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집 평수, 늘어난 짐
결혼 7년 차. 그동안 3번의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집 평수를 넓혀왔다. 늘어난 집 평수만큼 우리의 짐도 천천히 늘어났다.
첫 집은 18평 빌라 꼭대기층. 애초에 물건을 많이 들일 수도 없었지만 그나마 있던 물건들도 깔끔하게 넣어둘 만한 수납장이 전혀 없는 집이었다. 그래서 수납력을 최대로 하는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그래도 살면서 늘어나는 짐은 어쩔 수 없었다. 이때부터였던가. 1년에 2번 여름과 겨운 준비를 할 겸 모든 물건을 끄집어내 ‘계속 가지고 있을 물건’과 '보내줄 물건‘을 구분하는 일을 시작한 게.
두 번째 집은 24평 구축 아파트. 더 넓어졌지만 수납공간이 부족한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첫 번째 집에서 깨달은 수납 노하우들을 활용해 더 신중하게 수납 가구와 용품을 들였고 이전 집에서부터 해오던 1년의 2번 대대적으로 짐을 정리하던 습관을 계속 유지했다. 우리 부부에게 달리기라는 취미가 생기면서 짐의 총량이 조금 늘기는 했어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 이사한 세 번째 집은 34평 신축 아파트. 사실 두 번째 집에서 더 오래 살 줄 알았는데 작년에 임신을 하면서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정집 근처로 세 번째 이사를 결심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니 좀 더 큰 평수의 신축 아파트를 찾게 됐다. 신축 아파트는 수납 측면에서 신세계였다. 넓디넓은 팬트리가 2개나 있고 여기저기 붙박이장이 천지다. 기존에 수납용 가구를 들여 보관하던 짐들이 아파트 자체 수납공간만으로 충분히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아돌았다. 너무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기야 여기 공간이 남아서 너무 아까운데" 신랑이 한 이 말이 내 불안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는 공간이 넓어진 만큼 그리고 보관할 공간이 많아진 만큼 자칫 잘못하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속도로 짐이 늘어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지난 6년 간의 정리 경험을 돌이켜보면 1년에 2번 짐 정리를 하며 잘 보관해 둔 물건은 정말 잘 '보관만' 했던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행을 다녀오면 이게 다 추억이고 기록이라며 영수증, 팸플릿, 기념품을 여행지별로 지퍼백에 잘 모아뒀다. 그리고 짐 정리를 할 때마다 "맞아 이때 재미있었는데"하며 한 번씩 추억을 곱씹어두고 다시 잘 보관해 두는데 그러면 6개월이 지나 다음 정리 때가 되어서야 또 한 번 들춰보는 그런 '보관만' 하는 짐이 되어 있는 거다. 언젠가 써야지 하고 남겨놨던 빈 유리병들도 켜켜이 쌓여 찬장 구석탱이에 잘 보관되어 있다 6개월에 한 번씩 빛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납공간이 늘어난 만큼 이렇게 '보관만' 하는 짐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이제 아이가 태어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에 맞춰 옷과 각종 장난감이 무한 증식할 거다. 분명 1년에 2번 하던 정리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만으로도 벅찰 텐데 1년에 2번 하는 정리는 몇 날 며칠을 정리에만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는 건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매일 조금씩 정리하기. 그때 마침 밑미에서 진행하는 '하루 하나 설레는 물건 남기기' 리추얼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버리고 정리하는 게 아니라 설레고 소중한 물건을 찾아 남긴다는 콘셉트가 신선했다. 리추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참여 방식을 안내해 주고 함께 참여하는 메이트와 인사하고 다짐을 나누는 선언 미팅에 참여했다.
곤도 마리에 정리 가치관을 기본적으로 따른다. 곤도 마리에 정리법은 버릴 것을 고르기보다 내가 가진 물건을 다 꺼내서 설레는 걸 찾아 꽂으며 행복을 느끼고 남은 걸 어떻게 할지 판단한다.
옷을 정리할 때 보면 '이건 선물 받은 옷', '기념품으로 산 옷'이라 못 버린다고 하면 그건 더 이상 옷이 아니라 잡화로 분류해야 하므로 옷장에 걸어두어서는 안 된다.
주변이 어지럽다면 내 심리 상태가 어지러운 것이니 공간의 여백이 없다면 내 마음의 여백이 없는 것이므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나 많이 힘들구나' 하며 내 마음을 토닥여주기.
좋아하는 걸 찾아내고 언어화시키면서 나의 취향은 명확해지고 그렇게 구매한 물건과 나의 관계가 점점 끈끈해지는데 그러면 비울 게 쉽게 보이기 시작한다.
정리를 넘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다
안내받은 리추얼 방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선했다. 매일 조금씩 물건을 마주하며 동시에 내 마음과 취향을 찾아가는 시간을 얻는다니.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를 트림시키며 집안 곳곳을 돌아다닌다. 눈에 밟히는 여러 물건들을 하나씩 마주한다. 내가 이 물건을 들일 때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감정이었던가. 지금까지 이 물건을 어떨 때 사용했더라. 이 물건을 애정하며 사용했던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오늘은 어떤 물건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볼까' 고민하는 과정을 매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때 떠오른 여러 생각들은 아이를 재우고 조용해진 저녁이 되어서야 거실 한편에서 노트북을 켜고 한 자 한 자 타이핑으로 남긴다.
단순히 정리를 습관화하고 싶었던 마음으로 시작한 리추얼이었는데 육아를 하며 자칫 잃어버릴 수 있었던 '나를 1순위로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이 귀중한 시간을 육아에 치여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브런치북 연재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연재가 끝날 때쯤에는 이 시간이 내 몸의 일부처럼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