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흙을 조심히 밟고서
그 이름만 열 번 곱씹었던 길을 가라 한다
차가웠던 이슬이 까슬하게
볼을 스치던 기억이
성급하게 떠오른다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이 길이 익숙한 탓도
발목이 강인한 탓도
숨이 남는 탓도 아니다
그건 못 본 체하고 싶은 것들이
길가에 만개한 탓이다
바스러지는 흙이
걸음걸음마다
내가 어디론가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뒤돌아 보면 어지럽게 펼쳐진 발자국들
시간을 발아래 딛고서
꼬박꼬박 걸어왔음을 알 수가 있다
자욱이 아프다-
그러니 재빨리 앞을 혹은 바닥을 바라본다
시선은 분산되고 흐려진다
어디로도 갈 수 있는 것일까
안개가 반갑다
고개를 무겁게 하고선
안개를 핑계 삼아
걸음을 하나 둘 뗀다
도달해야 할 곳이 애초에 없었다는 건
알고 있다 자부했지만
막상 그것이 서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하겠다
그렇게 한 걸음의 시야를 겨우 옮겨 놓고선
나는 또 갈망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