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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Apr 12. 2024

55분의 벽



러너에게 '페이스'는 달리는 속도를 보여주는 명쾌한 숫자다.

1킬로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페이스라고 한다.

만약 10킬로를 1시간(60분) 동안 달린다면, 6분 페이스인 것이다.

3년 전, 러닝 생초보 시절 7~8분대의 페이스로 시작해 이제 5분 40초대로 성장했다.

다음 목표는 5분 30초의 페이스가 되는 것인데 여전히 내게 너무 힘든 속도다.

10K를 55분 이내에 달려야  5분 30초 페이스에 안정적으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작년부터 내 목표는 10K 대회에서 55분대의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작년 최고 기록이 56분 28초라 조금만 더 열심히 달렸으면 달성할 수 있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올해 첫 대회를 맞이하며 이번에야 말로 꼭 55분을 달성하리라 다짐했다.

대회가 없는 겨울에도 꽤 성실하게 달렸으니,  죽을힘을 다해 뛴다면 이룰 수 있는 목표 같았다.

남편도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달려주기로 했고 말이다.

그렇게 참여한 올해의 첫 대회, 마산에서 열린 3.15 마라톤이었다.  

달리기 초반 페이스는 꽤 좋았다. 평소 속도보다 더 빠르게 첫 3킬로를 통과했다.

그런데 날이 더워지고, 오르막이 등장하자 숨이 가빠오기 시작하더니 5킬로부터 속도가 훅 떨어져서 좀처럼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시계를 계속 보고 조바심을 내봐도 속도는 오르지 않고 답답했다.

남편은 옆에서 자세를 좀 더 고치고 힘내보라고 하는데 힘들어서 대답도 못했다.

난 지금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잔소리하는 것 같아 너무 얄미웠다.

피니시 라인이 가까워져 오자 온몸에 힘을 쥐어짰다.

조금만 더 하면 55분 59초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달렸는데  결과는 결국 56분 4초.

아쉬움에 내 달리기를 복기해 보았다.

오르막에서 조금만 더 힘냈으면, 물을 덜 마셨으면, 자세를 더 효율적으로 해서 달렸더라면,

아니 어쩌면 몇 달 전부터 체중을 조금이라도 줄였으면,  훈련을 더 했다면. 여러 가지 가정들이 이어졌다.

조금만 더 애썼다면 5초 정도는 더 당겼을 수 있을 것 같다.

꿈의 숫자 55분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달리기는 1킬로, 1킬로가 더해져 거리가 쌓이고, 그 거리를 달린 시간이 쌓여 기록이 된다.

내 달리기도, 코스도, 시간도 모두 정직한 숫자로 만들어졌다.

다음 달리기를 위해서 또 오늘의 달리기를 하고, 기록을 쌓아가는 것 말고는 그 기록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

다. 실패는 명확했고, 실패를 지나가는 방법도 너무 명쾌하다. 이게 아마도 달리기의 매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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