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주차하고-일대에서 가장 저렴하다-미리 동선을 걸어보았다. 토요일 오전 11시. 이른 시간임에도 경복궁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그래. 날씨가 너무 좋았으니까. 정말 올해의 날씨.
다행히-이곳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서촌은 조용했다. 낮은 건물과 낡은 돌담, 그리고 정겨운 간판들을 보며 걷는 일은 언제나 좋다. 골목길 돌아 돌아 이제 막 오픈한 카페 고희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음식은 나오지도 않았지만 식당의 인테리어와 간판, 음악, 소품들을 보면 이미 감동이 있다. 8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브런치를 주문하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처음이라 조금 어색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금세 하하호호 웃을 수 있었다. 특히 작가님 덕분에 미술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도 나눠볼 수 있었다. IT분야의 대표님 한분은 평생 5번 전시를 봤다고 한다. 미술과 전시를 어려워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브런치 가격대가 조금 비쌌지만 메뉴가 나오자마자 아…했다. 양이 굉장히 푸짐하다. 아마도 3명이서 2개를 시키고 커피를 추가한다면 딱 맞지 싶다. 아쉽지만 다음번엔 그렇게. 푸짐한 양 만큼이나 맛도 나무랄 데가 없다. 빵은 식감이 좋고 수프가 유난히 맛있더라. 커피는 맛있거나 아쉽거나.(오전엔 좀 덜 볶은 원두를 진하게 마시는 게 좋더라). 1시간여 수다를 떨고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나섰다. 경복궁을 가로질러 20여분을 가는 동안 오늘 볼 전시에 대해, 그리고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런 시간들이 아마도 미술과 친해지는 과정이지 싶다. 전시를 ‘보다’라는 행위 안에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국제 갤러리는 세계적인 작가 빌 비올라와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요셉 보이스의 전시를 비롯해 안젤름 키퍼, 루이스 부르주아, 줄리안 오피, 최근의 바스키아 까지 세계적인 현대 미술 작가들의 기획전을 꾸준히 유치해오고 있다. 대형 미술관 못지않게 유명 작가의 전시가 많은 곳이다. 이번 전시 Danseakhwa전은 1970년대 단색화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한 7명의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70년대의 단색화가 지닌 회화에 대한 부정의 정신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볼 때 평면성이란 서구적 개념에 한국의 정신성을 접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단색화 작가들의 이 같은 서구 모더니티의 수용과 절충은 국제적 보편주의를 향한 행진의 서곡이었으며 이른바 회화에 있어서 현대성의 획득이 이루어지면서 지역적인 한계로부터 벗어나 국제적인 열린 지평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국제갤러리 전시 소개 내용 중
전시 소개 외에 사전에 공부하다 찾은 “서구 모더니티의 형식을 빌려와 한국적 정서로 채운 동도서기의 발현”이라는 문구가 와 닿는다. 작품의 재료와 표현기법, 컬러를 보고 있으면 이 말에 지극히 공감이 된다. 또한 마음이 편안해진다. 검은색은 검지만은 않고 흰색은 희지만은 않은 것이 참 오묘하다. 작품을 눈으로 좇기 보다는 미술의 흐름과 이 시기의 시대상,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가는 작가의 사유를 좇아가다 보면 마침내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개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은. 각 관들을 이동할 때 외부로 나가 이동하는데. 웨이파인딩이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다. 관람 중간중간 시원한 바람과 햇빛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3관이 가장 나중에 지어졌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1,2관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의 공간이었다면 3관은 굉장히 높은 층고(10미터는 됨직했다)에 일부 자연채광-확인은 못했지만 자연채광이라 믿어야지-같은 빛이 들어와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더 멋스러웠다.
처음 브런치 타임에 8명이 만나는 만남이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전날 전시 관련한 공부도 하고 사전 준비를 이전 만남들보다 많이 해야 했다. 그래서 걱정도 많이 했다. 동선 체크까지 했으니. 휴일 오전이 한 분 한 분에겐 귀한 시간일 텐데.. 그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어야 하니까.. 항상 그렇듯. 이번 만남에서도 많이 배웠다. 미술은 즐겁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일은 유익하다. 내 생각들이 치우침이 없도록 그들의 생각을 듣고 밸런스를 맞춰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