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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Nov 30. 2015

5_베를리너_역사_도시 투어 가이드_베쓰

Bathan Griffiths

나와 그녀의 이야기_

맥주를 물처럼 들이키며 차진 욕을 맛깔스럽게 구사하는 화끈녀 베쓰.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속은 또 여리디 여리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나처럼 오랜 기간 원망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농담). 베쓰는 까칠했던 우리의 첫 만남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야기한다. 때는 갤러리 업무에 정신없던 2013년 겨울. 새로운 인턴이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베쓰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상냥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소개에도 이름을 알아듣지 못 하는 그녀에게, "나 썬(Sun, 원을 그리며) 미(Me, 나를 가리키며)야. 해가 곧 나라고! 오케이?" 짜증 섞어 말한 후 내 갈 길 가 버리고 말았다. 이게 화근이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둘 다 갤러리를 그만두고 나서였다. 한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베쓰는 "안녕 썬! 미!"라고 힘주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민망함에 그저 껄껄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한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려니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가 먼저 "그냥 시원하게 욕 한 번 하는 건 어때?"라고 제안했다. 베쓰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 빠른 속도로 f단어를 쏟아부었고, 이후 우리는 아주 끈끈한 친구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 도시 투어 가이드_베쓰 <

Bethan Griffiths

영국 웨일스 해변가 마을 출신의 베탄 그리피쓰. 4년 전 베를린에 뿌리를 내린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현재는 인기 투어 가이드로 활동 중이다. 실제 역사책 읽기가 취미일 정도로 역사 '오덕후'다.


> 소련전쟁기념공원

여기, 베를린의 한 공원에 어마 무시하고 수상한 동상 하나가 서 있다.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  어린아이를 안고 서 있는 이 거대한 남자는 높은 시야로 베를린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게다가 부서진 나치 문양 하켄크로이츠를  짓밟고 있기까지 하니, 도대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베쓰가 인터를 위해 택한 이 장소는 다름 아닌 소년전쟁기념공원이다. 우리의 신기한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베쓰는 자연스럽게 설명을 시작한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4-5월, 소련과 독일이 약 보름간 베를린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었어. 이 공원은 당시 희생된 러시아 군인을 기리기 위해 1949년 소련에 의해 세워진 곳이야. 저 동상은 소련 군인이 독일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지. 다시 말해 ‘우리 소련이 너희 독일을 구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재밌지?" 베를린의 트렙토어 공원(Treptower Park) 내 고요히 자리 잡은 이 곳은 규모뿐만 아니라 역사적 깊이로도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베를린, 특히 과거 동베를린 지역에서는 이처럼 역사적 인물의 거대한 기념비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시절의 노동자 동상을 뜬금없이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체코나 불가리아 등 과거 소련의 위성 국가였던 나라들은 지금 공산주의 유물을 부수고 없애기에 열을 올려. 반면 베를린은 양차 전쟁과 냉전시대 등의 역사적 유물들을 그대로 남겨놓았어. 때문에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역사책 혹은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셈이야."

동상의 맞은 편 풍경. 어마어마하게 큰 소련전쟁기념공원이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 베를린에서, 새 삶과 새 직업

베쓰는 4년 전 영국 워릭대학교의 독일학과를 졸업한 후 곧장 베를린으로 이사를 왔다. 섬나라 영국을 벗어나 드넓은 유럽 대륙을 경험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물가가 싼 도시 베를린을 택했다. 대학시절 익혀둔 수준급의 독어 실력 또한 한몫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이 도시에서 베쓰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겨우 찾은 일자리는 영어강사뿐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유치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데 하루 종일 익숙지 않은 어린아이들과 씨름까지 하려니 베쓰는 곧 이골이 났다.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은 흘렀고, 베쓰는 딱 1년을 채운 뒤 그곳을 나왔다. 


그렇게 다음 일자리를 고심하던 때, 영국에서 가족이 방문했다. 베쓰는 그들과 함께 베를린 곳곳을 다니며 학교에서 배웠던 혹은 책에서 읽었던 도시의 역사를 신나게 읊어댔다. 한 동안 직업이 없어 우울할 베쓰를 위로할 겸 방문한 가족들은 그녀의 활기찬 모습에 되려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곤 모두가 한 뜻이 되어 그녀에게 말했다. “베쓰 너  투어 가이드하는 게 어때. 그럼 하루 종일 네가 좋아하는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심지어 누군가 그걸 듣기 위해 너에게 돈을 지불하잖니!” 그렇게 베쓰는 베를린에 정착한 지 1년 2개월 만에 투어 가이드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게 되었다.


동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중인 베쓰


> 수수께끼 직육면체

베쓰의 투어는 참여자의 나이와 출신에 따라 매 번 다르게 진행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투어는 '나이트 투어'야. 베를린 장벽 일대를 돌고 마무리로 독일 맥주집을 들르는 코스인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좋아. 물론 가이드로서 맥주를 무료로 실컷 마실 수도 있고!" 누가 맥주광 아니랄까 봐. 하지만 우리가 참여하기로 한 날에는 '데이투어', 즉 베를린의 중심 미테 (Mitte) 지역에서 장장 네 시간 동안 이어지는 역사 투어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베쓰가 꼽는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홀로코스트 기념비(공식 이름은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다. 제각각 높이의 총  2천7111개 직육면체들이 엄청난 규모로 늘어서 있는 이 곳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광화문 같은 도시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제2차 대전 당시 살해된 6백만 명 유럽 유대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를 기반으로 2005년에 완공된 기념비이다. 베쓰는 이곳에서 매 번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에게 이 곳은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질문을 받은 대게의 사람들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토론을 하기도, 때론 언쟁을 주고받기도 한다. 베쓰가 꼽은 가장 흥미로운 대답은 다름 아닌 ‘숨바꼭질’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한 관광객의 해석이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항상 숨거나 도망 다녀야 했고, 나치에게 발각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를린의 이 홀로코스트 기념비에는 절대 완벽히 숨을 공간이 없습니다.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나란히 늘어선 블록들 사이의 뚫린 공간 때문에 분명 누군가는 저를 보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이보다 더 잔인한 숨바꼭질이 또 있을까요?" 사실 정해진 답이나 해석은 없다. 이 기념비를 짓기로 한 독일도, 심오한 콘크리트를 늘어놓은 건축가도 그 어떠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기념비를 방문한 모두가 제각각의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며 그럼으로써 좀 더 깊게 이 장소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 인기 가이드가 되기까지

어느새 경험치가 쌓였는지 투어를 이끄는 내내 베쓰는 자신감이 넘쳤다. 관광객에 섞여 따라다니는 우리에게 틈틈이 윙크를 건넬 정도의 여유까지 겸비했다. 세련된 영국 엑센트와 실감 나는 얼굴 표정,  몸동작까지, 그녀의 설명이 우리의 귀에 쏙쏙 와 닿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이렇게 능숙했을 리 만무하다. 때는 가이드 시험을 준비하던 1년  전쯤이었다. 우리는 추운 겨울날 콧물까지 흘리며 장장 여섯 시간 동안 베쓰의 연습 투어에  참여했었다. 날씨 때문인지 긴장한 탓인지 베쓰는 벌벌 떨며 겨우겨우 설명을 이어가곤 했었다.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가 말하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으니 준비한 이야기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더라고. 그래도 너희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고, 또 솔직하게 피드백을 준 덕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었어." 다행히 베쓰는 만족스러운 결과로 시험을 통과했고, 바로  다음날부터 가이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으니 지금 저 앞에서 스무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친구의 모습이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카리스마를 물씬 풍기는 가이드 베쓰

> 투어를 마치며

하루 종일 베쓰를 쫓아다니며 설명을 듣고 나니, 베를린이 사뭇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대표 격인 브란덴부르크 문보다도, 그 밑의 기차역이 냉전시대 기차가 멈추지 못했던 '고스트 스테이션'이었다든지, 그 앞의 호텔 아들론 발코니가 마이클 잭슨이 아이를 흔들어 보였던 바로 그곳이었다든지, 그 근처의 그저 평범한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 지하에는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숨어 있던 벙커가 자리하고 있다든지, 이런 깨알 같은 에피소드를 베쓰가 아니면 어디서 들을 수나 있었을까. 


> 역사 '오덕후' 베쓰

한편 오는 9월, 베쓰는 영국 UCL(University College of London)의 역사학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베를린에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투어를 하면서 한 러시아 모녀를 만났는 데 그들이 해 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 이 어머니는 러시아가 소련(Soviet Union, 1922-1991)으로 불리던 때에 어린 시절을 겪었거든. 당시 소련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그 소소한 일상에 대해 실감 나게 들려줬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미권의 시각으로만 역사를 배운 나 스스로의 세계관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그리고 책으로만 배우려던 내 역사 지식이 얼마나 부족했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어. 그다음부터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생한 의견과 이야기를 좀 더 귀 기울여 듣게 되었지." 이때의 경험을 살려 베쓰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 즉 풀뿌리 역사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 특히 중앙 유럽에 포커스를 맞춰 역사에 기술된 그들의 삶과 실제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할 예정이다. "역사를 기억하고 과거를 감추지 않는 베를린이었기에 나 또한 내 길을 찾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짬이 날 때마다 독일 역사박물관을 방문해 몇 날 며칠이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역사 오덕후 베쓰. 그녀에게 베를린은 남겨진 기억과 현재의 시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이며, 나아가 미래의 길을 제시해준 공간이기도 하다.

보리수 아래라는 뜻의 베를린 '운터덴린덴'거리. 베쓰의 투어가 진행되는 미테의 중심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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