성숙하지 못했다. 외모와 사생활 등 온갖 가십으로 이 위대한 예술가를 가볍게 소비해버렸던 칼라스 동시대 사람들에게 원망같은 것도 느꼈다. 물론 지금이라고 이런 부분에서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호랑이같은 불같은 성격에,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예술가로 묘사한 것도 사실을 알고 보면, 예술에서의 '완벽'을 추구했던 그녀의 성정에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이른바 '인성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나는 최고가 아니면 선보이지 않는다"고 당당히 외쳤던 위대한 예술가에게, 당시 극장과 대중 그리고 여론은 그의 모든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와 환경을 마련해 주었는가?

유튜브에는 흑백 영상으로 올라와있는데 컬러처리를 했다고 한다. 무대에서 호소력과 집중력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걸 라이브로 보면 대체 얼마만큼의 감동이 밀려올지.

어떤 역을 연기하든 칼라스는 자기 자신을 그 캐릭터와 작품에 그대로 담았고, 또한 캐릭터의 모습을 자기 옷처럼 입었던 완벽한 일체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랬기에 오페라 주인공들의 불행한 운명이 칼라스 본인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그랬기에 성악가 그 이상으로서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무대에 섰을 때 그야말로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온 영혼을 불살라 노래하고 연기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걸출한 예술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일상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들도 엿볼 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 한때 가까운 사이로 지냈던 오나시스의 개인 섬이었던 스코르피오 섬에서의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모습, 파리의 아파트 등 편안한 공간에서 강아지를 돌보거나, 피아노 연주를 하거나, 요리를 하지 않아도 레시피를 모으는 독특한 취미를 가졌다거나, 그런 모습들까지도 말이다.

그래요 선생님...이름은 어렵던데 그 섬 경치는 좋더라고요...잠깐이라도 행복하셨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너무나 위대한 존재였기에 때이른 은퇴와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53세라면 충분히 성악가로서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냈다는 상처로 수년간을 은둔하며 불행히 살다가 불행히 떠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에게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고 절박했던 가치였나보다, 하고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가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나시스에게 쏟았던 사랑을 본인에게 쏟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것을 더욱 지키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하지 않았다면, 사후의 명성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많은 노래들을 좋아하고 즐겨 듣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토스카의 Vissi d'arte(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라는 아리아다. 이 작품의 주인공 토스카는 아마 칼라스 그 자체로 느껴진다. 워낙에 표현럭과 작품 해석력, 캐릭터 해석력이 뛰어났기에 모든 작품이 그랬겠지만, 토스카는 정말이지 칼라스 본인의 모습이 가장 많이 묻어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쩐지 이 노래의 가사 또한 칼라스 본인의 상황과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지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을까요? 성모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보석같은 음악들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길이 남을 것이다. 그가 남긴 노래를 들으며 울고 웃고 위로받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존경심, 그리고 개인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같은 것도 동시에 느껴진다. 무대에서의 모습만큼이나 인간적으로서 '마리아'의 모습까지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칼라스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영화관 사운드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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