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회사는 투자를 받지 못하는가?
기술창업자들은 투자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실험실 수준의 시제품은 만들어놨지만, 양산자금이 모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기 양산모델을 위한 금형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조립, 도색을 위한 자금이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물건을 다 만들었고, 서비스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마케팅’을 위한 자금이 똑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자를 만나기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에 자기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 서비스를 출시하는 사업가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창업자는 문제가 ‘기술’이 ‘돈’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무지몽매한 창업투자회사(VC)의 심사역이 자기 기술의 혁신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과연 그럴까?
돈의 흐름을 알면 투자유치가 조금 더 쉽다. (혹은 투자유치를 더 이상 안하게 되어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다.) 특허법인 BLT와 컴퍼니비 개인투자조합을 통해서 50개 가까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10개 이상의 기업 지분을 현금화(매각 또는 엑싯)하면서, 내가 느꼈던 점은 ‘대부분의 기술창업가들이 돈의 흐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돈은 ‘좋은기술’의 향을 맡고 그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돈은 ‘돈을 다루는 사람’의 귀를 따라서 흐른다. 이 글에서 ‘돈의 흐름’ 전체를 다루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기술창업’분야에 적용되는 투자자금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하고, 기술창업자들이 ‘돈의 흐름’을 볼 수 있도록 간단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스타트업, 벤처기업에 투자되는 ‘모태펀드’를 이해해야한다. 우리나라에서 모태펀드는 민간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펀드로 벤처캐피탈(VC) 등이 조성하는 벤처펀드(투자조합)에 매칭 출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가장 널리알려진 ‘모태펀드’의 운용은 투자관리전문기관인 한국벤처투자가 담당하지만, 금융권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정책펀드인 ‘한국성장금융’도 모태펀드라고 하기도 한다. 모태펀드는 아니지만, 수 천억원 기반의 투자조합을 기반으로 창업투자사(VC)들에게 운용을 맡기는 ‘모태펀드 급’ 펀드들도 있다. 5000억원 이상의 모태펀드들의 자금운용사 선정, 투자결정 참여과정, 자금 운용방식 등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돈의 흐름’은 모태펀드에서 시작된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낸 세금이 기획재정부에서 각 부처로 배분되고, 각 부처의 투자담당부서가 모태펀드에 배정될 예산을 조율한다. 모태펀드를 조성하면,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주로 한국벤처투자(주))는 ‘자펀드’로 쪼개는 기획을 한다. 이때, ‘자펀드’는 각 출자기관(이라고 쓰고, ‘정부부처’라고 읽는다)의 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농식품 모태펀드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수 천억원(매년 달라짐)의 출자를 받아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농식품부의 존재감을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투자가 이루어지게 된다. 농식품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만들었던 창업투자사(VC)들이 우선적으로 운용사로 선정된다. 특허청에서 출자한 펀드가 포함된 모태펀드는 역시나 IP(특허권, 상표권, 디자인권 등)를 기반으로 고도의 성장이 기대되는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성공한 VC들 또는 IP분야의 새로운 투자모델을 제시하는 VC들이 모태펀드의 자펀드 운용사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벤처투자(주)에서 운영하는 모태펀드는 우리나라 민간 벤처투자의 ‘마중물’ 역할로서, 2021년 현재 △스마트대한민국 △스케일업 △지역뉴딜 △청년창업 △M&A △소재부품장비 등 정책 목적에 따라 9개 유형의 자펀드를 구성해 출자하고 있다. 아래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2018년의 경우 13개 분야로 나누어 ‘자펀드 운용사(즉, VC)’를 선정했었다. 시대와 기술발전의 흐름에 따라서 투자분야가 추가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너무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사업아이템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모태펀드의 자펀드(즉, 출자사업 분야) 운용사(VC)가 관심있을 사업아이템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는것도 사업가로서 필요한 일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업아이템을 한다면, 누가 투자하고 싶을까?
앞에서 ‘마중물’ 이야기가 나왔는데, 모태펀드는 ‘마중물’일 뿐이지 ‘본 물’이 아니다. 앞의 그림에 나오다시피, 정부부처들로부터 받은 모태펀드(예. 1조원)는 모태자펀드(예. 500억원 내지 2000억원)로 쪼개져서 VC들이 그 자펀드를 운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기업 또는 민간펀드(‘본 물’이라고 하자)의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각종 은행, 중견기업, 대기업, 해외자본 등이 이러한 민간자본의 영역에 해당한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들을 LP (Limited Partner)라고 부른다. 전주(또는 쩐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감상 좋은 단어는 아니다. 아무튼, 업계에서 유명한 창업투자회사의 핵심은 파트너 직급의 대표펀드매니저의 LP유치능력이며, 좋은 투자처 발굴(딜 소싱)은 그 다음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좋은 LP의 유치가 VC들에게는 중요하다.
LP들은 자펀드 형성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VC들이 운영하는 모태자펀드(일반적으로는 ‘벤처펀드’라고 한다.)의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새로운 동력원으로 해당분야의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서 대기업, 계열사, 중견기업이 LP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괜찮은 수익율(벤처펀드의 수익율은 평균 5% 내지 20%)을 보여주는 벤처펀드에 돈을 넣는 금융권도 많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민관합동으로 형성한 자펀드(벤처펀드)를 운영하는 창업투자사(VC)가 우수한 심사역을 고용하여 스타트업,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발굴하게 된다.
리디북스에서 <기술창업36계> 전체보기
https://ridibooks.com/books/4168000021
위에서도 언급했듯, 벤처투자조합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5년 내지 10년간 조합을 운영하면서 기업 발굴, 투자회수 등의 투자금 운용을 진행하기 때문에, 목적에 맞는 기업발굴이 이들의 관심사이다. 아래의 2017년 VC조합 구성현황표에는 다양한 창업투자사들의 벤처펀드 운용현황이 나타나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콘텐츠 투자조합’이라고 써있는 펀드를 운용하는 VC에 ‘반도체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찾아가면, 그닥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벤처펀드운용은 모태펀드가 마중물 자격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국가 산업발전’의 목적상 해당분야 기업에 투자를 해야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펀드는 출자자들의 ‘수익창출’이 목표이기 때문에, 목적된 범위가 아닌 기업도 일부 투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투자심사를 진행하는 심사역들의 경우, 왠만하면 결성된 벤처펀드(자펀드)의 목적 범위안에 들어오는 스타트업을 선호하며, 목적범위 외의 기업 대표이사에게는 ‘저희가 그 분야를 잘 몰라서요’라는 말로 정중하게 사과하는 편이다. (벤처캐피탈 담당자들이 ‘투자거절’할때 사용하는 멘트들은 유형화되어있으며, 검색하면 관련한 포스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사업의 흐름’에 맞지 않는 ‘돈의 흐름’을 좇으며 시간낭비하고 투자거절의 상처를 받는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유명한 벤처캐피탈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벤처캐피탈 대표이사와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자펀드의 모태펀드를 출자한 기관의 담당 공무원과 친하다고 하더라도, ‘사업 아이템의 흐름’이 ‘돈의 흐름’에 맞지 않으면, 쉽게 투자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 흐름을 거슬러 부정한 방법으로 투자를 받는다면, 언젠가는 탈이 나게 되어있다. 따라서, 우물가서 숭늉찾지 말자.
최근에는 이러한 모태펀드와 자펀드(벤처펀드)의 운용과 투자처에 관한 정보들이 많이 개방되고있다. 어떤 벤처캐피탈의 대펀(대표펀드매니저)은 어떤 성향의 투자처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상당히 자세히 분석되어있다. 해외에는 테크크런치(Tech Crunch)라는 스타트업 미디어(일종의 언론)에서 만든 크런치베이스(Crunch Base)라는 투자정보/기업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더브이씨(TheVC.kr) 등에서 투자조합, 벤처캐피탈 등에서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세세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을 기반으로 어떤 벤처캐피탈의 어떤 심사역이 당신의 기업과 사업아이템에 관심을 갖고 있을지 추정하자. 그리고 그 심사역을 만나서 ‘조언’을 구해보라.
‘돈의 흐름’은 당신의 기업으로 향할 것이다.
작성 엄정한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