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혜인의 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인 Dec 09. 2023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파견자들-김초엽>

태린의 갈망과 쏠의 사랑(스포주의)

 고등학교 생물 수업 시간, 우리 몸의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 속에는 사실 세균이었으리라 추정되는 미토콘드리아가 기관으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에 원시생물과 공유하는 세균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에 더 놀랐다. 어쩌면 내 몸속 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이 모두 각자의 생명 활동을 하며 때로는 서로가 공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억제하거나 협의하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혹시 내가 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이나 감정들이 내 몸속 모든 생명이 상호작용해서 낸 결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김초엽 작가 특유의 신선한 발상과 상상이 버무려져서 내 과거의 기억이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느낌이 들었다.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신파적인 요소나 특이한 인물 없이 세상에 꺼낸 작가의 용기에 감사했다.  

 주인공은 태린이다. 그녀는 살아남은 인간들 중 한 명으로 지하세계, 라부바와에서 살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감시 기계가 돌아다니며 범람체 감염자를 찾아 어디론가 보내서 처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범람체에 감염된 모든 인간은 이상 행동과 함께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어릴 적 돌봐준 이제프와 같은 삶을 동경하고 갈망하며 지상 세계를 조사하는 파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의 반전은 사실 어릴 적 태린이 범람체 감염자이자 실험 대상자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통 감염자가 모두 죽는 것과 달리 그녀는 범람체와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러나 실험실 사정으로 약품 주입 후 태린은 기억도 잃고 그녀의 머릿속 범람체도 자취를 감춘다. 

 문제는 훌쩍 자란 태린이 파견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여정에 다다랐을 때 태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또 다른 자아가 깨어나는 것을 태린이 감지하게 되며 시작된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던 범람체가 깨어나서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어릴 때 실험체였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태린은 다른 이유이리라 단정 짓는다. 그리고 오히려 그녀는 새로운 자아에게 '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계속 쏠과 대화하면서 새 자아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머릿속 쏠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태린에게 파견자 시험 마지막 관문에서 대형 사고를 치게 하고 만다. 이로 인해 징계를 받게 된 태린은 쏠을 원망 하지만 결국 징계 과정에서 쏠의 도움을 받아서 범람체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쏠을 통해 인간이 범람체와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었던, 그러나 범람체에 감염된 인간들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려 했던 이제프를 슬럼버 건으로 쏘아 죽인다. 이후 그녀는 인간과 범람체 중간자로서 두 존재가 함께 지상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작품이 끝을 맺는다.

  그녀와 범람체가 과거에 공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배워서 소통하려 시도했고 자기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는 실험실 약물 주입으로 기억을 잃고 성장하여 다시 쏠을 만났을 때도 개방적인 자세로 공존의 노력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파견자 시험에 통과하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이제프와 함께 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인해서 쏠의 존재를 억압하려 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뭉클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어릴 적 태린이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실험실의 약품을 들이켜고도 살아남을 수 있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이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쏠의 희생 덕분이었다. 쏠은 약품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태린을 보며 태린이 죽기 전에 자신이 죽기로 결심한다. 자기 자신보다 태린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어쩌면 소설의 끝에서 태린이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자 사랑이었던 이제프를 죽인 것 역시 쏠처럼 자기 자신의 갈망을 벗어난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두 존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 밑바탕에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려는, 자신의 이기보다는 이타를 선택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태린의 갈망, 지하세계에 퍼진 두려움과 공포와 무감정, 파견자들의 비교우위적 자부심과 범람체에 대한 분노로 어둡게 얼룩질 뻔한 세계가 서로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밝아지는 것을 보니 문득 이 문구가 떠올랐다.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