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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소리 Nov 01. 2024

영국 정부 방문기: 세계 최초의 외로움 정책을 마주하다

사이시옷의 글로벌 스터디 #2 영국정부 DCMS 인터뷰   

외로움은 21세기의 흡연이다


2017년 영국의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 500억 원), 경제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 8000억원)의 손실을 준다’고 분석한바 있습니다. 흡연이 20세기의 가장 큰 공중보건 문제였듯이, 외로움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사회적 과제라는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선언은 곧 영국의 세계 최초의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문화, 미디어, 스포츠부(DCMS)를 외로움 담당 부서로 지정하고 정부 차관을 외로움 담당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부서 신설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외로움과 우울을 사회적 과제로 재정의하고,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국의 혁신적인 도전에 주목하여, 우리는 DCMS를 직접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정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다양한 캠페인과 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리고 부처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영국의 경험이 한국의 외로움 대응 정책 수립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영국 정부 DCMS 건물 외부와 내부


체계적인 접근으로 외로움에 맞서다 


외로움부의 2018년 수립된 5개년 전략은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는데, 각각의 목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외로움에 대한 낙인 축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를 드러내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를 주저합니다"라는 담당자의 말처럼, 외로움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전국의 공공장소에 설치된 포스터와 공익광고를 통해 외로움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목표인 '지속적인 변화 창출'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닌 장기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외로움부는 광범위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Tackling loneliness hub'를 통해 950개가 넘는 자선단체들이 서로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60개의 정부기관까지 함께하며, 교육부터 교통,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외로움 해결을 위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목표는 '증거 기반 구축'입니다. "감정적인 문제라고 해서 과학적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라는 담당자의 설명처럼, 외로움부는 철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정책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적 외로움 척도를 개발하여 변화를 측정하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 외로움의 원인과 해결책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목표를 바탕으로, 외로움부는 다양한 혁신적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NHS(국영의료서비스)와 함께하는 'Every mind matters' 캠페인이었습니다. 2022년 1월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16~24세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외로움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의 외로움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또한 '이웃 알기 기금'을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도 이끌어내고 있었습니다. 영국 복권위원회와 협력하여 조성된 3000만 파운드의 기금은 소외된 지역의 자원봉사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주민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통부와 함께 진행하는 '해피택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동의 자유가 외로움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500만 파운드를 투자하여 고립 위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동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의 원인과 해결책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담당자의 이 말처럼, 외로움부는 획일적인 접근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발간되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각 정책의 성과를 면밀히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제와 싸우는 영국의 이러한 체계적인 노력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 영국 외로움부 엠마와의 대화


영국 외로움부(DCMS)에서 자선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엠마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으며 나눈 대화 속에서 영국 외로움부의 현실과 도전과제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 DCMS 담당자와의 인터뷰 미팅


Q. 영국 국민들은 외로움부의 존재와 활동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외로움을 연구하는 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실제로 우리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것이 정부 정책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전 장관님이 정말 적극적이셨어요.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해서 본인의 외로움 경험까지 이야기하셨죠. 그때마다 '정부가 이런 일도 하나요?'하며 놀라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Q. 한국은 부처 간 협력이 쉽지 않은데, 영국은 어떻게 이루어내고 계신가요?

"우리도 쉽지만은 않아요.제한된 인력, 예산, 시간 속에서 늘 고민하죠. 하지만 우리의 강점은 민간단체들과의 관계예요. 그들은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귀중한 경험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은 우리의 지원을 받는 거죠. 모든 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Q.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요.매년 또는 2년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해요. 통계와 수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자선단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우리 활동의 필요성을 입증하죠."


Q. DCMS의 현재 목표와 방향성은 어떠신가요?

"아주 시의적절한 질문이네요. 최근 선거로 새 정부가 들어섰고, 새 장관님도 오셨거든요. 아직 구체적인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새 장관님께서 노인 문제와 스포츠, 예술을 통한 해결방안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잘 정리해서 보고드릴 준비를 하고 있죠."


Q. 한국에서도 외로움 부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사이시옷의 목표이며, 앞으로 외로움 관련 일을 하고자하는 사이시옷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조 콕스 의원처럼 이 문제에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해요. 꼭 고위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잊지 마세요. 하나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다른 하나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발굴하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이 두 가지니까요."


Q. 실무자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외로움의 심각성을 계속해서 알리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모두가 바쁘다 보니 관심을 유지시키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외로움은 너무나 복잡한 문제라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계속해서 알려야 해요. 그게 우리의 사명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엠마는 "외로움은 결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와 민간이 손을 맞잡고 이 문제에 대처하는 영국의 모습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국정부 DCMS 담당자와 함께 찍은 사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영국 외로움부 방문을 마치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외로움 대책이 고독사 예방 등 사후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영국은 전 국민의 14%가 겪는 외로움 문제를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20~30대의 외로움이 심각하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취약계층뿐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처방'을 실시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 여러 기관의 노력이 단기 프로그램으로 그친 것과 달리, 영국은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외로움을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정책을 바탕으로 예방부터 해결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영국정부 DCMS 담당자와 함께 찍은 사진

#1. 영국의 외로움 해결 정책 탐방기 1탄 

https://brunch.co.kr/@joecool/173


#2. 현재 사이시옷은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함께해 주세요~! 

https://campaigns.do/campaigns/1377/signers


#3. 11월 11일 '1111DAY - 외로움 인식개선의 날'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24년 11월 11일 (월) 19시~21시

장소 : 마루 180 (서울 강남구 역삼로 180) B1층                    

프로그램 : 외로움을 주제로 한 '짧은 시 대회', '외로움 장례식 및 시 처방' 등 

https://lu.ma/yhbbgkv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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