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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라디오 Dec 15. 2021

생방송 라디오에 지각했다!

라디오는 첫째도 시간, 둘째도 시간!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뜬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마,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일이 났다는 직감. 부랴부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8시 14분이었습니다. 아침깨워줄리 생방 라디오는 8시가 시작이었죠.





시간을 확인한 순간, 2초간은 현실 부정을 하다가 3초가 되었을 때는 몸을 벌떡 일으키게 됩니다. 바로 라디오 작업실로 갔습니다. (자는 공간과 라디오 작업실은 걸어서 3초입니다) 헐레벌떡 컴퓨터를 켜고 라디오 할 준비를 했습니다. 알람을 분명 여러 개 맞춰놨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정시에 실시간 아침 라디오를 하던 제가, 지각한 것입니다.


컴퓨터가 켜지며 잠깐 머릿속으로 전현무 아나운서가 생각났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라디오를 하던 아나운서 전현무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침 생방 라디오를 지각했던 에피소드를 얘기했습니다. 때는 한겨울,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롱패딩 하나 챙겨입고 주차된 자동차를 찾으며 마음속으로 울었다는 그 이야기,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도 아침 생방 라디오에 지각을 하다니요! 아무런 알람이 울리지 않아 걱정했을 우리 청취자 아리님들께 면목이 없었습니다. 지각, 다시는 안 할 겁니다. (이래놓고 한번 더 하긴 했지만요. 사람이 한번에 바뀌면 큰일난다고 했습니다)



학교다닐 때 지각하면 담임선생님이 조례 후 교무실로 부릅니다. 그리고 제게 왜 지각을 했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예전에 담임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대로 나왔는데요, 버스가 도로에서 막혀서 늦었습니다." 그러니 제 탓은 아니고 버스 탓이라는 거죠.


이미 숱한 지각 사유를 많이 들어왔던 담임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줄리야, 그럼 그 버스가 늦지 않게끔 너는 더 일찍 나왔어야지."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였든 지각한 건 무조건 제 탓이 맞습니다. 도로에서 사고가 나도, 사고가 나도 늦지 않도록 먼저 나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각한 건, 지각한 것. 잘못을 비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직장 다닐 때 지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사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가지는 것 외에는 뭐라 할 것이 없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학교다닐 때는 지각에 벌점 1점을 받고 담임선생님께 꾸중 잠깐 들으면 되었고, 직장 다닐 때는 지각 사유서를 제출하거나 지각에 대한 용서를 빌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라디오는, 라디오는요?! 마치 하나의 오점이 남겨지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 한 사람에게, 직장에서는 상사 및 동료 몇 명에게 잘못을 빌면 되었지만 라디오는 청취를 기다리는 불특정 다수에게 사죄를 해야 합니다.



특히나 실시간 라디오는 청취자분들과의 약속이 중요하잖아요. 아침 8시가 되어도 DJ 줄리가 아침을 깨워주러 오지 않아 당황하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뒤늦게 실시간 라디오를 켜니, 청취자님의 놀란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줄리님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어요"

"아침마다 줄리님 라디오 들으며 일하려고 했는데 안 오셔서 놀랬어요"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렇지만 실시간에서 왜 늦었는지 이유를 말하기에는 진행이 안 될 것 같아서 준비된 대본대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지각의 이유라는 게 있나요, 늦으면 늦은 그 자체로 잘못인 거죠.



그래도 정말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유는 커피였습니다. 전날 커피를 두 잔을 마셨더니 새벽에 잠이 안 오는 겁니다. 이전에는 잠을 조금 자도 알람 소리를 듣고 잘 일어났는데, 사건 당일에는 제가 무슨 이유였는지 알람을 껐나 봅니다. 알람을 두 개  해놨는데, 두 개 다 끄다니! (다 제 탓이죠, 알람을 왜 껐니, 나 자신아)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각은, 어찌 됐든 지각입니다. 그래도 1시간의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늦어서인지 그날따라 청취자분들의 참여도 적었습니다. 오늘 안 하나보다, 하고 라디오를 못 들으신 분들도 있겠죠? 매주 금요일마다 청취자분들의 사연을 실시간으로 듣고 가장 강력한 사연을 가지신 분을 뽑는데, 참여가 적어서 제가 조금 당황했기도 했고, 다급하게 제가 저를 어그로왕으로 뽑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참여가 적을 때는 저도 가끔은 어그로왕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하필 지각한 날에 딱 이런 일이 겹쳐서 뭔가 제가 페이스가 꼬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신 커피 두 잔 마시지 않겠습니다. 알람 소리를 더 크게 해놔야겠어요. 핸드폰을 멀찍이 두고요.



네이버 NOW 담당자에게도 면목이 없습니다. 지각 사유서가 있다면 쓰고 싶은데, 그런 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자꾸 사죄하는 것보다 앞으로 지각하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겠죠? 지각할 때마다 정말 죄송한 표정을 짓고 90도로 몸을 숙였는데 다음에 또 지각한다, 그러면 어떠세요. 잘못할 일을 만들지 말고 지각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겁니다.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느끼고 지각하지 않기 위한 수단을 만들었습니다.


알람을 2개 이상을 해놓는 편이거든요. 첫 번째 알람 개수를 늘린다, 그리고 두 번째 알람을 바로 끄지 않기 위해서 핸드폰을 멀리 둔다. 세 번째 커피는 하루에 1잔 이상 마시지 않기. 아침깨워주는 DJ가 아침깨워주지 않고 자고 있었으니 청취자는 놀랐을 겁니다. 사실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침대에서 본 시간을 믿을 수 없었어요. 1년 넘게 진행하면서 지각한 일은 이날과 한번 그리고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어야 하고, 없을 겁니다.


약속은 중요하다, 지각은 하지말자. 오늘의 교훈이었습니다. 지각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또 앞으로의 일을 더 단단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각 얘기 너-무 길게만 해도 그렇죠?







▼ 앞으로 지각하지 않을 DJ줄리의 아침 라디오



▼ 에세이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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