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의 소재들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소재는 바로 '바다'이다.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해있는데다 강대국들의 등쌀에 휘말려 지중해로 나아갈 수 없었던 포르투갈 왕국. 그들은 '검은 바다'로 불리우는 대서양으로 나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럽세계에서 최초로 대항해 시대를 열어젖힌 나라가 되었다. 뒤이어 항해시대로 뛰어든 왕국들에 밀려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그럼에도 최근까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
리스본의 타구스 강 하구의 너비가 가장 좁은 곳이 자그마치 한강의 두배라고 한다. 한강 너비가 1.4km 가량이니까 근 3km는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타구스 강 하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 곳을 바다로 착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보면 정말 착각할 만하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 하구를 통해 수많은 범선들이 드나들었다. 이 중엔 돌아오지 못하는 배도 있었고, 많은 수확물을 가지고 온 배들도 있었다. 항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환희와 눈물이 오갔을 것이다. <겨울왕국>에서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아렌델의 풍경을 보며, 드넓은 바다로 나아간 포르투갈의 역사를 떠올렸다.
가장 오랫동안 만물의 근원으로 여겨진 네가지 자연의 요소들.
신트라 헤갈레이라 정원에는 곳곳에 숨겨진 비밀의 공간들이 있다. 이 정원의 주인장이 자신의 취향과 신념을 반영하여 만들어놓은 숨겨진 스팟들이다. 이 주인장은 공공연히 프리메이슨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집단은 기독교의 구원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구원을 기원하며 이 네가지 원소를 바닥에 새긴 제단을 만들었다. 계단을 타고 낮시간에도 카메라 후레쉬를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워진다.
카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인 포르투갈에서도 이러한 신앙을 갖고 종교의식을 행해온 사람들이 있다니...약간은 오싹하기도 소름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의 종교시설하면 으레 성당을 떠올리게 되는 흔한 공식으로부터 벗어난 참신한 변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예로부터 이 네가지 물질을 만물의 근원으로 꼽았고,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있는 자원들이다. 이 자원들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조차 불가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중요시 여겨왔기에 수많은 곳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혔던 것은 아닐까.
리스본에서 차로 한시간 반 가량, 이 자그마한 소도시가 리스본 근교 투어의 필수코스로 꼽힌다. 도보로 20분이면 전부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마을.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런 풍경에 절로 눈길이 간다.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은 아주 먼 옛날 여왕이 다스리던 자치구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왕이 왕비가 될 사랑하는 여인에게 '갖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금은보화나 장신구가 아닌, 바로 이 마을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듣고 '진짜로 마을을 줄 정도로 왕이 여인을 사랑했으면, 나같으면 나라를 달라고 했을 거 같다...'는 무엄한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말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산 중턱으로 보이는 아름답고 자그마한 마을, 마치 아렌델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 같았다. 11월엔 리스본과 포르투에도 크리스마스 장식만 달아놓고 점등은 안되어 있었는데, 유일하게 오비두스에서 화려한 불빛들을 볼 수 있었다.
-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
- 재앙의 상황, 가장 약한 자들에겐 끊임없는 지옥도
식민지배, 약탈, 노예 중계로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던 포르투갈 기득권들에 대한 경고였을까. 번성한 부를 누리던 리스본에 엄청난 재앙이 닥쳐온다. 가톨릭 축일을 기념하여 리스본 시내의 모든 성당에서 촛불을 환하게 피우던 날, 강도 8의 지진으로 건축물의 75% 이상이 무너져 내리고 도시는 불바다가 된다.
화재를 피해 바닷가로 몰려든 리스본 시민들에게 더욱 가혹한 운명이 닥쳐오는데, 바다 아래에서도 지진이 일어나 쓰나미가 밀려온다. 리스본은 이 재앙으로 대항해시대의 기록과 유산을 대부분 잃고, 인구와 경제가 반토막이 나 그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서민층이 모여 살던 알파마 지구, 그 중에서도 빈민촌과 성매매 집결지가 있던 곳의 피해가 가장 적었다고 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재앙에 대해 어쩌면 포르투갈 지배층의 오만과 어리석음, 죄악들을 경고하고자 함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묻곤 한다.
겨울왕국에서도 불과 물과 땅이 사라진 재앙을 겪은 아렌델 왕국의 백성들을 보며, 그들 또한 추위와 어둠 속에서 왕의 귀환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측은하게 느껴졌다. 만약 엘사와 안나가 모험 중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거나 서로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단 한번의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아렌델이 무사할 수 있을까? 역시 지도자의 어깨는 천하만큼 무거운 법이다.
ps.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재앙을 당한 리스본에서는 살인과 강간, 강도, 방화, 절도 등 사건과 범죄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약자들은 재앙에서 어찌저찌 살아남았어도 그들에겐 다시 지옥도가 펼쳐졌다. 재앙의 상황에서 결국 가장 고통받는 존재는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 혼란의 도가니를 수습한 것은 왕이 아니라 재상이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무능한 왕에게, 재상 폼발은 "산 사람은 먹이고, 죽은 사람은 묻어야 합니다"라는 심플한 명답을 남겼다. 그는 혼란을 수습하고 20여년에 걸쳐 리스본을 재건한 존경받는 위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포르투갈인들에게 있어 바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왔고, 끊임없이 바다로 나아갔다. 일상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나자레'라는 마을에는 12세기부터 성모 발현지로 여겨져 성당이 지어지고 성물이 모셔져왔다. 예로부터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예수의 고향 이름인 '나자레'라는 이름이 이 머나먼 포르투갈에도 붙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또 하나의 유명한 전설이 있는데...바로 30m높이의 파도가 몰려온다는 것인데...매일 오는 건 아니고 조수간만의 차+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30m급 파도가 나온다는 예보가 발표되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서퍼들이 모두 이 마을로 몰려든다고 한다.
엘사가 넘고자 했던 집채만한 파도 그리고 나자레로 몰려오는 전세계의 서퍼들을 보며, 자연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다.
포르투 시내에서 관광용 전차로 20분이면 드넓은 대서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포르투갈인들은 이런 바다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과 산책을 하거나, 서핑을 하거나, 낚시를 즐기곤 한다.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주변의 속도감에 힘이 부칠 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 포르투갈에서 배운 여유와 안식을 곱씹어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