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대화하는 시간, 그래서 상대를 완곡하게 이해하는 시간이 고통을 감쇄시킨다.
우리의 몸은 오묘하다. 예술이 삶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술은 마음을 움직여 몸을 감동시킨다. 그런 점이 오묘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단지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 바라보는 나도 약간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그런 다행을 받아들이는 못내 자책하는 게 나란 인간이라고.
나열되는 시간이 고통을 준다. 알지 못했던 시간, 앎에 기대었던 순간들도 고통을 준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 알았던가 따위 집착하지 않는 연습, 그런 공부... 이게 공부할 일인가 싶지만... '판단중지'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