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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Sep 26. 2023

행복하세요?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Then she seemed to remember something and came back to look at him with wonder and curiosity. "Are you happy?" she said.

"Am I what?" he cried.

But she was gone-running in the moonlight. Her front door shut gently.


그녀는 무엇인가 물을 것이 기억난 듯 그에게 돌아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행복하세요?"

"내가, 뭐?"

그러나 그녀는 달빛 속을 달리며 사라졌다. 그녀의 집 대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Of course I'm happy. What does she think? I'm not? he asked the quiet rooms.


난 당연히 행복하지. 저 아이는 뭘 생각하는 거지?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그는 조용한 방을 향해 물었다.


-


레이 브래드버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화씨 451>의 초반부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독서가 불법이 된 사회에서 대를 이어 책을 태우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오던 주인공 몬태그. 그의 인생에 어느 날 클라리스라는 이름의 한 마리 작은 나비가 날아듭니다.  옆집에 사는 소녀인 그녀는 몬태그를 향해 그저 지나가는 듯 별일 아닌 듯 날갯짓 같은 말들을 건네는데, 그 날갯짓의 파장이 어찌나 큰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몬태그의 근간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를 혼란에 빠뜨린 말은 이 질문이지요. "행복하세요?"

농담처럼 툭 던진 그 말에 답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집으로 들어가는 그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집에 돌아와 자신에게 확인하듯 말합니다. 암, 나 당연히 행복하지. 좋은 직업도 있고, 결혼도 했고, 불법도 저지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이런 '좋은 사람'이 이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라고 생각하듯이 말이죠. 그러나 자신을 향한 질문에 당연하다는 확신보다는 아닌 것 같다는 불안이 더 커 보이는 건 왜일까요?

그런 후 그는 집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는 아내 밀드레드를 발견합니다. 그는 처절하게 응급센터에 연락을 하지만, 그의 집에는 심드렁한 두 사람만이 옵니다. 왜 응급센터에서 의사가 오지 않냐는 그의 물음에 그들은 짜증 난다는 듯 말합니다. 이런 사건은 하룻밤에도 10건은 된다고. 그저 피를 청소해 줄 두 사람과 기계만 있으면 된다고.

다시 살아난 밀드레드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완전히 잊고는 이전과 똑같이 조개껍질(seashell) 모양의 이어폰을 낀 채 벽면 TV와의 일상을 이어갑니다. 몬태그는 아내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그녀는 그 어느 것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생'의 상태라기보단 외려 알맹이 없는 조개껍질 같은 '무생'의 상태인 그녀를 보며 몬태그는 말을 이어갑니다.  


He stopped and turned around. "Does it have a happy ending?"

"I haven't read that far."

He walked over, read the last page, nodded, folded the script, and heeded it back to her. He walked out of the house into the rain.

그는 멈추어 서서 돌아보았다. "그거 해피엔딩이야?"

"나 그렇게 많이는 안 봤는데."

그는 그녀에게 걸어와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본을 덮은 채 다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 집을 나와 비 오는 거리로 나섰다.  


-

회색빛이 짙어져 가는 그들 부부의 끝을 확인하고픈 듯한, 우리는 행복을 향해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픈 듯한 몬태그의 질문에도 관심 없다는 듯 툭 내뱉고 말아 버리는 밀드레드. 그녀는 이미 문장으로 정확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으며 단어와 단어가 겨우 이어진 단문들로만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몬태그가 원하는 대화는 이미 그녀에겐 신체적으로도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What a shame, " she said. "You're not in love with anyone."

"Yes, I am!"

"It doesn't show."

"I am, very much in love!" He tried to conjure up a face to fit the words, but there was no face. "I am!"


"아이고, 이런." 그녀가 말했다. "아저씨는 누구랑도 사랑하고 있지 않네요."

"아니야, 난 사랑하고 있어!"

"안 보이는데요."

"아니야, 진짜 사랑하고 있다고!"  그는 그 단어에 어울리는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그에 맞는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하고 있다고!"


-

아내를 두고 나온 비 오는 거리에서 다시 만난 클라리스. 민들레 꽃을 이용해 사랑에 빠졌는지를 알아보는 장난스러운 테스트에서 몬테그가 누구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자 그는 그것이 장난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 결과를 격하게 부정합니다. 그는 좋은 직업과 단란한 가정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 도통 떠오르질 않습니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함께 있다 나온 아내 밀드레드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몬태그는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데. 조금 이상합니다.



행복에 대한 그의 의구심은 그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하나 둘 뒤집어보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켜켜이 묵혀두었던 먼지들을 먼지떨이로 하나하나 털어내는 순간과도 같은 케케하고 답답함 속에서 그는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행복이 흔들립니다. 그의 삶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의 삶 안에서 그 흔들림 속에 같이 있어주고 그에게 닥친 방황과 혼란을 잠재워줄 이는 없습니다.  그의 아내에게 그의 혼란은 낯설고 불안한,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안 될 침입자입니다. 몬태그의 혼란이나 옆집 소녀의 죽음에도 무감각하던 밀드레드는 일을 잠시 쉬고 싶다는 그의 말에야 머리에 경보등이 들어온 듯 대꾸를 합니다. 그녀에게 있어 몬태그는 '내가 갖고 싶은 벽면 TV를 살 수 있는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정도였나 봅니다.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남편이 아닌 그저 '존재', 'the thing'.


"Mildred, how would it be if, well, maybe I quit my job awhile?"

"You want to give up everything? After all these years of working, because, one night, some woman and her books-"

"You should have seen her, Millie!"

"She's nothing to me; she shouldn't have had books."


"밀드레드, 나 있잖아, 잠시 일을 쉬는 건 어떨까?"

"당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거야? 수년간 일해와 놓고는 고작 그날 밤, 어떤 여자랑 그 여자의 책 때문에-"

"당신은 그 여자를 봤어야 했어, 밀리!"

"그 여잔 나한테 아무 의미도 없어. 책을 갖고 있지 말았어야지."


-

밀드레드는 남편의 힘든 심경, 책과 함께 불타야 했던 그 여자에 대한 연민은커녕 왜 그렇게 죽음을 택했을까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도 없이 그저 그 여자로 인해 남편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이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 자신 역시 TV를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고개를 든 것이겠지요.

그의 동료들 역시 그의 혼란과 의구심에는 무신경합니다. 단 한 명, 그의 상사인 비티 서장만이 무언갈 느끼는 듯한 대화를 이어가지요. 일을 나가지 않겠다고 밀드레드와 언쟁을 벌이는 그 시각, 비티 서장은 몬태그의 집을 방문합니다.


Technology, mass exploitation, and minority pressure carried the trick, thank God. Today, thanks to them, you can stay happy all the time, you are allowed to read comics, the good old confessions, or trade journals.


테크놀로지, 대량 착취, 소수에 대한 압박은 감사하게도 속임수를 가능케 했지. 그것 덕분에 오늘날 자네는 항상 행복하게 지낼 수 있고, 만화책이니 고해성사집이니 무역 잡지니 하는 것들을 읽을 수 있는 거라고.


We must all be alike. Not everyone born free and equal, as the Constitution says, but everyone made equal. Each man the image of every other; then all are happy, for there are no mountains to make them cower, to judge themselves against.


우리는 모두 비슷해야 해. 법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고 동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동등하게 만들어질 수는 있지. 모든 사람이 판박이처럼 다른 이와 같은 형상을 가지는 거야. 그러면 모두는 행복할 테지. 그들이 움츠려야 하거나 맞서서 그 자신들을 판단할 산이 없기 때문이지.


If you don't want a man unhappy politically, don't give him two sides to a question to worry him; give him one. Better yet, give him none.


만약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걱정거리가 될 질문에 있어 두 가지 면을 보여주지 마. 한 가지만 보여줘. 아무것도 안 보여주면 더 좋고.


-

불만 냅다 지르는 줄 알았던 방화수가 이렇게 일타 강사급 팩폭을 날릴 수 있다니. 비티 서장은 금기시되어 있는 책의 내용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책을 금기하고 생각을 차단하는 이 화려한 사회가 원하는 바를 꿰뚫어 보고 있기까지 합니다. 이 똑똑한 서장은 자신이 세상을 바꾸는 데 요긴한 도구가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도구가 되려는 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이 깨친 세상의 흐름을 통해 그는 사람들을 우매하게 머물러 있도록 하는 방법과 그로 인해 자신이 the Happiness Boy로 머물 수 있는 현실에만 집중하는 이기심을 택합니다. 그는  'We are the Happiness Boys'라는 말로써 몬태그를 자신의 부류로 자연스레 흡수하며 자신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임을 확신시키려 합니다.

저에게 있어 먹는 것만큼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습니다. 힘들고 우울한 하루라도 달달한 디저트, 맛있는 외식 한 끼면 저는 금세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것의 제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감정의 전부라면 좀 슬플 것 같습니다. 그건 돼지와 다름없잖아요. 다른 이보다 잘난 나, 강자의 위치에 선 나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행복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은 조금 유치하고요. TV나 인스타를 보면서 낄낄 웃는 것에 감정이란 걸 넣을 수가 있나요? 밀드레드 역시 벽면 TV를 보며 행복하다고 하진 않은 것 같아요.


Did you hear Beatty? Did you listen to him? He knows all the answers. He's right. Happiness is important. Fun is everything. And yet I kept sitting there saying to myself, I'm not happy, I'm not happy.


비티 서장이 하는 말 들었어? 그 사람이 하는 말 귀담아들었지? 그 사람은 모든 답을 알고 있어. 그가 맞아. 행복은 중요해. 즐거움은 모든 것이지.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그대로 있는 채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난 행복하지 않아, 난 행복하지 않아.


-

클라리스의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 당연히 행복하다고 혼자 응수하던,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에 사랑하고 있다고 버럭 하던 몬태그는  자신이 괜찮지 않고, 미치겠으며,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내뱉어 자신의 텅 빈 행복과 혼란을 인정함으로 자신이 진정 나아갈 길로서의 첫걸음을  딛습니다.



넘고 싶은 한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마음껏 좌절도 해보고, 뭔가 억울하게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한 방 맞은 날은 분노와 복수심도 느껴보고, 약자를 위해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정의감에 불타올라보기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그 미칠 것 같은 망할 느낌을 느낀 후에야 우리는 조금 더 완벽한 행복을 알 것도 같습니다. 수박의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금을 뿌려먹듯요.   

지금, 여러분은 행복하세요?


FAHRENHEIT 451을 원서로 읽었습니다.
원서 아래 번역된 내용은 제가 재미를 위해 가볍게 초월 번역한 내용이니, 번역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여쁘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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