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니어도 된다고 했지만 막상 서울을 너무 멀리 떠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일을 받아야 먹고 살 수 있는 프리랜서였기에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들로부터 멀어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제주로 떠나고 싶어", "이왕이면 바다 뷰에서 살고 싶네"라는 천하태평한 말을 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는 경기권 쪽으로 거주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다 눈에 띈 글이 한 편 있었다. 송파에 살다 양평으로 이주한 세 아이 엄마의 글 속엔 내가 원하는 삶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양평이라면, 강남에서도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고 어찌 됐든 지하철로 서울까지 오고 갈 수도 있는 곳이었다. 시댁에서 그리 멀지 않아 급한 일이 있으면 아이를 맡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던 남편과 성인이 되고부터는 줄곧 서울시민이었던 나는 서울과 물리적 거리감이 멀어진다는 것이 아주 살짝은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었는데(물론 남편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양평 정도라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양평만 가더라도 아파트보다는 전원주택이 어울리는 지역 아닌가. 충분히 우리가 꿈꾸는 시골스러운 것들이 있으면서 도시와 멀지 않은 최적의 장소가 바로 양평이었다.
장소를 정했으니 살 집을 찾아야 했다. 포털사이트에 타운하우스를 검색했다. 타운하우스의 구체적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돌이켜보건대, 서울 아파트 입성의 꿈은 자의 반 타의 반 버렸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골집에서 살고 싶지 않은 나의 본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양평으로 이주를 하게 되더라도 진짜 논과 밭 바로 옆에서 시골 아낙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고, 미국 하우스들처럼 잘 가꿔진 현대식 주택에서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최후의 보루 같은 것?!
물론 막상 살아보니 타운하우스나 전원주택이나 거기서 거기.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말이다.
포털 사이트에 양평 타운하우스를 쳐보면 굉장히 많은 광고들이 줄지어 흘러내린다.
어느 사이트를 들어가도 환상적인 인테리어의 주택이 눈을 돌아가게 만들고, 마당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놀고 엄마는 우아하게 주방에서 간식을 만들며 아빠는 여유롭게 잔디를 깎는 이상적 가족의 스테레오 타입이 스쳐 지나간달까.
두근두근. 주택의 로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나는 몇몇 리스트를 간추렸고 그 주말에 남편과 아이와 양평으로 향했다. 내 나름의 리스트 기준은 서울과 가까울 것. 근처에 학교가 있을 것. 딱 두 가지였다.
서울과 하남, 도시를 벗어나면서부터 눈앞에 드러난 북한강과 울창한 산의 위용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여행이라도 온 듯한 자연의 광경 앞에 들떠 '양평이 우리가 살 곳이네'라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타운하우스의 부지들.
현실적인 논과 밭들을 지나 좁고 좁은 골목들을 구비구비 거슬러 한참을 올라가니 산을 깎아 만든 부지들이 눈에 보였다. 매끈한 아스팔트와 180도 다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올라가는 와중에 남편이 몇 번이고 비웃는다.
"당신이 이런 데서 살겠다고?"
뭣도 모르고 그저 들뜬 나는 남편의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가보고 말하자니까"라고 대꾸했다.
정말이지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 끝도 모르게 올라간 다음에야 도착한 타운하우스 부지는 뷰만큼은 환상적이긴 했다. 그만큼 높이 올라왔으니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였고 공기는 맑고 쾌청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운전을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저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어서 빨리 미국집과 다를 것 없는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고 싶어졌다.
유럽풍 인테리어의 신축 타운하우스는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주택의 로망을 충족시켜줬다. 이제 5살이 된 아이는 말끔하게 깎인 잔디 정원에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달려왔고, 남편의 눈도 휘둥그레지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아직 봐야 할 타운하우스 부지들이 서너 개가 있었다. 나는 어서 빨리 다른 곳도 가보고 싶었는데, 충동과 행동력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의 남편은 그 자리에서 부지 계약을 할 기세다. 이제는 내가 그를 말려야 할 차례다.
그럼에도 한참을 상담 직원과 앉아있던 그는 "지금 계약하시면 땅의 평당 금액을 싸게 해 주겠다"라는 딜을 받기에 이른다. 간신히 뜯어말려 이번 주까지 생각해보겠다고 돌아왔다.
하지만 위치나 여러 조건들이 처음에 본 곳이 가장 나았다. 결국 우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처음 만났던 타운하우스의 부지를 그 주에 계약했다.
아주 약간, 너무 충동적이지 않았나라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이제 정말 우리 네 식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린 단순히 땅만 계약했을 뿐.
땅의 용도변경, 건축 허가, 설계와 인테리어, 건축 등등. 굵직한 과정들이 산적해있었다.
아파트 매매와는 또 다른 차원의 집짓기.
그것이 얼마나 많은 변수를 가진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