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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Sep 15. 2023

"우리 딸"이라 부르기까지

'빨강 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6년 전 얼결에 주일학교 선생님을 시작하고 처음 공과공부 시간에 함께하던 날, 영어 찬양을 배워보자는 다른 선생님의 말씀에 그런 거 하기 싫다며 자리를 박차고 바로 집에 가 버린 아이가 있었다. 가뜩이나 10대 남학생 공포증이 있던 내게 강렬한 첫인상을 안겨준 12살의 그 아이.

어느 날 손가락을 종이에 베여 쓰려하고 있는데, 내게 다가와 자신의 힙색에서 밴드를 주섬주섬 꺼내 건네주는 그 아이의 맑은 눈을 보았다. 무심한 얼굴 속 따뜻한 온기가 보인 건 그날부터였다.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매번 우리 아들을 데리고 놀아주고 업어주고, 심지어 나 대신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응가 싼 아이의 뒤도 닦아주는 녀석. 한창 아들의 발달 문제로 지쳐 있던 시기, 그 아이로 인해 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위안과 치유를 받았다.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하며 이 아이는 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으며 엄마가 희귀병으로 많이 아프신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그 아이의 곁으로 다가가 그 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울면서 함께 기도했다. 내 일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해 아이의 어머님은 기적처럼 건강이 좋아지셔서 아이와 함께 교회에 나오실 수 있었다.

처음 아이의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날, 나는 함께 기도하던 날 느꼈던 아이의 진심이 떠올라 아이에 대해 마음을 다해 칭찬하며 부끄럽게 또 울었다. 그리고 그날, 아이의 동생도 우리 아들처럼 많이 늦은 아이였고, 이 아이는 늦된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아픈 엄마에 대한 불안 때문에 거칠어져 버린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러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행동이 거칠고 주먹이 먼저 나가는 '문제아'로만 보는 시선이 많다는 걸, 나도 그 아이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쏟아진 외모에 대한 비난에 화가 난 앤이 쏘아붙이고 나간 후 마릴라가 예상을 깨고 앤의 편을 들자 기분이 상한 린드 부인이 마릴라에게 내뱉은 말속의 가시처럼 말이다.


그래요, 앞으로는 꼭 말조심을 하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고아의 기분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니까요. 아, 아뇨. 화난 거 아니에요, 염려 마세요. 당신이 너무 딱해서 화낼 여력도 없네요. 아무튼 저 아이 때문에 고생 좀 하겠어요. 내 말은 들을 것 같지도 않지만, 아이를 열이나 키우고 두 명을 먼저 보낸 내가 굳이 충고 한마디 하자면, 아이랑 그 '얘기'란 걸 할 때 굵직한 자작나무 회초리를 쓰세요. 저런 아이한테는 그게 제일 알아듣기 쉬운 말이거든요.

-빨강 머리 앤(더모던), p.127-


거친 아이로서 받는 오해로 인해 상처받은 그 아이가 다신 교회 안 나온다며 울고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드라마의 한 편 같이 홀린 듯 누군가를 쫓아가 붙잡는 경험을 했다. 녀석을 쫓아가 붙잡고는 "넌 나한테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고, 누가 뭐래도 난 네 편이라고, 부모가 자식 말고 다른 사람 편드는 거 봤냐"라며 같이 통곡을 했다.

나는 그날 보았다. 분노와 억울함에 벌게져 이성을 잃었던 그 눈이 우는 나를 보면서 잠잠히 양의 눈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을. 조용히 손을 맞잡고 다시 교회로 걸어 들어가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내 아이 말고 누군가를 '자식'이라 부른 첫 순간. 나는 그 단어의 무게를 알고는 말했던 걸까.  


<빨강 머리 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앤의 빨강 머리보다는 앤의 커다랗고 맑은 눈이 떠오른다. 그 아이의 눈이 같이 떠오르니까. 자신을 돌봐주고 아껴줄 이 없이 자란 아이가 견뎌야 했을 수많은 오해와 선입견. 그 모든 껍질을 뚫고 앤의 중심을 단번에 알아봐 준 매슈를 만난 건, 가슴이 어느 정도 말라버린 내겐 이 책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현실은 마릴라나 린드 부인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네 부모'라고 입으로 말한 나조차 과연 그 아이에게 진정 부모다운 무언가를 해준 적이 있는가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편 이 무겁다.


그래그래, 마릴라. 네 방식대로 해. 다만 아이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대해 줘. 내가 보기에 저 아이는 일단 널 사랑할 수 있게만 해 주면 무슨 일이든 잘 따라 할 게야.
-빨강 머리 앤(더모던), p.95


작년 가을, 그 아이의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키만 멀쭘히 자라 버린, 꼭 웃자란 강낭콩 같은 교복 입은 아이들이 상주 자리에 앉아있는 걸 본 후 한동안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뱉었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넌 나한테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을 위해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했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용돈과 가끔의 카톡, 그리고 졸업식에 가주는 것뿐이었다. 함께 살아오던 할머니와 이모가 계셨기에 내가 엄마가 되겠다고 나서는 게 좀 억지스럽기도 했겠지만, 솔직히 그보다도 나는 이미 신경 써야 할 아이가 둘이 있는, 평범한 집안의 엄마였다고 고백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미 넘쳐흐르기 일보 직전인 엄마의 물 잔은 아무리 애틋한 아이라도 그 부피를 용감하게 훅 던져 넣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매슈와 마릴라가 아무리 자녀가 없는 미혼의 남매였더라 해도, 한 아이를 이렇게 자식처럼 받아들이고 온 인생을 함께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며칠 전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산책을 하다 그 아이를 만났다. 모델 같았던 엄마를 닮아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몸으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달려와선 우리 아들을 또 업어든다. 고등학교 생활은 재미있냐는 물음에 재미있다며 환히 웃는 녀석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남편이 말없이 웃으며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는 걸 보고는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우리 집 와서 밥 먹고 가. 너 좋아하는 고기해줄게." 고작 용기 낸 말이 밥 먹고 가라는 말뿐인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이래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게 그렇게 큰 의미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앤이 졸업식을 마치고 에이번리로 돌아온 후, 그녀와 '연인의 오솔길'을 따라 같이 걸어가던 매슈는 자신이 남자아이였다면 더 좋았을 거라 말하는 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글쎄다. 남자아이 열두 명을 준대도 너와 바꾸지 않을 게야, 앤. 잊지 마라. 남자아이 열둘보다 네가 나아. 에이버리 장학생이 남자아이는 아니었지, 아마? 여자아이였는데, 우리 딸, 자랑스러운 내 딸 말이다. "
-빨강 머리 앤(더모던), p.498-


매슈가 앤을 향해 "우리 딸"이라고 부르기까지, 그와 마릴라가 앤에게 주었던 그 진심과 애정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잘 자라난 앤이 있게 한 매슈와 마릴라, 그 주변의 많은 좋은 어른들은 내가 "자식"이라 부른 그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주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속단하지 말고, 믿어주기. 그리고 '사랑'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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