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ja Sieg
나와 그녀의 이야기_
독일 하면 생각나는 세 가지를 꼽는다면? 아마도 대 다수가 차, 빵, 맥주라고 답할 것이다. 심지어 빵 같은 경우는, '독일빵집'이라는 상호명이 고유명사처럼 존재할만큼 널리 알려져 있기까지 하니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빵이라면 환장을 하던 나이기에 베를린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주식은 빵이 되었다. 거리마다 빵집이 들어서있기에 수십 가지가 넘는 종류의 빵들을 가게별로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독일 사람들이 식사용으로 즐겨먹는 '거북이 등껍질'(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가 붙인 별명. 정말 그렇게 생겼다!) 빵은 두껍고 투박한 외관과는 달리, 한 입을 베어 먹는 순간 어쩜 이리도 부드러울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의 촉감과 맛을 지녔다.
한창 인터뷰이들을 섭외하던 때, 독일의 빵이라는 주제로 누군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도대체 독일 빵은 왜 이리도 특별한 맛과 식감을 내는지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사방팔방 '빵집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예전 베쓰 생일잔치에서 만났던 영국 청년 조지가 생각났다. 영국식 홈메이드 소스를 판매하던 친구였는데, 분명 빵집 사람들과도 인연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지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 타냐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의 예전 룸메이트였던 타냐는 오랫동안 한 '중고'빵 집에서 일해왔다고 했다. 빵? 빵을 중고로 판다고? 우리는 처음 우리의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빵을 '세컨핸드(second hand)'로 사고팔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게 인터뷰 시작 전부터 호기심 한 가득 품고, 타냐를 빵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에 인터뷰가 어떻게 흐를지도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타냐가 빵에 대해 얼마만큼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 줄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게 나름 흥분과 긴장을 오가는 상태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Tanja Sieg
타냐는 동독의 베를린에서 태어나 베를린 바이센제(Weisensee) 미술학교를 졸업한 베를린 토박이다. 독특한 콘셉트의 '세컨드 백' 빵집에서 일한 지 어언 4년이 다 되어간다. 낮에는 이 곳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작업실에서 본인의 미술 작업에 매진하며 전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홈페이지) http://tanja-sieg-berlin.blogspot.de
아나바다*
중고에 대한 편견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베를린 사람들에게 아나바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꼭 어디론가 중고물품을 사기 위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쓰지 않는 물건을 누군가와 나눠 쓰기 위해 문 앞에 내놓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서슴없이 가져가는 일 마저도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이런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공지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는데, 이는 주머니가 가벼운 베를린 젊은이들 사이에 제법 인기가 많다. 주시하는 눈들이 많다 보니 쓸만한 물건의 경우 심할 때는 몇 초도 채 안돼서 가져간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다. 이렇게 나눔과 재활용을 통해서 가치를 재발견하는 행위는 베를린을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로 만드는 데 한 몫한다. 하지만 설마 먹는 음식까지 재활용을 할 줄이야. 그것도 한국인의 밥심만큼이나 중요한 독일인의 '빵'심, 빵을 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독일의 빵 문화는 유네스코 헤리티지 (intangible heritage)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되고 특별하다. 주재료나 만드는 방법에 따라 삼천여 가지 다른 종류의 빵이 있을 정도고 몇 세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온 제빵 장인도 많다. 특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효모를 몇 백 년간 보존하는 가게도 부지 기수이다. 이처럼 독일인에게 있어서 빵은 그 자체로 삶이며 일상이다.
*아끼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고의 준 말.
세컨백
타냐와의 인터뷰를 위해 '세컨백' 빵 집 앞에 도착하니 그녀는 마침 가게 주인인 베스타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빵 집의 취지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부탁했다고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라니, 인터뷰 시작 전부터 우리는 이미 타냐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먼저 베스타에게 그토록 궁금해마지않던 중고 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쉽게 말하면, '세컨백'은 하루 지난 빵을 다른 베이커리를 통해 사 온 다음 저렴한 가격에 손님에게 되파는 곳이야. 그리고도 남은 빵은 농부들에게 또다시 팔아서 동물 사료로 쓰이니까 생산한 모든 빵을 남김없이 사용한다는 점이 이 가게의 콘셉트라고 할 수 있지!"
그녀는 15년 전 이 사업의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했다. 당시 하루 지난 빵을 판다고 했을 때만 해도 제정신이냐며 황당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건값이 저렴한 전국 슈퍼마켓 체인에서 그날 만든 빵을 1유로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 지난 빵을 그 보다 비싼 값에 되판다는 게 비정상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빵의 경우 하루가 지나도 충분히 다시 먹을 수 있는 빵인데, 매일 엄청난 양이 단순한 시장 경제 논리로 버려진다는 점이 불편했어." 베스타는 그렇게 15년 간 꾸준히 새벽에 일어나 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운전해 서른 곳이 넘는 독일 전통 빵집에서 빵을 받아 본인의 가게를 꾸리고 있다. "보통은 하루에 백여 명의 손님이 와. 우연히 처음 들렀다가 하루 지난 빵이라는 걸 알고 나서 황당해하거나 심지어는 화를 내는 사람 한 둘을 제외하고는 이 아이디어의 진정성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단골손님이 더 많아."
낭비하지 않는 소비
한참 베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타냐와 우리 셋은 오래간만에 해를 본 기념으로 근처 공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타냐는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왜 베를린에서 '세컨백'과 같은 빵 집이 탄생했으며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이런 베를린의 반소비주의적 경향은 역사적 배경을 통해 설명이 가능해. 동독 사회주의가 서독의 자본주의를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면서 생긴 사회적 혼란은 양쪽에서 견고하게 돌아가던 시스템을 멈추고 사이의 틈을 만들었거든. 그리고 그 속에서 상반된 가치관이 혼재되던 것이 바로 지금의 베를린의 독특한 색을 만든 거야." 특히 소비나 낭비라는 개념이 없었던 동독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침투한 서독의 컨슈머리즘(consumerism)은 편리하다기보다는 의문스럽게 보였다. 겨울에는 절대 구할 수 없었던 바나나가 사계절 내내 슈퍼에 있다는 게 너무 낯선 일이었던 것이다. 필요한 양보다 늘 넘치게 물건이 만들어지고 또 너무나 쉽게 버려진다는 것도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타냐는 베를린이란 도시가 지금처럼 자유롭게 또 다양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데에는 이러한 사회적 틈을 통해 기존의 것을 낯설게 바라보던 경험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목소리를 낸 다는 것
"내가 이 가게에서 일하게 된 건, 물론 아티스트로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베스타가 공유하고자 하는 도덕적 콘셉트가 마음에 와 닿아서야. 내가 일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고 옳게 쓰이는 것 같아서. 보통의 옷 가게나 미용실 혹은 다른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거 랑은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해."
몇 년 전만 해도 타냐는 베를린 전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데모에 정기적으로 참여해왔다. 격동적인 역사와 정치적 역경을 헤쳐간 독일, 베를린에서 자란 그녀이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다 보니까 역사관과 세계관이 십 대 때부터 일찍 자리를 잡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청소년 때부터 데모에 참가하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워. 나는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인종차별반대를 위한 데모에 참여했고 지금 14살인 내 조카도 반-페기다(pegida) 운동에 매 주 참여하고 있어." 하지만 몇 년 전, 타냐는 '증오(hate)'라는 구호를 외치는 무리에 실망한 후 더 이상 데모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차별을 반대한다면서 무턱대고 증오를 외치는 모습이 나치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거든. 내가 가진 에너지를 누군가를 싫어하기 위해 쓰고 싶지 않아 그걸 마지막으로 데모에 나가지 않고 있어." 타냐가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건 그 무렵부터였다. 데모같이 극적인 방법으로만 스스로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베스타가 하는 것처럼 매 삶의 순간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 또한 사회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아티스트로서
현재 타냐는 세컨백 빵 집에서 주 5일, 매일 3시간을 정기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끝나면 곧장 작업실로 향한다. 아르바이트로 생활에 리듬이 생겨 오히려 활기가 넘치는 기색이었다. 다가오는 1월, 그녀는 'Crossing the End'(한계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이인전을 학교 동기와 함께 준비 중이다. 작품이 보고 싶다는 우리의 성화에 마침 갖고 있던 습작들을 꺼내 보여줬다. 우유 꽉에 실크 프린팅 작업을 한 후 유화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것도 우리가 오늘 이야기 나눈 아나바다와 관련이 있네. 난 우유 없이는 살 수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나름의 딜레마였어. 그러다가 내 작업을 위해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거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꼭 캔버스를 사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직 실험단계인데, 전시 즈음에는 완성된 작품을 볼 수 있을 거야!" 무엇하나 허투루 쓰는 게 없는 깍쟁이 타냐다.
사진 출처_mundraub 소장
사과나무를 찾아서
인터뷰가 끝나 갈 무렵, 꽤나 친해진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로 했다. 타냐는 우리에게 사과 따러 가기를 제안했다. 타냐의 가족이 과수원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만 그녀는 곧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여기 이 웹사이트 한 번 가 봐. http://mundraub*. org 내 친구가 일하고 있는 프로젝튼데, 유럽 전역에서 무료로 수확할 수 있는 과일이나 야채 등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나누는 곳이야. 예를 들면, 누구도 소유하지 않은 공원의 체리, 사과나무 위치를 적어 놓은 지도라든지, 먹을 수 있는 야생초들이 어느 타이밍에 어디서 자라고 있는지 같은 정보까지도 말이야!"
빵의, 빵에 의한, 빵을 위한 인터뷰를 기대했던 우리. 조금은 어긋난 '아나바다'의 주제로 인터뷰를 끝맺긴 했지만, 분명 타냐를 통해 빵 보다 더 매력적인 베를린 문화와 베를리너에 대해 깊게 알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독일인의 아이덴티티와도 다름없는 빵을 재활용하는 '세컨백'을 통해 아나바다 문화를, 배려심이 넘치면서도 뚝심 있게 자기의 소신을 지키는 타냐를 통해 실천하는 베를리너를 보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이런 만남이야말로, 진정 인터뷰의 묘미이지 않을까.
*Mundraub는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입-포식자라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