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지 Dec 03. 2023

새 병원으로 옮긴 날

느린 아이 키우는 엄마의 짬바

아들이 새 병원에서 초진을 받는 날이었다.


병원가기 전, 그림책을 보는 아들


36개월부터 올 가을까지 다녔던 서울시립어린이병원. 영유아시절 그룹치료로 젤 유명한 곳 중 하나기도 하고 친정과 가깝기도 해서 다니기 시작한 곳이었지. 담당선생님이 그만두시게 되기도 한 데다 이젠 몇 달에 한번 진료 보는 게 다이다 보니, 좀 가깝고 진료보기 수월한 곳으로 갈까 싶어 집 근처 병원을 알아보려 했던 건데. 병원 예약을 잡으려다 보니 요즘 소아정신과 초진은 다 풀예약이라.. 여기저기 전화하여 예약 빠른 곳을 잡고 보니 광교. 기존 병원과 시간차이가 없다시피 해서 살짝 허탈했다. 허허허.

그래도 큰 건물이라 주차장 걱정 없겠네 했더니 건물 내에서 병원 찾기가 너무 힘들다. 여기저기 뛰어다녀 예약시간 딱 맞춰 겨우 도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기실의 다양한 연령대가 낯설다. 널찍하고 평온한 어린이병원만 다니다 상대적으로 협소한 장소와 온 연령대가 다 마음 아픔 호소하며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이 일렁거렸다. 오늘만 여기 오고 다시 다니던 병원으로 다녀야겠다는 결심이 굳혀지던 찰나, 진료실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결과적으론, 선생님을 뵙고는 다시 이전 병원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싹 가셨다. 꽤 오랜 시간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다녔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진료상담을 처음 받아본 느낌이랄까. 그동안 해주신 선생님도 나름 유명한 분이셨는데 무슨 차이일까 생각해 보니, 결국 진심이 통하는 대화였다. 설령 그런 척 이래도, 쨌든 내 진심이 이 사람에게 가 닿았고, 그 사람도 그걸 이해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 것. (물론 그런 선생님을 뵈며 이 직업도 진짜! 힘들겠다는 오지랖 짠함이 느껴졌지만. 걱정도 팔자다.)

적절한 공감과 현실 인지를 함께 하며 희망이 꽉 차있진 않아도 따뜻한 미래를 같이 그려보는 느낌.ㅋㅋ

아, 아들이 장래희망을 교수라고 했다면서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어머님, 아버님. 물론 기대하시는 거 이해하지만, 학습적으로 너무 부담을 주시면.. 아이가.." 하시길래

"아, 선생님. 그것에 대해 한마디 드리자면 그 교수는 옥토넛에 나오는 잉클링교수입니다. 다만 갑자기 교수가 되겠다 하니 그걸 미끼로 학습을 조금이나마 자발적으로 시켜보려고 교수되려면 학습지 하루 두 장 잘해야 해!라고 꼬드기는 중입니다. 저는 그저 아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1인분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라고 장황한 해명을 했다는 웃픈 이야기.



끝나고 남편 일터가 코앞이라 셋이 같이 칼국수 먹으면서 오늘 얘길 하는데 남편 왈, "당신 항상 울 아들 관련해서 새 거 시작할 때마다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더니 오늘은 웃으니까 좋네. 많이 컸구먼."

"그럼, 나도 아들이랑 같이 자라고 있지." 하면서 코웃음 팡치며 면치기를 쭉쭉했더랬다. 잘 되면 어떻고 잘 안되면 어때. 어떻든 그건 그냥 내 사랑스러운 아들인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