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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Sep 22. 2022

탑건:매버릭_ 아트레온의 기억

6월에 개봉한 <탑건:매버릭>이 아직도 극장에 있을 줄 몰랐다.

그때 쓰려다 멈춘 글을 마무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영화라서 글을 마무리해본다.


지난여름 <탑건 : 매버릭>을 극장에서 보며 아주 오랜만에 '극장의 열기'라는 걸 느꼈다.

말 그대로 극장에 만들어지는 '뜨거운 기운'이다.




2006년, 벌써 16년이 흘러버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했다.

지금의 CGV 신촌 아트레온의 전신인 극장의 4관 상영관 매니저가 내가 맡은 직책이었다.

여느 영화제에서 처럼 STAFF 유니폼을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 중 하나였다.


2006년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포스터



처음 업무에 대한 소개를 받을 때 극장 담당자가 이런 말을 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면 상영관 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하는데요. 관객들의 뿜어낸 열기 때문에 더워진 상영관은 아무리 오래 환기를 해도 그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요


그 사람이 말한 관객들이 '열기'라는 게 뭘까 궁금했는데 영화제 기간 동안 자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상영관 밖에서 상영관 표를 받거나 상영관 안팎의 안내 업무를 맡아

사실 영화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티켓 매진 상황이나, 상영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예측할 뿐이었다.  


상영이 끝난 뒤 상영관 정리를 하러 들어갔을 때  

말 그대로 사람들이 뿜어낸 '열기'가 가득 남아있는 것을 느끼며 상영관의 두 시간을 상상하곤 했다.  

모두가 열중하며 영화를 보았구나,

영화가 어떤 에너지를 극장과 사람들 안에 남겨놓았구나 하는 걸 느끼며 왠지 뿌듯했었다.


무려 싸이월드에서 찾아낸 영화제 시절의 사진. 당시 '샤기컷'이 유행이었다죠?


극장이란 공간은 단지 영화를 보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함께' 보는 공간이다.

낯선 사람들과 한 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영상의 시간을 같이 여행하는 것이다.

어둠이 걷히면 끝나는 여행이지만

인생의 2시간을 공유한 타인과의 경험.

그 안에서 영화를 보면서 내뱉은 탄성과 웃음들은

낯선 이들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혹은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곳에서 울고 웃는다는 걸 깨닫게 하는 시간이다.

나는 영화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을 맘껏 헤집어 놓는다는 사실에 매료되었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 극장 관객수는 70%가 급감했다.

나 또한 극장을 가는 일이 뜸했고 관객이 꽉 찬 극장에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사람도, 영화도 극장에서 스르르 빠져나간 시간이었다.


그런데 <탑건:매버릭>을 보면서

너무나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들어지는 열기를 느꼈다.

꽉 찬 극장과 사람들의 목소리, 반응,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눈빛들이 텅 비어있던 극장의 공기를 데웠다.  

30년 전에 떠났던 매버릭이 극장의 의미를 다시 돌려주러 돌아온 것 같았달까.


1987년의 <탑건>과 2022년의 <탑건:매버릭> 사이의 시간에 배우들도, 세상도, 극장도 모두 변했다.

<탑건>의 감독 토니 스캇은 세상을 떠났고 아이스맨 역을 맡은 발 킬머는 후두암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영화계도 변했다. 극장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사람들은 극장이 아닌 각자의 공간에서 영화를 보며

우주영웅이나, 환상적인 이야기들에 매료되어 갔다.

그 와중에 착륙한 <탑건:매버릭>은 오랜 이야기를 제대로, 정공법으로 풀어놓았다.  

사라지지 않은 사람들- 매버릭과 아이스맨, 그리고 구스까지-이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이 영화가 지금의 극장과 영화의 의미와 닮아있는 것 같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오래된 스타일의 공간과 이야기가 여전히 사람들을 웃게 하고, 열광하게 하는 것.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남겨놓았던 더운 기운처럼.



잠시 영화일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좀 더 예전의 나의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들과 그 시간 자체를 좋아했던.

영화가 나에게 남겨두는 질문과 세상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들을 오래오래 곱씹었던 10대, 20대 시절의 내가 가끔 나타난다.


극장이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극장만이 줄 수 있던 무언가를 지켜갈 영화와 시간들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극장의 시간들을 사랑한 사람들이 여전히 꿈꾸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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