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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 Sep 26. 2020

시선기록 #4 저무는 해를 따라가요

                                                                               

                                                                                                                                                                       


지난 주말 밤, 우리는 폴딩 카트에 간단히 짐을 싣고 떠날 채비를 했다.

캠핑 의자 두 개와, 장작 몇 개, 미니 화로, 두툼한 외투를 카트에 실었다.

저녁에 출발해서, 다시 밤에 돌아오는 짧은 캠핑. 

서해 쪽에 불멍이 가능한 곳이 있어서 불멍을 하고 두세 시간만 있다 돌아오는 게 목적이었다.

타는 장작을 보며 길어야 두어 시간 남짓 되는 힐링을 하러 왕복 3시간을 달리는 우리. 




여섯 시 반쯤 출발했을까. 서해로 가는 게 신의 한 수였다.

달리는 도로 앞 저 먼 곳에는 파스텔로 그린 듯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눈썹달이 떠서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지는 해를 따라서 달려가는 것 같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달려온 길은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붉은빛을 붙잡는 듯 달려갔다. 




크고 선명했던 눈썹달이 우리를 마중 나와 가야 할 길로 인도해주고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반짝이는 가로등은 마치 호위를 해주는 듯 든든했다.




9월 19일 차 안에서 한 메모



짧은 찰나에 감상에 젖는다. 재빨리 메모장을 켜 메모한다.

빨리 적느라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틀리지만, 

이 순간의 감상과 기억은 지금 적어두지 않으면 금세 날아가 버릴 게 분명하다.




꼭 '인생' 같다. 

내가 걸어온 길은 캄캄한 밤이 되어 암흑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나이가 들어 저물어가지만 계속해서  희망의 빛을 붙잡고 달려간다.

저만치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달은, 묵묵히 그러나 영원히 내 옆을 지켜주시는 부모님일까.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내 주위를 공전하며 언제나 존재하는 것. 





캠핑장에 도착해서 화로를 켜고 장작을 태운다.

장작 타는 냄새도, 소리도, 불꽃도 좋다. 



그간의 잡념과 고민, 불안도 장작과 함께 활활 타서는

연기처럼 폴폴 날아가는 것 같다.



불꽃이 서서히 작아진다. 

다 타버려 더 이상 불꽃을 피우지 못하는 부서진 나뭇조각들 속에서

아직 불이 남아 빨갛게 일렁인다.



툭툭 건드릴수록 더 힘차게 일렁이는 붉은빛이

 '난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하는 것 같다. 

붉은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뜨겁게 온기를 내뿜었다.




나도, 끝까지 뜨겁게 일렁이며 살고 싶다. 

타는 노을처럼, 타는 장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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