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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Sep 22. 2019

새롭게 태어나는 이 시대의 '열일곱 세실'

<슬픔이여 안녕> 신간 번역본에 붙여 -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 번역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건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여러모로 유익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개인적으로 무척 소중하고 의미있는 책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도 내 방 책장에 꽂혀있으며 종종 읽어보곤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이른바 방탕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사생활이다. 스피드광, 유흥업소 출입, 음주, 흡연, 도박, 모르핀 중독 등 금기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외치던 여성 문인. 당연히 세간의 관심을 받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무려 열여덟의 나이에 만들어 낸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이다. 이 책으로 그는 프랑스 그리고 세계 문예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포화를 쏘아올렸다. 불꽃같은 강렬한 자극제를 끊임없이 찾으며 살아갈 본인의 인생을 예견하듯 말이다.


역설적으로 사강의 뛰어난 문장력과 표현력은 당시 청소년을 억누르던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기반으로 한 냉혹한 교육의 덕택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데는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이 반드시 수반되게 마련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경도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훈련받았을 때 어떠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놀라운 반증이기도 하다. 다만 본인에게는 무척이나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니,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미래 사회에는 이런 혹독한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동 및 청소년들이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럼 대체 무슨 내용인가?싶어 번역된 책을 찾아보았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열일곱 세실이 가진 어마어마한 에너지, 욕망과 대담한 행동....스토리는 비할 데 없이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범죄영화처럼 느껴졌지만, 어쩐지 번역 문체가 예스럽달까. '중년 남성'스러운 번역체에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특정 출판사 및 번역가 분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님. 독자 개인으로서의 느낌일 뿐, 특정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자료를 찾아보았으나 번역가 분의 성별과 연령을 알 수 없어서 뭐라 말을 더 얹기도 애매함) 어쨌든 분명한 건, 20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번역으로 금번에 출간된 <슬픔이여 안녕>은 그런 탓에 더욱 반가웠보자마자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갈증을 느껴왔고 갈망해 왔던 '새로 태어난' 세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새로운 번역본을 통해 도저히 종잡을 수 없으며, 꿈틀거리는 욕망과 속박당하기를 거부하는 대담함과 자유분방함,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죄책감이나 거침이 없는 소녀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 했다.


세실은 1900년대의 초중반의 열일곱이었겠지만, 1900년대 말, 2000년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소설에서 일부 서술을 제외하고는 별장이나 바닷가 등의 배경에서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역사적 배경같은 것이 희미한 덕에, 특정 시대로 구체화되기보다 어쩐지 지구상 어디선가 지금도 일어날 법한 일처럼 느껴진다.


오페라 무대에서도 종종 이러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곤 한다. 오페라 작품 또한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서도, 연출과 연기를 통해 고대를 현로, 1800년을 1900년으로, 혹은 그 반대로도. 무대와 연출 그리고 연기와 가수들의 의상까지 대본에 특정된 사항들을 탈피하여 새롭게 재구성되기도 한다. 정전만을 강조하며 새로운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해석과 번역만이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과 기본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해석들이 필요하고, 그건 오페라든 소설이든 종류를 막론하고 예술분야에는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해석들이 앞으로도 더욱 활발히 진행되길 바란다.


시대는 바뀌어가고, 말과 글도 바뀌어간다. 백석의 소설 번역(놀랍게도 백석의 '고요한 돈' 그리고 '테스' 번역본이 아직도 시중에 있다. 전혜린의 '생의 한가운데' 번역도 여전히 유효하고)처럼 전설로 남아 고전이 되어버린 번역도 있겠지만, 새 시대에 새롭게 읽혀야 할 번역작업도 계속 이어져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로서 시대에 발맞춘, 끊임없이 새로운 번역 작업을 기다릴 것이다.


특히 금번 <슬픔이여 안녕> 번역처럼, 더 많은 여성 문인들의 글이 여성 번역가들의 눈과 손을 통해 재창조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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