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둘째가 깰 때면 나는 바람처럼 달려가 누우며 머리카락을 촥 펼친다. 그럼 둘째는 머리카락을 손아귀 가득 잡고 다시 천사 같은 얼굴로 잠이 든다. 가끔은 양손을 이용해서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잠이 들 때가 있다. 아주 소중하다는 듯이 부드럽게 만지는 아가의 그 자그마한 손을 볼 때면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걸까라는 마음이 든다. 때때로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울컥해질 때가 있다. 주책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둘째의 내 머리카락 사랑은 아주 아기일 때부터 시작했다. 업어서 재웠던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누워서 잠이 들었고 토닥이기 위해서 같이 누워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기의 손은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세게 잡거나 잡아당기지 않고 항상 부드럽게 만지면서 잠들다 보니 나도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편하게 재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막연히 돌이 지나면 더 이상 만지지 않고 잠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21개월이 지난 지금도 머리카락이 잡혀있다. 이제는 졸리거나 피곤할 때면 눈빛을 반짝거리며 "머리카락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내가 졸리니 어서 너의 머리카락을 내놓아라 와 같은 태도다. 이 치명적인 귀여움은 정말 나만 아는 거다. 너무너무 귀엽다.
나는 머리숱은 많은데 머릿결이 좋지가 않다. 심지어 머리색도 예쁜 검은색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칙칙한 검은색이다. 어릴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귀밑 3센티 똑 단발을 해야 했던 중학생 때가 너무 싫었다. 너무 짧아서 묶지도 못하고 부스스한 게 싫어서 매직을 하면 너무 얼굴에 딱 붙어서 안 어울리니 미용실에 갈 때마다 속상했다. 엄마는 내가 그랬었다는 걸 다 잊어버렸는지 첫째와 둘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반짝거려서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와 내 동생은 어릴 때 잘 못 먹여서 이렇게 예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는 분명 어릴 때부터 엄청 잘 먹었는데 심지어 고3 때는 살이 너무 쪄서 교복 치마를 두 번이나 새로 사야 했을 정도였는데.. 부모에게 자식 먹이는 게 중요하긴 한가보다. 아직도 그걸로 속상해할 줄 몰랐다. 하지만 정말 못 먹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타고난 칙칙함이랄까.
숱이 많고 반곱슬이라 머리를 풀고 있으면 너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정신이 없었다. 미용실에서 비싼 돈을 주고 매직과 펌을 해도 이상했다. 그러다 보니 늘 묶고 다녔다. 덕분에 나한테 어울리게 묶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런 내가 대학교 때 잠깐 머리를 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바로 남자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고데기도 하고 에센스도 발라서 나름 이쁘다고 생각하며 긴 머리를 휘날리며 데이트를 했다.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진 않았다.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서 그럴 여유가 별로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 남자 친구에게 그때 내가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머리 풀고 다녔잖아 라고 말했는데 대답이 정말 예상 밖이면서 수긍이 갔다.
"사실 해그리드 같았어"
아니 '헤르미온느'도 아니고 '해그리드'라니. 그렇게 이상하면 말을 해주지. 그때 나의 남차친구 그러니까 지금의 남편은 지금도 나의 묶은 머리를 좋아한다. 아마 이뻐서 그렇다기보단 푼 게 별로여서 그런 거 같긴 하다.
나름 이쁘게 보이려고 했던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예전엔 머리 길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묶을 거니까. 딱 묶일 정도로 짧게 자른 적도 많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좋아하니까 기르게 된다. 머리를 감고 나서 부스스한 머릿결을 보는 것도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아이와 같이 머리카락으로 장난치면서 놀다 보면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정말 태어나서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예뻐 보인 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