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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Nov 17. 2022

일상의 조각모음


예전에 컴퓨터가 느려지거나, 용량이 줄어들면  습관처럼 '디스크 조각모음'이라는 기능을 썼었다.

옛날 옛적 Windows 98 같은걸 쓰던 시절의 일이다. 

이곳저곳 파편화된 파일들을 정리해서 하드를 최적화하는 기능이었는데

무척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특히 하드를 거의 꽉 채운 상태에서 실행시키면 조각을 모을게 많아서 몇 시간 걸렸던 같다. 

조각모음 버튼을 누르면 

화면 위에 작게 조각난 파일이 다른 쪽으로 날아가더니 하나 둘 모이는 모습이 떴다.  

컴퓨터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작업을 형상화 한 

끝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멍하니 조각모음 과정을 보곤 했었다. 

(요새는 '최적화'라는 기능으로 금방 끝나는 거 같다.  긴 세월 컴퓨터도 똑똑 해졌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내 일상이나 생각도 이렇게 조각모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매일매일 떠오르는 생각, 스쳐가는 경험, 새로운 말들이 조각조각 떠다니지만 하나씩 그러모아서 정리하는 일일은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어렵다. 그리고 그런 조각들은 쉽게 휘발되어버리는 것 같다. 

우연한 계기로 다시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모아두지 않으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둥둥 떠나니다 깎이고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가끔 주말에 날을 잡고 노트와 다이어리를 펴고 일상의 조각모음을 시도한다.

캘린더나, 사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 것들을 모아서 하루를 기록하고, 일주일을 기록하는데 쌓이다 보면 그런대로 중요한 조각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단어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조각들을 모두 다 한 권으로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을 때마다 사라지기 전에 잡아두는 조각들이 하나의 묶음이 되고 기록이 되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약간의 안도가 찾아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조각들이 더 멀리, 더 작게 사라지기 전에 

찬찬히 일상의 조각을 그러모으고, 연결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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