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작년과 다른 점은 이제는 첫째와 둘째를 위해 각각 두 개씩 준비해야 한다는 거였다. 두 개를 준비해야 하는 건 하나는 유치원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또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날 아침 아이들의 머리맡에 놓아두기 위해서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문득 산타할아버지가 두 번씩 오는걸 어떻게 생각할까 가 궁금해졌다.
나는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더 즐겁거나 하지 않다. 그건 아마도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선 크리스마스가 아무 날도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아빠는 설날과 추석만 쉬고 주말이건 공휴일이건 일을 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도 아빠는 일을 했고 기독교도 천주교도 아닌 우리 가족은 특별한 행사도 하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는 유치원 때 없다는 걸 알았다. 유치원에서 하는 행사에 엄마와 함께 선물을 고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엄마는 "산타 같은 건 없어"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선물을 몰래 사서 유치원 선생님께 조용히 전달하는 걸 굳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아이를 낳고는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을 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재밌는 곳이야'라는 걸 알려주기에 크리스마스날처럼 좋은 날이 없어서 그렇다. 반짝반짝 꾸민 트리와 선물, 신나는 노래까지 아이들에겐 최고의 날이지 싶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고 얼마 안돼서 첫째와 산타가 나오는 책을 읽었다. 나는 첫째에게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 싶으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를 했다. 한국이었으면 그냥 그렇게 지나갈 일이었는데 첫째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이곳에 오면서 다른 나라라는 개념을 알게 된 첫째에게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가 한국에도 오고 말레이시아에도 오는 게 좀 이상하다고 느껴진 거 같았다. 혼자서 이리저리 궁리를 하더니 결론을 내곤 나에게 설명을 했다. 산타는 여러 명이 있고 이곳에도 살고 있다고.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첫째에게 이날의 생각은 금방 사라졌고 우리는 또 새로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유치원 행사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초록색 장바구니에 넣어서 선생님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아이의 등 뒤로 몰래 전달했다. 별거 아닌데 은근히 두근거린다. 둘째는 너무 어려 뭐가 뭔지도 몰랐겠지만 감기 때문에 유치원을 안 가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행사날 나는 첫째가 산타할아버지를 좋아했을까? 선물을 거기서 뜯어봤을까? 하며 아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버스에서 하원하는 아이의 손에는 내가 보낸 선물이 포장도 뜯어지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있었다. 첫째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며 어서 뜯어보자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잊어버리고 집으로 뛰어왔다. 선물은 아이가 갖고 싶어 했던 실로폰이어서 당연히 좋아했는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아니 왜 산타할아버지가 자기가 뭘 갖고 싶어 했는지 아는걸 신기해하지 않을까?"
그래도 자기가 얼마나 칭찬받았는지 자랑하는 걸 보면 아직 믿고 있는 거겠지 싶었다. 그런데 한참을 잘 놀던 아이이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왔다' "선생님이 산타할아버지로 변신한 거 같아..." 마치 탐정 같은 표정으로 작게 말하는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찌나 귀엽던지!! 이제 진짜 많이 컸나 보다.
첫째는 이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산타할아버지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고 크리스마스날 아침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즐겁게 풀었다. 그런데 산타할아버지가 언제 왔는지, 어떻게 두고 갔는지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혹시 설마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가? 아직 확신이 없어서 말을 못 하는 걸까? 아무래도 산타할아버지 인척 하는 것도 얼마 안 남은 거 같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에게 카드를 받았다. 영어로 쓰인 카드는 예쁘게 쓰려고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있었다. 영어도 못하면서 나에게 준다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썼을걸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만큼 감동이었다. 아이들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니 나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내가 제일 큰 선물을 받고 제일 재밌었다. 아무래도 나는 나도 모르게 크리스마스를 좋아하게 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